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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moon gu Aug 21. 2024

영유 안 나온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팔불출 자식자랑

영유 안 나오고 영어학원 늦게 다닌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 글은 팔불출 고슴도치 엄마의 본격자랑심리가 저변에 깔려서 시작을 하니 주의요망합니다.)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는 그 당시 안 나오면 이상했던 영어유치원의 근처도 못 가봤으며 한글도 제대로 못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다들 영어학원을 가버려서 영어학원 안 다니는 아주 극소수의 친구들과 놀이터를 전전했다.


그럼 그의 엄마인 나는,


지금 아이들의 영어 수준을 고려하면 초1정도의 영어실력을 가진 영어가 제일 싫었던 사람이다.

당시 6학년 때 학원에서 처음 알파벳을 배우고 바로 성문기초영문법을 함께 진도 나가며 영어공부를 시작했었다. 영어에 흥미도 재능도 없었던 나는 영어 학원시간에 얼굴은 칠판을 보고 있지만 진짜 외계어 같았던 수업 내용을 내적으로 완벽히 차단하고 나만의 공상을 하는 꿀 같은 시간으로 보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고등학교에 가니 갑자기 영어는 어려워졌고 기본이 하나도 없던 나는 아예 포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차피 문법은 모르겠고 감?이라도 익힐 요령으로 서점에 있는 수능대비 영어 문제집, 모의고사 문제집을 거의 다 사다가 무식하게 다 풀어나갔다. 그 결과는 하늘의 도움으로 외국어 영역을 고득점했고 대학에서도 요리조리 아슬아슬 영어시험을 패스하며 인생에서 최대한 영어를 피해 다니며 살아왔다.

영어에 진심이었던 친언니는 나의 한없이 가벼운 영어 실력에 어떻게 그렇게 까지 모를 수 있냐며 지금도 놀라워한다. 그래도 대학 갔으니 이제 평생 영어 따윈 공부 안 해. 나에게 영어란 그저 미드 속 예쁜 소리일 뿐.


이러고 살던 나도 내 아이의 영어 앞에서는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에 가보니 영유를 나온 친구들은 이미 영어책을 읽고 있었고 놀랐던 건 아주 작은 글씨로 된 두꺼운 갱지책(챕터북)까지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헉, 우리 아들 어쩌나.... 난 이제 어쩌나.

저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인가? 날 닮았으면 우리 아들은 영포자가 틀림없을 텐데..

내가 영어 앞에서 겪었던 고통과 무력감을 아이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제야 닥치는 대로 영어공부책을 읽어나갔다. 이미 영유는 못 나왔으니 패스(어차피 보낼 돈도 없었..)

지금 당장 파닉스 시작반이라도 보내야 하나?

초등학교 1학년  3월이라 학원마다 파닉스 기초반 시작을 알리는 광고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유명학원 파닉스 시작반에 보냈다. 요즘은 아주 재미있고 쉽게 영어를 접할 수 있게 해 주겠지 생각을 했지만 수업내용은 처음 영어를 접하는 아이에겐 많이 버거워 보였다. 거기다 엄마가 챙겨줘야 하는 숙제와 암기도 상당했다.

와... 이걸 초1이 한다고?

보여주기식 영어교육, 딱 그렇게 생각되었다.

8살부터 저렇게 힘들게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이렇게 길게 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들로 마음이 복잡했다. 내 고통을 아이에게 되물려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어교육, 잠수네 등등 초등영어 교육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그들이 얘기하는 게 대충 어떤 맥락인지 알게 되었다. 추천하는 책의 목록도.

한 달 만에 영어학원을 끊었다.


당시 백만 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ort1~5단계 책을 사고 아이와 함께 리딩펜으로 찍고 읽기를 매일매일 반복했다. ort에 푹 빠진 아이 덕에 그 돈도 아깝지가 않았고 나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르고 들이기 시작했다. 책 값이 감당이 안 돼서 도서대여점에서 한글책과 영어책을 무한대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영어 무식자지만 아이와 함께 읽을 수는 있기에 늘 옆에 나란히 앉아서 함께 했다. 나는 그 쉽고 짧은 책을 아무리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렸지만 아이는 금세 외워버렸다.

