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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Mar 24. 2022

세상을 바라보는 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집단이든 직업군이든 사회 또는 문화권이든, 어떤 한 맥락 안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매년, 아니 2-3년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정기적으로 거주하는 나라를 옮기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문화권 간을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한 맥락 속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다 보면 당연히 어느 누구라도 그 맥락이 강하게 가치고 있는 가치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치들을 일정 부분 내재화하여, 즉 나의 가치로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소식을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있으나 그들의 또는 우리의 반응은 같지 않고 제각각이다.  물론 집단 내에 존재하는 어떤 경향성이 그 안의 개개인을 규정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여전히 같은 맥락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좀 더 비슷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같은 종류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가 또는 다른 자산들의 가치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은 생각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도 특정한 주식 종목에 호재 또는 악재가 되기도 한다.  증권가에서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주식이나 투자적 사고를 지닌 일반 사람들 역시 비슷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자신의 자산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난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증권가에서 일하는 친구의 스토리를 보게 되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쟁이 주식에 미친 영향에 대한 짧은 코멘트였다.  구글에 키워드를 몇 개 넣어서 검색만 해 보아도 수많은 관련 기사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악재에도 주가는 왜 오를까", "우크라 상관없이 하반기 때 뜬다는 미국 주식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슈로 인한 고유가 수혜주" 등등.  이들은 모두 주식, 주가, 투자의 눈으로 러시아 침공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정계에서도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다.  한 대통령 후보는 다소 가벼워 보이는 사진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상대측 진영 후보에게도 역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를 트집 잡아 서로가 서로를, 각 거대 양당이 상대 당을 비난한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대선 후보들의 언행과 별개로 각 거대 양당에서도 이러한 국제적 국면을 어떻게 당에 유리하게 활용할지 정치적 셈법을 부단히 고민했을 것이다.  


국제정치적인 상황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던 듯하다.  스위스는 '중립국'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게 이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뜻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은 유럽연합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기고 전쟁을 일으킨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스위스의 행보가 반갑고, 또 괜찮은 명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스위스가 "공공선"만을 위해 자국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러시아 자금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기만은 어렵다.  인도주의적 가치가 없진 않았겠으나, 나라의 흥망에 영향을 미칠 여러 변수들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계산하여 내린 결정일 것이다.  아래 기사에서 그 구체적인 셈법을 조금 헤아려 볼 수 있다.


스위스, 중립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지지 선언한 까닭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977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심리상담의 영역에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당연하게도 전쟁이 사람들의 심리상태와 정신겅강에 미칠 영향에 대해 먼저 생각한다.  전쟁은 대표적인 인재, 즉 인간에 의해 생긴 재난 상황이며, 상담의 카테고리 안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재난상담 또는 위기상담이라는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  마침 나도 이번 학기에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 중 '위기상담' 과목을 맡고 있어서 심리적 응급처치 (Psychological First Aid) 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 현 전쟁상황과, 그로 인한 심리적 충격 및 피해와,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이런 재난이 발생할 때 어떤 개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토의하기도 했다.


상담에서는 또한 내담자의 다문화적 정체성 및 경험을 중요시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억압을 받는 내담자를 위해 사회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중점을 둔다.  그래서 내가 속한 상담학과 및 프로그램의 학생기구에서는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모금을 자발적으로 준비해 왔다.  전쟁의 고통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다.  우크라이나의 자선단체 및 정신건강 관련 봉사단체 등을 검색하고,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추려냈다.  그리고 오늘부터 전체 학생에게 메일을 보내 모금을 시작한다.  




사실 우리가 최초로 놓이게 되는 사회적 맥락은 가족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 가족환경은 그 누구에게도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맥락인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우리가 몸을 담을 환경, 사회적 맥락, 직업과 직업군, 그리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으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그 겹겹이 쌓인 맥락들과 계속 상호작용을 하며 우리의 가치관을,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들어 나가는 셈이다.  


나는 내가 현재 속한 환경과 맥락이 내포하는 가치들에 동의하는가.
그 맥락 안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동의할 수 있는가.
그러한 가치와 관점을 기준으로 내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가.


직업을 선택하거나, 앞으로 나아갈 인생의 방향을 생각할 때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들이 아닐런지.




무려 2022년에, 이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이런 무력전쟁이 위정자의 비틀린 역사관으로 인해 이토록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통탄스럽다.  벨라루스가 참전을 언급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근접 국가인 폴란드가 나토 국가들에게 평화유지군을 제안하면서 국제전,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그 일말의 가능성마저 생겨나고 있다.  


환경과 맥락을 넘나들어 대다수가 필요로 하고 중요시하는 가치들이 있다.  바로 지금 전쟁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서 앗아간 것들이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일상의 삶.  닳고 닳은 단어들처럼 들리지만, 막상 이것들이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곧바로 깨닫게 된다.  우리가 향유해온 저런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를.  


이미 전쟁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은 다시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죽은 가족은 돌아오지 않고,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수십년 간 지속될 수 있으며, 다시 재건해나가는 집과 마을 역시 이전의 그것들이 아니기에.  그럼에도, 고통과 비극 속에 있을 많은 이들이 부디 다시 자유와, 평화와, 일상의 기쁨을 최대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Source: https://www.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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