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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ssong Nov 26. 2021

‘로즈마리’ 향기 가득

2021년 가을을 보내며

  인스타그램 DM이 왔다. 8년 전에 만난 친구에게서. 미국 교환학생 때 같이 마케팅 수업을 들은 ‘로즈마리’라는 친구다. 너무 오래전 일이지만 친구의 유쾌한 성격이 딱 떠올랐다. 잘 웃고 유머러스하고 참 ‘스윗’한 친구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 혼혈의 할머니가 계시고 나와 생일이 같은 친구! 한국에 여행을 와서 자가격리 중인데 혹시 서울에 와서 자기를 만날 수 있냐고 물어왔다. 가끔 생각지 못한 친구들에게서 안부를 전해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따듯한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나는 바로 ‘당연하지!’라고 답장을 보냈다.
   로즈는 한국에서 두 달을 보냈다. 그동안 우리는 서울과 부산에서 만났다. 많이 걸었고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눴다.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국적이 다른데 삶에 대한 고민, 살아가는 방식이 이렇게 비슷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8년 만의 재회인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며칠 전에 본 사이인 것 같았다. 아마 로즈가 워낙 사교성이 좋고 남을 잘 배려하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로즈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태국에 가서 살게 되었다. 사실 미국과 태국을 오가면서 자랐기 때문에 가끔은 태국도 미국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 병원에서 영양사로 일 하면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올바른 식단을 처방할 수 있도록 의사를 교육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다 태국어를 한다는 이유로 ‘라오스’에 있는 병원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태국과 라오스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전혀 다른 곳인데 병원 측에서는 막무가내로 ‘거기가 거기지’라는 판단으로 로즈를 그곳으로 보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책임감으로 일 하면서 외롭기도 하고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나 몰라’라 하는 회사의 태도에 실망도 하고 누구 하나 보살펴 줄 사람 없다는 두려움도 느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가 지내다가 갑자기 한국 여행을 결심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멕시코에서 지낸 시간들이 생각나서 무척이나 공감했다. 나 스스로가 멕시코행을 선택했지만 외롭고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코로나 상황에 누구도 나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열심히 살아온 친구가 대견했다.

  로즈는 여행 중에도 이력서를 작성하고 다음 직장에 대한 서칭을 했다. 미국 청년들도 학자금 대출을 갚고, 렌트비와 생활비를 빼고 나면 모을 수 있는 돈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료보험도 들어야 하고, 미국은 땅이 넓어 차도 필수인데 자동차 보험으로 나가는 돈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국가든 여행자 신분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의 설렘과 새로운 경험을 하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뭐든 좋아 보인다. 그 나라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보면 모두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미국에서도 특정 나이에는 어떤 것을 이루어야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시선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로즈의 요즘 고민은 언제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느냐이다! 하하

  우리 둘은 내년 봄까지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같이 유럽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다. 어쩌면 이 약속을 통해서 갑갑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버틸 힘이 생기지 않을까. 우리는 현실과 마주해야 하고 그것을 살아내야 하지만 가끔은 달콤한 꿈도 꾸고 낭만도 느끼는 사치를 잠깐 부리면서 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로즈와의 만남으로 나는 일상에 힘을 얻었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로즈에게도 일상으로 돌아갈 힘과 에너지를 줬으면 좋겠다. 이름처럼 자기만의 향기를 가진 친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친구의 미래를 응원하고, 씩씩하고 밝은 성격으로 뭐든 잘하리라 믿는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한국인 패치완료. 김치찜을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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