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정 Mar 10. 2024

사람의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

스스로 해야 했던 트라우마 치유 여정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오래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저는 아동학대의 생존자입니다.       


그 기억들이 참 오랜 시간을 저를 외롭게 하더군요

제가 10대 초반 무렵 시작된 학대는, 제가 결국 모든 연락을 끊고 집에서 작은 캐리어 하나에 의지해 완전히 도망쳐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말을 안 듣는다고 몇 달간 밥을 안 준다던지, 방에 감금을 한다던지, 혹은 일거수일투족을 미행을 하고 제 물건들을 뒤지면서 감시를 한다던지, 아파도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고 방치를 한다던지, 이외에도 각종 폭언, 극심한 신체적 폭행 등에 수시로 시달려왔습니다.


그나마 제가 지금 살아있는 건, 이 악물고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했기에 많은 시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고요.


사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픈 기억들은 우리 뇌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삭제해 버린다고 하더군요.

비교적 최근에서야, 그러한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저를 또다시 아프게 했습니다.


나에게 있었던 일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기억해 내는데

기억 근처에만 가도 눈물이 나고 몸이 덜덜 떨리며, 심장 부근이 정말 아팠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10년도 더 된 한참 오래전의 일인데도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몸과 마음이 아프더군요.


사람의 몸이란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예전의 일도 현재로 가져와서 그대로 느끼고 살 수도 있고

미래의 일도 현재로 가져와서 그대로 느껴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 크고 작은 어린 시절의 리틀 트라우마 가 있다고 합니다.

힘이 없던 유약하고 남에게 기댈 수밖에 없던 시절, 감정이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 부모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은 리틀 트라우마가 그 누구나 있다고 합니다.


과거의 일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기억”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이자 미래를 만들어가는 “미래”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무서운 것은 그래서입니다.

어린 시절, 10년, 20년, 30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형성된 세계관은 우리의 무의식이 되어 알지도 못하는 새에 우리의 한평생에 영향을 주니 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주어진 대로 살아갑니다. 상황이 바뀌거나 환경이 바뀌어도 여전히, 어린 시절에 형성된 가치관으로 오늘과 내일을 삽니다.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요.

그런데 원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명해지는 사실인데요,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그 가정에서 받은 인풋과 사건들로 인해 형성된 세계관 속에서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 사실이 아닙니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기 나름입니다.

과거의 프로그래밍에서 벗어나면 보이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내 안에 새겨진 메시지가 무엇이든, 깨끗이 치워버린 후 위에 다시 새롭게 써나갈 수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과거의 기억과 생각 때문에 내가 자꾸만 현생에서 삐걱대는 건지, 어디를 지우고 어디를 다시 쓰고 싶은 건지 알고 있다면, 다시 쓸 수 있습니다.

      

낡은 못생긴 페이지는 뜯어내고 새로 쓰면 됩니다.


사실 그게 인생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인생은 완전히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
그게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치유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다는 것.


저에겐 10년도 한참 넘은 트라우마가 서른이 다 된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관계를 두려워하고, 누가 선을 넘어 들어오려고 하면 불안해했습니다.

사랑받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주려고 하면 달아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계속 살기에는 참 내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 때문에, 내가 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일들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대체 왜 안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하나, 억울한 마음이 들더군요.


저의 경우에는 뇌가 스스로 기억을 지울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해, 제 인생을 통째로 리프로그래밍해야 했지만요, 덕분에 정말 흰 도화지에 칠해나가듯, 처음부터 저 스스로를 재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걸 collapse of ego: 내가 알던 "나"와 세계의 붕괴라고도 부릅니다.


사람이 제대로 성장해서 최고의 “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회든 부모든 외부의 모든 트라우마와 프로그래밍으로부터 벗어나서 나를 바라보고 편견 없는 상태에서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건데요. 저는 어찌 보면 너무 가혹했던 유년시절 덕에 이 시기가 빨리 오게 된 거지요.



저에게는 자살을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매일 한강을 걷는데, 매일 걷는 길에서 한 발짝만 차도로 가게 되면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가던 길에서 딱 한 발짝만 옆으로 가면 죽을 수도 있구나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쉽다. 죽는 게 생각보다 너무 쉽다.


현생이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죽는 건 너무 쉬우니까 헛웃음이 나더군요. 게다가 생각해 보면, 나를 아프고 힘든 게 한 건 다른 놈들인데 왜 내가 죽습니까. 앞 뒤가 안 맞았어요.  


