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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Sep 19. 2023

우리 모두의 이야기, 트라우마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덮어두고 사니까

트라우마 (trauma) 는 우리 말로는 '외상' 또는 '정신적 외상'으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은 외상이라는 단어보다도 트라우마라는 단어 자체가 더 자주 쓰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1-2년 전부터 트라우마, 그리고 PTSD란 단어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일이 확연하게 잦아진 것 같다. 아마도 "PTSD 온다" 라는 말이 밈처럼 유행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닐까. 


트라우마와 PTSD라는 용어들이 때로는 오용 그리고 남용되고 있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정신건강 전문가들도 많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많이들 알려졌다시피 PTSD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의 준말인데, 이를 경험하는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정식 진단명이자 정신장애이기 때문이다. 식약처에서 얼마 전 마약이 너무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등 마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식품광고 및 상호명 등을 금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PTSD라는 심각한 정신장애가 가벼운 무언가로 여겨질 것에 대한 우려이자 경계다. 




단순히 일반인들이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트라우마의 이름을 붙이는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하고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트라우마의 개념은 그 외연의 확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예를 들면, 대리외상 (vicarious trauma; 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정서적 고통을 수반하는 경험)이 있다. 대리외상의 일반적인 예 중 하나는 상담자가 성폭력 경험을 가진 내담자의 피해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정서적 고통 및 트라우마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국내에는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문화적 외상 (cultural trauma) 이란 개념도 있다. 문화적 외상이란 특정한 사회적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해당 집단에 일어난 차별, 혐오, 폭력 등으로 인해 집단적으로 트라우마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미국 건립 초창기에 노예제도 하에서 겪었던 억압과 폭력이 있다. 이 외에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구분되는 다양한 개념으로 사회적 외상 (societal trauma), 집단외상 (mass trauma), 대리문화외상 (vicarious cultural trauma) 등이 있다.




나 역시 트라우마 그리고 PTSD라는 단어가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게 아니냐는 경각심에 분명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폭넓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범죄, 재난, 인간관계, 육아, 교육 등 사회문화의 다양한 분야를 설명하고 관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이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여러 사건 사고들도 트라우마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일례로, 올해 들어서 칼부림 관련 범죄가 자주 보도되면서 해당 일을 겪거나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도 뉴스와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선 불안과 두려움을 키우게 될 수 있다. 사건과 범죄에 대한 간접적인 노출만으로도 일종의 '대리외상'을 경험하는 셈이다. 


학술적으로 생각할때야 최대한 개념이 명료하게 떨어지고 그 의미가 분명해서 조작이 가능할수록 훨씬 환영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과 용어가 어딘가 모호한 구석이 있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아마 누군가는 분명 '뭐 그렇게 하면 죄다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냐?'라고 할 테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게 이미 그 단어의 범용가능성과 확장성을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랄까. 




이미 글의 어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나 역시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꽤나 유동적이며 현재진행형으로 발전 중인 것에 딱히 부정적이지 않다. 이를 관망하기도 하고 오히려 참여하기도 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트라우마 연구자'로 칭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몇 년 전부터 나도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 연구들을 해오고 있는데, 트라우마를 나의 연구주제로 정한 건 이런 트라우마의 확장성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Note: PTSD는 DSM-5에 의거한 정식 진단명이기 때문에 또 다른 얘기다. PTSD 용어의 사용은 본뜻을 호도하거나 진단명이 주는 무게감을 희석시킬 수 있기에 분명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된다)


애당초 라틴어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 자체가 '큰 상처 (영어로는 wound에 가깝다고 한다)'라는 뜻이다. 주로 신체적 부상 또는 상처에 쓰이던 말을 정신의학에서 심리적 트라우마 (psychological trauma) 라는 말로 마음의 상처,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의미하며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현재 광범위하게 쓰는 트라우마의 뜻 자체가 이미 본래 의미에서 확장되고 차용되어 쓰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분명히 구분하지만 'PTSD'가 아니라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 지을 때, 트라우마는 넓은 의미에서 '마음의 상처'로 이해할 수 있다. 트라우마가 마음의 상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음속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잊고 싶어 하는, 또는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상처 여럿을 간직하고 산다. 과거의 일이라 다 아물고 그저 흉터만 남은 줄 알았건만 이따금 비가 온다거나 하면 아려오는 그런 상처들이 있다. 이때에 트라우마는 더 이상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그저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이야기일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트라우마에 대해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믿는다. 일반적인 트라우마 경험이란 무엇이며, 내가 경험한 트라우마는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지금껏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럼에도 내가 비교적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현재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없다면 늦게나마 지금 그 트라우마를 마주할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처가 남긴 흉터까지 아예 없앨 순 없지만 고통을 줄이고 또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한동안 글을 또 많이 못썼는데 그나마 내가 조금 알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 조금씩 써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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