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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정 Cathy K Jan 04. 2022

세계 여행하고 얻은 것

집을 떠나자 집이 내게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다. 어떤 영화를 보다가 문뜩 벽에 새겨진 문구였는데, 영화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왜인지 그 문구에 온 마음을 다 빼앗겼더랬다.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 T.S.Eliot


영화에서는 이 시가 마치 지도처럼 작용하여 주인공이 원래 탐험을 시작한 원점으로 돌아가게 하는 작은 힌트로 사용되었지만, 오랜 여행을 하고 원래 나고 자란 서울로 온 지금,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완전한 이방인. 유럽인과 태국인, 미얀마인들이 섞여 사는 그곳에서 나는 백인도 아시아인도 아니었으며, White와 Brown으로 나뉜 피부 자본주의의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제1세계에 당당히 속하지도, 제3세계에 속하지도 못하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존재였더랬다.


유럽인과 다니고 있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솔직함과 가혹함을 무기 삼아 온종일 역사 정치문화를 논하는 그들과 어울리기에 난 너무 말수가 없었고, 코코넛 하나 들고 노을을 바라보며 오늘의 파도, 바람, 날씨 품평회와 동네 아낙네 썰을 푸는 태국인들의 대화에도 선뜻 끼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항상 너무 튄다고, 너무 기가 세다며 인사하자마자 홀대받거나 입을 열면 제지당하기 일수였고,  미국에서는 너무 조용하다고 존재감이 없다고 상사가 한 소리 했더랬다.


그래서 나는 말없는 자연이 좋았고, 사람과 멀어지려, 너무 뜨거운 그들과 멀어지려 애를 썼었다. 주말이면 혼자 아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누군가의 차에 얹혀 강릉으로 떠나 조용히 밤바다를 바라보다 왔더랬다.


이 도시가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할 때는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서는 제주로 갈 때도 있었고, 런던으로, 싱가포르로, 뉴욕으로, 대만으로, 훌쩍 당일 비행기표를 사서 가방 하나만 들고 홀연히 떠나 온연한 홀로를 즐기기도 했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이방인들 사이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외딴 나는 너무도 외로워서, 그렇지만 외로운 게 당연해서 외롭지 않게 되었었다.


그렇게 런던 밤거리를 걸었고, 뉴욕에서도 걸었고, 대만에서도 걸었고, 싱가포르에서도 새벽 시간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어서 집에 도착하고는 했다.


외딴섬, 외딴 사람으로 사는 건 꽤나 로맨틱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씁쓸한 감성을 재료 삼아 혼자 끼적이는 글을 써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여행이 달았던 것은 끝이 있는 여정이었기 때문이 가장 컸다.


어디를 가도, 나는 돌아올 곳이 있어.


그게 집이라는 존재였고, 당시의 나는 그 집이라는 곳에 진절머리가 날대로 났었다.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는 곳에는 두꺼운 벽, 하이얀 천장 그리고 숨 막히는 공기만 그득했을 뿐이니까.


나는 화려한 불빛들을 밤새 헤매다가 좁고 작은 나의 방에 컴컴해져 돌아와서는, 또다시 그 집이란 공간을 벗어날 궁리만을 했다. 집은, 답답하고, 불안하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이따금 하는 여행은 너무나 달았고, 마치 마약에 중독되었던 듯, 여행이 끝난 뒤의 일상은 언제나 터무니없는 현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처절한 무색무취의 일상으로 느껴졌다.


여행을 계속하는 삶을 꿈꿨었다. 집에 갇혔던 나는.


그 꿈이 현실이 되어 나는 이제 그 무거운 집을 벗어버린 채, 여행만을 계속하고 있다.


여행을 계속하자 참으로 어색하게도 여행이 새로운 일상이 되는 때가 찾아왔다. 내가 피하려고 했던 예측 가능함, 지루함, 답답함,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것들이 두세 달만 되면 집 앞 문턱에 턱턱 대가리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여행의 열정은 가시고, 짐을 다 풀 새도 없었건만 일상이란 자식은 자꾸만 나를 따라잡아 내 발목을 잡고 놔주지를 않았다. 그렇게 여행을 할 때마다 매번 다음에는 다를 것이라는 환영에 사로잡힌 채, 도망가듯 채비를 하고는 했던 것 같다.


어느덧 거의 일 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원래 여행을 시작했던 서울로 되돌아왔다.


수십 번도 더 밟았던 오랜만의 서울은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뭔가 좀 더 가볍고, 산뜻했고.. 따뜻했다.


공항에 내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속에서 처음 알아차린 것은 반짝반짝 빌딩 숲 위를 그을리는 파도 위 빛깔과도 닮은 윤슬이었다.


회색 빌딩 숲, 회색 인간들로 보였던 공간이 햇빛이 가득 차 보였더랬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그 느낌은 익숙하면서도 굉장히 신선한 데가 있었다.


처음으로, 서울에서 산 20년 만에, 서울이, 조금은 예뻐 보였고, 왜인지 모르지만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집. 집 같았다. 따뜻하고 산뜻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수천 번도 욕하면서 떠났던 그 찬 길이 지친 행색을 반겨주는 품이 되고, 답답한 공기가 가득했던 거리는 화려하지만 단정해 보였다.


항상 저주하면서 떠나고 돌아왔던 도시가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항상 떠나기 급급했던, 물들기 두려워했던 일상이 잔잔하니 편안해졌다.


세계를 돌고 돌아, 이번에는 정말로 집에 온 것이다.


도시의 문제도, 작은 방의 문제도 아니었음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집. 내가 있을 곳. 내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곳. 내가 있는 그 어디든 집이고 어디든 일상이 된다. 내가 편히 느끼는 그곳이 집이 된다.


내가 애증 하던 서울이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포근할 , 어쩌면 드디어 조금은 성숙해진 걸까 생각을 해본다. 조바심을 드러내고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끝에는 결국 집이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서도 반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나 스스로를 편안하게    있게 되었다면. 나는 비로소 집이 생겼다고 말할  있을  같다.


27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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