그래 아무 때나 죽을 수 있는 거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 길로 집에 돌아가하고 싶은 것을 작은 노트 한편에 전부 적었고, 그 바람들은 4년이 지난 지금 모두 현실이 되었습니다.


2020년 방구석에서 적어나갔던 당시 말도 안되게 너무 커보이던 꿈 리스트


저는 제 수많은 트라우마들을 하나하나 직접 꺼내 지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행을 하며 돌아보고 꺼내보고 닦아보며 돌봐주었습니다.


치유를 하는 과정이란 그런 겁니다.

가만히 앉아 고요 속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주는 일.


아, 그랬구나. 아 그때 나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힘들었구나, 고생했다. 토닥토닥.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봐주고, 들어주고, 알아주는 거, 그게 바로 치유입니다.       


성인이 된 내가 어려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던 어린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야합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힘듭니다.

트라우마 기억 근처에만 가도 신체 증상이 너무 심해서 무너지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어린 시절 생각을 하려고만 해도, 공황 증세가 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료할 엄두도 생각할 엄두도 내지를 못했죠.


그럴 때 필요한 게 자연입니다.

건강한 식단이고, 편안한 장소입니다.       


수천년 간 쌓여온 본능에 의해 사람의 몸이 진정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일단 몸이 진정하고 편안해지고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면

그래서 외부의 자극 요소들이 사라지게 되면

한참 눈치 보던 마음이 누울 자리 보고 살짝 다리를 뻗습니다.


내 트라우마가 생겼던 장소,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람들이나 상황 가까이에서는

그걸 치료하기 힘듭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견디기 힘든 트리거,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옆에 있는 상태로는 계속 증상이 발현이 되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이를 필사적으로 억누를 수밖에 없거든요. 근데 이게 아프니까, 너무 아프니까 우리는 또 술, 담배, 같은 것들로 불편하고 아픈 것들을 누르게 되고, 그게 습관이 되어 우리를 더 아프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자연 속에서 모든 자극들을 빼버린 후 - 좋은 것 먹고 물 좋은 물에서 생활하면 몸과 마음에 고요가 찾아옵니다. (유럽 귀족들이 괜히 예전에 아프면 바닷가 근처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서 몇 달씩 조용히 지내다 오던 게 아닙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있으면 마음이 잠잠해집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일렁일렁 묵은 생각들이 올라오며 힐링이 시작됩니다.


하나 희망적인 사실은 힐링은 영구적이라는 겁니다. 우리 몸속에 담긴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들은 하나씩 꺼내 그 묵은 감정을 달래주게 되면, 하나씩 사라집니다.


힐링이 된 다음에는 어떻게 되냐고요?


그 기억들이,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됩니다.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상황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거죠.      


힐링이 되고 나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잔류하지 않고 나를 통과해 지나갑니다


기존에는 화가 나는 일이었더라도, 이제는 평온한 상태로 상대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리틀 부다가 되는 거죠. “저 사람한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이런 얘기를 하나보다” 그런 식으로요. 오히려 화를 나게 만드는 사람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되어가면, 점차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사라집니다.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고요, 그 안 좋은 감정들이 내 몸 안에 지내다 가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렇게 점차 매일을 고요한 평온 속에서 잔잔한 행복감을 느끼며 지낼 수 있게 되는 거죠.


저희 호텔에서는 같은 의도로 모인, 힐링하고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7일 동안 바다, 논밭, 산에 둘러싸여 농장에서 방금 수확한 음식들로 밥을 지어먹습니다. 일출과 일몰을 보며 함께 나무 밑에서 함께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합니다. 최고의 서핑 해변, 정글 속 계곡, 바다에서 말을 타며 몸을 움직여줍니다. 우리 몸이 살아가야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줄 때 몸이 고요해집니다. 그러고 나면 속에 있던 마음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고 연약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줍니다.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고 연약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줍니다. 내 몸에 저장되어 있는 깊이 자리한 아프고 외로운 감정들을 지켜보며 느껴주며 달래주는 게 힐링입니다.


저에게는 항상 힐링이 일어나는 장소가 발리였고요, 그래서 여기 발리에 Gabbi 호텔을 만들게 됐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행복할 수 밖에 없는 라이프스타일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