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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yselfolive May 22. 2021

나의 입사 기념일

스물 넷, 나의 성장기

Anniversary

어린 시절, 생일이 그렇게 일년 중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날이었다. 어린이날도, 크리스마스도 물론 중요했지만 동생과 하루 차이였던 우리의 한 여름의 생일 파티는 항상 성대했다. 동생 친구들과 내 친구들,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시끌벅적하던 그 시절의 우리 생일 파티. 한 해 중, 우리가 태어난 날들을 기념한다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특별했다. 그만큼 엄마, 아빠 뿐 아니라 온 세상이 나의 탄생을 응원이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 살 씩 나이를 먹어가며 키가 커가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입사 기념일

일년마다 챙기는 기념일들이 살아가면서 자꾸 늘어갔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기념일이 나의 페이스버서리, 입사 기념일이다. 이렇게 좋을 일이었으면 처음 사회에 나왔던 그 날의 날짜를 매년 꼬박꼬박 챙기며 나의 성장기념일로 기억해둘 것을.

우리 회사는 입사 기념일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응원을 받는다. 한 해의 나의 성장을 칭찬받고, 앞으로의 또 한 번의 일년을 응원받는 기분이다.


성장 회고

생일 때마다 엄마가 친구들보다 키가 더 얼마나 컸는지,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친구들과 등을 대고 키를 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입사 기념일마다 스스로 내 키가 얼마나 더 컸는지 궁금해했다.

내 나이 46살, 회사 생활 24년.  그렇게 지금까지 평생 나를 따라 다니는 단어 "성장"

키가 크는 성장을 재던 어린 시절의 생일은 그저 마냥 즐거웠다.

매년 나에게 있어 '성장'을 성적표처럼 받던 회사 생활은 매년 그리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어떤 해는 낙담하고 슬퍼했고, 어떤 해는 정체되어 있는 나를 닥달했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더 컸던 많은 날들이 존재했다. 그냥 키가 크듯, 열심히 잘 먹고, 잘 자면 그렇게 1cm, 2cm 커가던 그 시절의 나의 성장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성장이란

올해로 일하는 자로서의 나이가 24살이 되어간다. 나의 나이 24살이던 때의 나를 기억한다. 불안했고 막막했지만 또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단호한 용기가 있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대담했다.

키가 큰 나에게 왜 '꼬꼬마 아르비(아르바이트생을 귀엽게 부르던 부장님이 지어 준 애칭)'라고 부르셨을까 의아했었는데, 키가 크건 작건, 부장님에게 보이는 스물몇의 청춘은 그렇게 작아보였던가보다. 그랬으니 내가 취직을 하고, 대리가 되고, 창업을 하고, 팀장이 되고, 실패를 경험하고,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그렇게 과장이 되고, 회사를 이직하고, 팀장이 되고, 팀원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그렇게 부장도 되고, 이사도 되고, 상무가 되었다.

나의 그녀 (나의 베프이자 평생의 성장 동지이자 나의 딸)는 내가 승진을 하고 '상무'가 되었다고 축하를 받을 때, "상무가 뭔데?"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 상무가 뭐냐면?!"  "내 키가 170cm 였다가 지금 200cm 가 된 것 같은 것이랄까?" 라는 비유로 설명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그러게, 그게 뭘까. 내게 있어 '성장'은 직급의 변화였을까? 나에게 있어 '성장'이 뜻하는 것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날이다.


이런 직급 호칭의 변화가 나의 성장이라고 치자면, 나에게 있어서는 앞으로 성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최선을 다해 나에게 있어 '성장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Career Aspiration, 내 성장의 열망점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결심할 때 나는 '나의 열망을 좇은 선택'을 했다. 그 열망을 향한 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이 조직에서 매 순간 확인한다. 다양성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 다름을 포용하는 매일을 배운다. 그 매일에서 우리는 '성장'을 무척 중요시 여긴다.  그 성장을 동료가, 매니저가, 조직이 조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가 그 성장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4년의 시간을 함께 한 우리팀은 '성장'을 이야기할 때 더 이상 '직급'의 성장을 염두해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성장을 확인하는 여러 단서들을 찾는다. 작은 능력이 늘었을 때, 일이 즐거워지는 순간이 커졌을 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성장을 도왔을 때, 나의 직무를 넘어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질문에 답했을 때, 우리가 애쓴 그 시간들로 인해 세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믿어질 때.


나의 성장이 열망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오랜 시간 생각해왔다.

Cheer Leader to support people and business to grow

사람들과 비즈니스들의 성장을 응원, 지지하고 도와주는 응원대장이 되는 것.


이런 나의 열망점으로 향하는 매일의 여정이 나에게는 '성장'이다.

그렇게 매일 나는 사람들과 작은 브랜드들의 성장을 통해 나의 성장을 확인한다.


나의 멈출 수 없는 성장


77세의 아빠가 틀니를 하게 되었다. 남아 있던 많은 이들을 모두 뽑았다. 갓난아이마냥 이가 없으니 이유식을 하듯 씹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곱게 갈은 죽만으로 몇 달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문득 아이의 시간이 겹쳐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그 긴 시간 씹지도 않고 어떻게 키가 크고 무게가 늘고 성장을 한 것일까? 같은 것을 매일 섭취해도 아이의 성장의 매일과 나의 아빠의 상실의 매일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탄생과 함께 매순간이 더해져가는 성장의 시기를 보낸 우리는, 언젠가부터 아무리 먹어도 무게가 늘지 않고, 키가 크지 않는 시기를 마주한다. 그 시기부터 우리는 사회적 성장을 마주한다. 이 시기동안 조직과 사회에서 나의 성장을 확인하는 방법을 그들을 통한 인정, 승진 등을 통한 지위 이름의 변화, 그를 통해 얻은 명성, 소득의 변화 등으로만 한정짓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더이상 성장할 수 없는 어느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최선을 다하여, 나에게 있어서 평생동안 멈추지 않을 성장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키가 어느 순간 멈추는 것처럼, 우리의 젊음이 어느 순간 노화를 맞이하는 것처럼 사회에서의 직급으로 구분되는 성장은 곧 멈춘다. 우리는 계속될 수 있는, 평생 멈출 수 없는 나의 내면의 성장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대들, 나의 매일의 성장

나는 매일 나와 마주한 사람들의 성장을 뜨겁게 응원한다. 그것이 곧, 나에게 "매일의 성장"이다.

나를 끊임없이 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게 해주는 그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2021년 5월 22일. 나의 4주년 Faceversary 성장 회고 기록.

지금의 나의 여정을 향한 선택의 시작, 2016년 8월의 샌프란시스코, 9살의 나의 그녀가 14살이 되었고 내 어깨가 닿지 않던 나의 그녀의 키는 이제 나의 키만큼 컸다. 그녀의 성장과 함께 나도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그녀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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