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4인 식구가 함께 지내는데도, 아무도 아프지 않고 순탄하게 지내는 날이 1년 중 절반이 될까 싶다. 체감상 정말 그렇다. 물론 막상 안온하게 지내는 날들은 아무도 아프지 않음에 감사하지 않고 흘려보내기 때문에, 체감상 누군가 아픈 날들이 훨씬 많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주 아프기 마련이다. 한 아이가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바이러스를 옮아오면 다른 아이에게 옮기고 또 부모인 우리에게 옮기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온갖 세균을 옮아온다는 뜻으로 "germ carrier" 또는 "germ factory"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농담처럼 쓰는 말이다.
지난 며칠 동안 둘째 아이가 아팠다. 감기증상처럼 열이 나고 기침을 좀 하는데 약간 심상치 않아 병원에 데려갔더니, croup 진단을 받았다. croup 은 요맘때 1-2살 아이들에게 비교적 흔하게 나타나는 질환인데, 한국어를 찾아보니 후두기관기관지염이라고 한다. 둘째는 기관지가 약한 건지 지난 17개월 동안 중이염만 4번, 크룹은 2번째다. 그래서 이번이 벌써 6번째 항생제 복용이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모든 스케줄이 흐트러진다. 열이 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학교에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보다는 내가 근무의 유연성이 있는 편이라, 이럴 경우 아이를 낮에 돌보는 일은 주로 내 일이 되곤 한다. 수요일 당일에 계획돼 있었던 6개의 미팅을 죄다 취소했다. 혹시 아이가 괜찮아질까 기대를 품으며 목요일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가 계속 아파서 목요일 일정도 모두 취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로 인해 이렇게 미팅을 취소하는 게 어떤 동료들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하나같이 괜찮으니 걱정 말고 아이 돌보는데 집중하라며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미국에 지내며 느끼는 단점들도 많지만 좋은 점 중 하나는 가족과 아이로 인해 생기는 여러 사정에 훨씬 관대하다는 점이다. 그들 중 아무도 눈치를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치는 보인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축축하게 한데 엉겨 붙은 느낌이다.
평소 낮잠 시간이 아닌데도 아파서 지쳐 잠든 모습이 안쓰럽지만, 조금만 더 자 주길 바라...
아이가 아픈지 3일 차였던 금요일 아침, 밀린 일들도 있고 오후엔 꼭 참석해야 하는 교내 행사도 있어서 지인 분께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아이들을 깨우고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이고 첫째 학교를 보내고, 그러고 나서야 둘째를 맡기러 갈 수 있다. 아내는 새벽같이 출근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의 시간은 오롯하게 내 몫이다. 그래서 아침 시간은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으며 첫째를 학교에 지각시키지 않기 위해 벌이는 사투의 시간이다.
그런데다 둘째가 아팠던 지난 금요일의 아침. 둘째는 아파서 한시도 내 옆을 떨어지지 않고 계속 안아달라고 울며 보챘다. 하는 수 없이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첫째의 아침식사를 거들어주고 있는데, 오마이갓. 둘째가 손에 쥐고 있던 애플소스를 내 온몸에 찍- 뿌렸다. 첫째의 쩍 벌어진 입, 둘째의 순진무구한 표정, 그리고 순간의 정적. 오후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나름 신경 써서 차려입었던 자켓과 셔츠 그리고 팬츠가 모두 애플소스 범벅이 됐다.
아... 이를 어쩌나. 첫째를 지각시키지 않으려면 10분 안에 애들 밥도 마저 먹이고, 내 옷도 갈아입고, 아이들 이도 닦이고, 가방도 마저 챙겨 출발을 해야 하는 상황.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그런데 울 겨를도 없었다. 비상상황에 걸맞게 집안을 우당탕탕 뛰어다니며 여차저차 그래도 시간에 맞게 집을 나섰고, 첫째는 학교에 둘째는 지인 집에 무사히 데려다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 둘을 보내고 나니 혼이 빠진 것만 같았다. 도저히 이대로 바로 일을 시작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잠시 직장 근처의 커피숍에 들렸다. 라떼를 한 잔 마시고 사람 구경을 하며 잠시 멍을 때리니 그래도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듯했다. 그렇게 20여분 마음을 좀 추스르고 다시 차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정신을 조금 차리고 또 깨운 줄 알았는데. '차'라는 은밀하고도 안전한 공간으로 들어오자 예기치 않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른 의무들을 다하느라 내팽개쳐졌던 나의 감정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지난 며칠 좀 힘들었구나. 애썼구나.
아픈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나로 하여금 풀 수 없는 문제 앞에 또다시 마주 서게 한다. 아빠 노릇도 잘하고 싶고 적당히 괜찮은 남편도 되고 싶다. 아이가 아플 때 그 곁을 온전히 지키며 필요한 돌봄을 잘 제공해 주는 보호자이고 싶다. 반면에 나는 더 성취하고 싶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기도 하다. 아이를 핑계로 미팅을 취소하고 기한을 늦추는 부탁을 하는 사람보다는 정해진 기한에 훌륭한 퍼포먼스를 내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이제는 나는 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해내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눈물은 말보다 진한 무언가를 말한다는데, 나의 그 눈물의 뜻을 곰곰이 헤아려 본다. 말도 잘 못하는 아이가 아픈데 내가 온전하게 돌보지 못하는 미안함과 아픈 아이를 바라보는 애틋함. 일도 연구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황에 묶여 그러지 못하는 답답함. 갖은 미팅을 취소하며 느끼는 미안함과 괜히 위축되는 마음으로 인한 서러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자조 섞인 무력감.
그날 오후엔 또 마침 첫째 학교에서 연날리기 행사가 있어서 둘째를 픽업하기 전 첫째 학교에도 잠깐 들렀다. 연을 날려보는 건 나로서도 오랜만이었고, 딸과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다. 바람이 적당하게 불어 연이 무척 잘 날았다.
푸르른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맞으며 딸과 함께 연을 날리니 엉키고 설킨 마음이 단박에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한편 연이 꼭 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록 줄에 묶여서 제약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이, 그리고 그 제약 덕분에 어디론가 아예 떠나버리지 않고 다시 안정적으로 연을 날리는 이에게 돌아올 수 있는 모습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올라올 때면 나에게 조금 너그러운 말을 해주려 한다. 이만하면 된 거야, 잘하고 있는 거야. 나름의 최선이었어. 그렇게 좋은 의미로 합리화를 하고, 스스로를 보듬고 토닥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들을 나는 많이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