아이에게 시켜놓고 내가 핸드폰을 보거나 딴짓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아이책을 무조건 함께 읽으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시작은 하루 10분이었지만 나중엔 하루 3시간씩 영어책만 읽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재밌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레테 시즌이 돌아왔다.

학원마다 레벨업을 위한 시험기간이 시작된 거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어학원 1년 다녔는데 다시 파닉스반이 되었다는 둥, 영유출신인데 레벨업 못했다, 여기저기 학원을 옮기는 상황도 벌어진다.

초등 저학년일 때가 엄마들이 심적으로 가장 약하지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해본 적도 없는데 그때 강단 있게 아이의 교육을 안휘둘리고 밀고 나갈 수 있을까? 그저 학원만 믿을 수도, 그렇다고 자기 생각만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영포자였던 내가 아이를 집에서 데리고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불안했는지는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다.


집에서 엄마와 주먹구구식으로 한 영어공부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받기 위해서 아이와 대형학원 레테를 봤다. 결과는 1년 영어학원 다닌 아이와 똑같은 반에 올라갈 수 있는 점수였다.

아 다행이다. 이제 또 1년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2학년을 보냈고 차근차근 영어책을 읽어나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찾고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들으면 그게 그렇게 행복했다. (아.. 배불러)

당시 집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맘먹고 산 게 있었으니 바로 해리포터 영어책이었다.

솔직히 아이가 이 책을 읽을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그냥 미신, 부적처럼 사서 책장에 넣어놨었다.

아이가 좋아했던 해리포터. 가끔 먼지를 털어주고 추억에 잠기는 용도.

초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 아이는 해리포터 1권을 집중 듣기 하며 잤고 1년 동안 그 책을 틈틈이 읽어나갔다. 분명 모르는 단어 투성이었을 텐데 그래도 재미있다며 듣고 또 들었다.

그 시기가 지나니 이젠 집에서 내가 같이 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물어보는 것들은 죄다 문법적인 것들이어서 난 하나도 정확히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미안....

(이때 처음으로 어릴 때 영어공부 열심히 할걸 후회를 했다)

고민이 많았다. 학원을 다니면 영어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욕심은 아이가 영어책을 더 즐기고 읽었으면 했다.  

동네에 작은 영어학원이 생겼다. 외국인 선생님도 계시고 소수로 운영되는 학원이었는데 토론과 책 읽기, 에세이를 쓰는 수업 구성도 좋았다.

한 번도 외국인선생님과 수업해 본 적이 없어서 걱정하며 학원을 보냈다. 첫 수업을 마치고 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뛰어들어왔다.

그게 초4학년이었다.




"그렇게 영어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했던 아이는 지금까지도 영어소설을 매일 읽으며 수능 1등급을 쉽게 찍고 영어에 관해서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로 해피앤딩 끝맺음을 쓰고 싶었으나

코로나, 게임, 사춘기, 인스타라는 복병들이 하나씩 시작되었고 아이는 그저 노는 게 좋은 중3이다. 자발적 영어책 독서는 중1 때 간신히 한 권 읽은 게 마지막이다. 아이가 재밌게 읽기를 기대하며 준비했던 책들은  먼지만 쌓여가서 중고장터에 다 내다 팔았으며 게임과 인스타로 아주 신나는 중3을 마무리하고 있다. 성적은 간신히 유지 중인 듯싶다.


그래... 지금 공부 안 하려고 초등 때 네가 했구나. 크흑

다행히 아이는 나처럼 영어로 고통받지 않게 커주었지만 요즘 학생들의 방대한 공부량과 자극적인 유혹거리들을 옆에 두고 살아간다는 게 힘든 일 같다.


자랑글을 쓰고 싶었다.

중학교 내신 시험을 보고 고입을 앞두고 다시 한번 겸손해진다. 머리가 땅에 닿게 겸손해진다. 고등학교에 가면 나의 겸손은 땅을 파고 깊은 지하로 내려갈 텐데...



늦둥이 둘째 딸에게 희망을 걸어보고 싶지만

극대노 아기는 책이라면 극혐이다. 어릴 땐 책을 좋아했던 오빠와 같을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 책은 그저 쌓기 놀이 블록 같은 것임을. 찢으면 재밌는 종이인 것을.



아가야, 책 그만 찢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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