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면 보이는 것들
엄마는 꾸준히 운동을 하셨다. 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는 주로 수영을 하셨고, 나도 어린이 반에 등록해 자유형까지 배웠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생 때는 탁구장에 등록한 엄마를 따라 오빠와 함께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탁구를 치곤 했다. 또, 무더운 여름날 해가 지고 밤이 되면 가족끼리 배드민턴 채를 들고나가 땀 흘리던 추억도 있다. '운동을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했던 적은 별로 없었고 엄마를 따라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몸을 움직였던 것 같다. 엄마에게 생활체육이 익숙했던 것은 외가 쪽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외삼촌은 한 때 수영 강사였고 할머니는 꾸준히 배드민턴을 치셨고 종종 대회에 출전하시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아파트 내 헬스장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이때도 기구 사용법이나 운동 자세를 엄마가 가르쳐 주셨다. 부모님은 종종 오빠가 이때 근력운동을 너무 해서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았다고 걱정하신다. (사실 확인이 불가합니다!) 그리고 제일 좋았던 기억은 후텁지근한 여름, 집 앞 공원 메타세콰이어 길을 따라 파워 워킹을 하던 것이다. 그쯤 파워워킹이 유행했던 터라 동네 아주머니들이 많이 나와 걷기 운동을 하셨다. 다른 사람을 앞지르면서 혼자 속으로 '내가 이겼다!'를 외치기도 하고 한여름 매미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빨리 걷고 나면 땀이 쭉 빠져 기분이 엄청 상쾌했다. 아마도 이때 걷기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독립을 하고 나서도 헬스장이나 수영장을 등록해 다니기도 하고 집에서 유튜브로 홈트(Home Training)를 하기도 했다. 이직하고 이사를 하면서 최근에는 집 근처 산책 길을 즐기는 중이다. 가끔 오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 군단을 보면 나도 자주 걸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생긴다. 날씨가 여름에 가까워지면서 나무에는 푸릇푸릇한 새 잎이 나고 꽃들은 만개했다. 특히 낮에는 풀들의 초록색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끝내준다. 요 며칠 퇴근 후 괜히 피곤하다는 핑계로 침대와 한 몸으로 지내다 잠이 들곤 했는데, 오후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 같아 어제는 저녁을 먹고 바로 운동화를 챙겨 신었다. 오후 5시쯤 한 차례 쏟아진 비로 더운 공기는 사라지고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딱 해 질 무렵이라 분홍 빛 노을이 눈 앞에 펼쳐져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걷는 내내 분홍 빛 하늘, 푸릇푸릇한 나무들과 비를 맞아 무럭무럭 자란 풀, 꽃을 보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려 집에 도착했다.
한 번의 귀차니즘을 털고 일어나면 뜻밖의 행복을 얻게 된다. 항상 시작이 힘들지 이렇게 멋진 풍경과 자연을 보고 나면 '오늘도 밖으로 나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운동으로 건강과 마음의 평안까지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습관 덕분에 내 삶의 일부도 운동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엄마와 함께 산책하던 길을 생각하면서 소소하지만 행복한 오후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