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재우면 찾아오는 고요한 시간
우당탕탕.
하루를 이보다 잘 묘사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하루란 시간은 그 끝에 서서 돌아보면 참 짧디 짧은 찰나의 순간이다. 오늘도 그렇게 우당탕탕, 주말 하루를 보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던 첫째의 목소리와, 오늘따라 잠투정이 많던 둘째의 울음소리와, 아내가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는 소리들로 가득했는데. 며칠 내내 푹 자질 못해 피곤했던 나는 그 왁자지껄한 소리 속에서도 소파에서 끔뻑 졸았다.
"나 안 잤지?"
"완전 잤는데? 코도 골고 잤어~."
예전에 학창 시절 때 학교에서 수도 없이 엎드려 자던 기억 때문일까, 주말에 좀 늦잠이라도 잘 성싶으면 이내 나와 형을 깨우곤 하던 근면성실의 아이콘이었던 아버지 때문일까. 아니면 잠깐이지만 공동의 직무를 유기했다는 미안함 때문일까. 주말 저녁, 이렇게 졸고 나면 나는 늘 괜한 민망함에 "나 안 잤지?"하고 물어본다. 아, 근데 오늘은 정말 잠시 눈만 감고 있던 건 줄 알았다.
요 며칠 갑자기 수면 스케줄이 엉켰긴 해도, 이제 4개월이 곧 되는 둘째는 참 순하고, 잘 먹고, 잘 잔다. 아주 오랫동안 잠을 쉬이 자지 못하던 첫째와 극명히 비교가 되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쉽게 잠들지 못하던 둘째를 한 두 번 안아서 달래주고 다시 눕혀주고 나왔다. 앵앵 우는 듯하다 이내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같은 시각, 아내는 첫째를 재운다. "재웠어?" 나의 카톡에 답이 없는 걸 보니 아이를 재우며 같이 잠든 모양이다.
아이 둘을 재우고 나면 그제야 집에 고요함이 찾아온다. 이윽고 둘러본 집안은 오늘 하루 우리 가족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탈탈탈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와 그 옆 빨래가 쌓여 있는 바구니가 하나 더. 첫째에게 자기 전 정리를 시키긴 하지만, 집안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이의 흔적은 그가 정리한 것보다 훨씬 많다. 남아 있는 깨끗한 젖병도 하나뿐이다. 새벽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두 번 수유를 생각하면 젖병이 2개는 남아 있어야 하는데.
보통은 이렇게 쌓여 있는 집안일을 보면 한숨이 푹 나올 때도 있다. 그래서 심호흡 한 번 하고 정리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왠지 이 "익숙한 엉망진창"이 괜스레 정겨워 보인다. 혹시 이 평온함이 잠깐의 단잠 효과 때문인 거라면 앞으론 매일 낮잠을 꼭 챙겨 자야 할 판이다.
아내는 온화하고 또 무던하고 사람이다. 그 덕인지 일희일비하지 않고, 예민하게 굴 때도 잘 없고, 뭔가를 막 너무 좋아한다거나 싫어하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은, 그런 무던한 사람. 그런 아내가 싫어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집이 정돈이 너무 안 된 채로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 아내는 아침에 엉망인 집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밤에 정리를 하는 거라고 했다.
대부분의 집이 그렇겠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그제야 우리는 밀린 집안일과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서 '집안일'과 '정리'라는 것은 마치 밀어 올린 바위가 다시 떨어질 줄 알고도 언덕 위로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다. 그다음 날이면 다시 엉망진창이 될 줄 알면서도 그래도 그 잠깐의 평화를 누리고자 내일이 오기 전 힘을 쥐어짜 보는 그런 숭고함이 깃든 일이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말마따나 이야말로 인생의 '부조리'이자 '인간승리'다.
각자 눈에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고 나선 티비 앞 소파로 모인다. 보통 이때 이미 몸은 녹초다. 그래서 머리 복잡한 건 못 보고 예능을 보며 함께 깔깔도 대고, 못다 한 얘기도 하고, 야식도 먹고, 나만 봤던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이야기하고, 속상하거나 짜증 났던 일도 얘기하며 털어버리고, 아주 가끔은 누구 흉도 조금 보고. 그러다간 피곤한 사람 먼저 (10번 중 9.7번은 아내) 침대로 향하는, 나름 우리만의 루틴.
물론 오늘처럼 루틴대로 저녁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날도 생긴다. 나도 그냥 누울까 하다가 그래도 몸을 움직이기로 한다. 젖병도 닦고, 아이가 온 집안에 흩뿌려둔 장난감과 인형도 제자리에 놓고, 세탁기와 건조기도 일 좀 시키고, 빨래도 개고. 지이잉, 스마트워치가 손목을 울린다. 오늘도 이렇게 걸음 일만 보를 채웠다!
지난 달에는 우리의 7번째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케이크를 앞에 두고 함께 조촐한 축하를 나누긴 했지만, 저녁까지 수업이 있었던 나는 바쁘단 핑계로 카드를 쓰지 못했다. 끽해야 생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정도에나 하는 연례행사인데. 아내는 어차피 내게 카드를 못 받을 것 같은 생각에 미리 짜증이 나서 본인도 안 썼다고 한다. 아... 온화한 아내는 현명하기까지 하다.
오늘은 아내에게 고마움을 담아 짧게 카드까지 써볼까 한다. 잘 개어 제자리를 찾아간 빨래들과, 부자연스럽게 느껴질만치 정리된 우리의 모든 공간들, 아무 날도 아닌 날 생뚱맞게 식탁에 놓인 나의 카드를 보고 아내가 내일 하루의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길 바라며, 오늘 하루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