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일관성을 좋아한다. 일관적이지 못하면 불편함을 느낀다. 그 예가 '인지부조화'다. 태도와 행동에 불일치는 불편하다. 하지만 저지른 행동은 되돌릴 수 없기에 태도를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모순', 앞뒤가 맞지 않는 말. 모순적인 사람, 앞뒤가 다른 사람을 보면 불쾌함을 느낀다.
모순은 그 대상을 빨리 이해하려는 조급함에서 온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집이 있는 것처럼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면 다채로움이 보인다. 당장에 손만 쳐다보아도 그렇다. 손금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새겨진 주름들. 모두 자신만의 태를 갖추고 있다. 같은 상품이라도 그렇다.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다르다. 불량품이 나오기도 한다. 내 손에 닿기 시작한 순간부터 흔적이 새겨진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애증'의 뜻이 무엇인가. '사랑과 미움'이다. 상반되는 두 감정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한 대상의 이러한 요소 덕분에 사랑을 느끼고, 저러한 요소 때문에 증오를 느낀다. 미국의 심리학자 유진 젠들린은 이러한 감각에 이름을 붙였다. 펠트 센스(felt sense)라는 이름을. 살다 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떨떠름한 느낌이라는 뜻이다. 그 모호함을 언어로 표현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다면 모순은 나태함이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하나의 단어에 담으려는 나태함이다.
앞서 모순적인 사람을 보면 불쾌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불쾌함은 타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나로도 향한다.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나태하게 늘어진 내게로. 이 또한 모순적이니.
나아가 인간의 삶 자체가 모순 덩어리지 않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 삶이 단순 명료하지는 않으니. 사람과 공간과 시간과 감정과 관계가 이리저리 뒤섞여 뭉뚱그려진 게 삶이다. 그런 삶을 낱낱이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모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모순에 불쾌함을 느끼고 시정하려 든다. 우리 삶이 모순으로 그득하다면, 풀어내려 들지 않을까. 결국 삶은 모순의 풀어헤침.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