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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yselfolive Jan 14. 2022

아빠의 시간

2022.1.1 - 2022.1.14, 2022년의 첫 기록

Day 1.

아빠가 계속 잠을 잔다.

낮에도 방문을 열어보면 주무시고 계신다.

새벽이면 의례히 두시간에 한 번씩은 화장실을 가시던 분이 긴 시간 일어나질 않으신다.

이상하다.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다.


Day 2.

새해를 그 누구보다도, 그 어느 때보다도 신나게 힘차게 맞이하려던 나의 계획은 무산이 되었다.

연말 다친 허리로 일주일 넘게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게으른 시간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은 내게 너무 괴로운 일이다.

그 시간이 다행히 아빠에게 흐른 것이다.

아빠 병원을 예약했다.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그 사실을 마주할 시간이 두렵다.


Day 4.

당황스러운 진단이다.

우리집에는 가족력이 없어서, 암에 대한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왜 그 가능성은 존재하지도 않았을까.

확진과 치료를 위해 다시 큰 병원을 예약했다.

그 사실과 마주하기까지 2일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초진과 소견서를 건넨 의사는 확진 전까지는 부모님께는 혼란을 주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Day 5. 

망연자실.

인생이 다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Day 6.

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대범하게 대처해주려고 했는데 결국 같이 울었다.


Day 7.

아빠와 병원 진료를 향하면서, 우리가 가는 진료과가 혈액종양내과임을 알려주었다.

"아빠, 면밀히 검사해서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간인거야."

아빠를 다짐시키는 말은, 곧 나를 다짐시키는 말이다.


Day 8.

입원 준비를 했다.

절대 입원도, 수술도 안 할거라던 전 날의 아빠는 그래도 순순히 내 뜻에 따라주셨다.


Day 10.

아빠와 24시간을 함께 한다.

커튼 하나로 1평 남짓한 다인실에서부터, 넓고 편한 1인실까지 병원에서의 시간.

공간의 크기가 작던 크던, 오롯이 아빠와 나 둘의 시간이다.


Day 11.

지금, 이 곳 병실의 밤은 이상하다.

분명 지금 이 곳 무척 가까운 곳에서 삶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병실 안의 밤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 고요와 평화가 때때로 겁이 나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새벽 내내 이어지는 간호사 분들의치료 카트의 바퀴 소리가 되려 안심이 된다.


Day 12.

계속해서 잠을 주무시는 아빠를 보며,

그냥 계속 잠을 자고 있어도 좋으니, 이렇게만 옆에 있어주시기를 하는 마음으로 곁을 지킨다.


Day 13.

매일의 매 순간을 진심을 다해 열심히 사는 나에게,

잠 자고 있는 아빠의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것을 보면,

삶이란, 엄청난 에너지로 달려가든, 잠시 멈추어 있든,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느낀다.

그러니, 지금 내가 잠시 멈추어있든, 천천히 가든, 가는 길이 거칠든,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든,

그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이고, 내가 지켜내야 할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배운다.


Day 14.

병명을 확인했다. 폐암이라고 한다. 간과 대장에도 전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미 처음 초진을 하러 갔던 10일 전, 듣게 되었던 그 생경한 이야기가 다시 한번 확인을 받은 것이다.

10일동안의 감정은 명확하게 흘러갔다.

당황했고, 무너졌고, 붙잡았고, 다잡았다.

지금의 상황에 무너질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시간에 애를 쓰겠다 마음을 먹게 되는 과정이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각종 검사가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병의 확인이 점점 더 명확해져감에 따라,

그 다짐을 단단히, 단단히 먹게 되는 과정이었다.

아빠에게 아빠의 병과 상황을 설명했다.

그간 10일동안 내가 들었던 그 사실을, 어떻게 하면 가족들이 모두 다 무너지지 않도록 전할 것인지.

그리고 아빠가 이 사실을 담대히 받아들이고, 당신 삶의 최선을 위해 노력하게 설득하는 것인지.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그렇게 아빠에게,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삶의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자꾸 이만하면 그저 되었다 하시는 아빠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최선을 다해주었던 그 시간처럼,

자식인 우리가 부모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시도록,

"우리를 위해 기꺼이 이 삶의 또 한 번의 최선을 다 해달라"고 보청기를 뺀 아빠의 귀에 대고 크게 외쳤다.


우리 가족들은 아직 큰 상실의 경험이 없다.

앞으로 여러 번 마주하게 될 이 커다란 상실의 시간들을 

그저 멍하니 그것이 다가오는 것에 기가 질려 아무것도 못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매일 매일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로 살자고 다짐했다.

내가 아빠에게 애청한 바로 그 시간들 처럼.

"아빠 나도 최선을 다해, 내 삶의 무엇을 포기하거나 망가트리지 않고 그렇게 매일 잘 해낼게."


나이가 들고, 몸의 기관이 낡아지고 병이 나고, 그렇게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마주하고 당황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허망하고 의미없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수렁같았던 그 날 밤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최선을 다한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는 용기를 다시 갖게 된 오늘의 밤까지.


너무나도 길었던 2022년의 첫 14일.

2022년을 그 어느 해보다 열심히 살 나 자신을 무척이나 응원하며.

그 어느 해보다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해하는 날들을 살아봐요 아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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