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풋이 없는
군대를 다녀오고 배움에 재미를 들였다. 단순히 학과 공부가 아닌,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분야를 자유롭게 찾아 학습했다. 극한의 집돌이였기에 집에서 배울 수 있는 분야로 한정해서. 파워포인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프로 같은 디자인 툴들이었다.
책도 꽤나 읽었던 것 같다. 등하교할 때마다 e북을 조금씩 읽었다. 처음에는 즐거웠다. 뭔가 유능해지는 기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는 만족감. 그러나 점점 의문스러웠다. 배우기 전과 배우고 난 후, 나는 달라졌는가? 시간을 실제로 허투루 쓰지 않았는가?
뭔가 잡지식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정의할 수 없었다. 즉, 결과물이 없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포스터 비슷한 것을 만들었을 뿐. 그 외에는 어느 것 하나 만들지 못했다. 자기 계발 중독. 뭔가 해내고 있다는 감정만을 자아낼 뿐,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목표 없는 허우적거림은 나를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않았다. 다만 제자리에 머물렀을 뿐.
극단적으로 말했지만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그림도 잘 그리고 싶어 연습을 꽤나 오랜 기간 했었다.
괴발개발에서 장족의 발전이다. 그렇지만 무슨 상관인가. 이 정도의 발전으로 난 뭘 할 수 있지? 대답할 수 없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다만 들인 시간의 무의미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내 데스크 위에 올라가 있던 타블렛은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반박을 할 수도 있다. 인간의 모든 것이 목표를 향해야만 하는가. 아니다.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 내게 기타가 그랬다. 마냥 즐거워 손가락 끝의 고통을 무시하고서 쇠줄을 퉁겼다.
욕심이 생긴다. 만약 과정도 즐겁고 목표도 충족시킨다면. 그건 최고가 아닐까?
목표에 도달하면서, 과정 자체도 즐거운 그런 금광 같은 일을 찾는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그렇듯, 이런 의문도 누군가가 먼저 가졌다. 답도 했고. 드로우 앤드류 님의 도식을 빌리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세상에 필요한 것'의 교차점을 찾으라 말한다.
3개월 만에 또 일냈다... 내가 찾은 월 천만 원 테크트리 (S1 E2) (youtube.com)
『프로세스 이코노미』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몰입의 3가지 조건으로 설명한다.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이어야 하고
그것만으로 즐거워야 하며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함
사실 이 글도 ‘아웃풋’,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다. 자기 계발 중독을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다.
다른 것보단 글을 좀 더 잘 다루는 듯하다. 글을 짜고 있으면 즐겁다. 과정이 괴로울 때도 있지만 완성된 형태를 보면 나름 만족스럽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는 수밖에. 일단 시작하고 수정하기. 나태한 나에게는 이게 필요하다.
선언이기도 하다. 사람은 일관성을 지키려 한다. 자신이 내뱉은 말은 쉽게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최대한 지키려 든다. 이렇게 글로써 남기면 더욱 효과는 크다. 브런치 팔로워 50명 만들기. 이게 이번 분기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