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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Mar 08. 2024

출근 안 해?

이게 출근입니다만

출근 안 해?


이 한 마디에 왜 이렇게 짜증이 일었을까.


점심 즈음. 느긋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노트북과 휴대폰을 챙기고는 거실 식탁으로 향한다. 세팅을 끝마치고 앉으려 했지만 배가 아파 화장실 문을 연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오니 외출 후 돌아온 엄마가 서 있다. 곧이어 나온 말. ‘출근 안 해?’


순간 머리가 뜨거워졌다.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 대답하는 둥 마는 둥. 그러다 한마디 했다. 앞으로 출근, 퇴근 관련해서 말하지 말라고. 계속 들으니 짜증 난다고. 곱게 말하지 않았으니 엄마도 화가 났겠지. 그런 장난도 못 치냐고 반문했다. 아니,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대답하고 저녁까지 우리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왜 그냥 받아넘기지 못했을까.


화가 나면 5초간 참으라는데, 5초가 훨씬 넘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는 속내에 결국 내뱉고 말았다. 감정에 잡아먹히지 말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참지 못했다. 얘기하더라도 좀 더 담담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왜 그랬을까. 고민해 보자.


나를 감시하는 듯했다. 얼마 전 8시에 노트북을 덮었을 때, 엄마가 ‘8시간은 채웠네’라고 얘기했다. 출퇴근. 나는 굳이 일하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 기준에 맞춰서 자율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휴일에도 일을 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자기 전에도 휴대폰을 켜서 기록한다. 그런 상황에서 출근할 때마다, 그리고 퇴근할 때마다 한 마디씩 덧붙이니 내가 하는 일을 평가하는 듯이 느껴졌다.


'엄마의 평가에 화가 났다.' 맞지만 뭔가 부족하다. 좀 더 깊이 파고들자. 과연 생판 남이 그런 말을 했더라도 불쾌함을 느꼈을까. 아니, 황당함이 앞설 것이다. 결국 ‘엄마’가 그런 말을 했기에 화가 났다. 아하. 사실은 엄마에게 나태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구나. 이게 내 본마음이었구나.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내 욕망이 엄마의 아무렇지 않은 장난을 왜곡했다.


의문이 해결되었다. 혹여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좀 더 살갑게 넘겨야지. 동시에 반성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누군가는 짜증이 일었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늘 저녁은 뭐고?


내가 밥 먹듯이 물어보는 말. 이 역시 밥을 차리는 역할을 강요하는 듯이 느껴질 수 있겠구나. 엄마의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했구나. 저 말보다는 ‘오늘 저녁은 이걸로 할게.’라고 말해야겠구나. 요즘엔 뜸하던 요리를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돈을 왕창 벌어서 외식을 자주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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