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계 Vol.2 _ 광주 편
이번 여행의 성찰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기억은 단지 추모가 아닌 새로운 행동, 역사의 시작 이라고 말하고 싶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가끔씩 짧은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그 주기를 5개월로 한 건 기왕이면 다양한 계절에 함께 여행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지난 12월 문경으로 첫 여행을 했고, 5월 광주가 두 번째 여행지가 되었다. 5월의 광주! 무게가 느껴지는 여행지인 만큼 그 사이 각자 틈틈이 영상을 보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을 약속했다.
나는 여행 메이트들이 추천해 준 "박하사탕", "스카우트", "로숑과 쇼벨", "나의 빛, 나의 공기"를 봤고, "택시 운전사"를 다시 보고,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다. 그 과정에서 놀라웠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기존에 나는 "소년이 온다"가 시 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함축되어 있어 섬세하지만 흐린. 그리하여 사건의 진상, 그리고 내가 읽어내지 못한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가 궁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5.18 관련 영상을 접하고 난 뒤 다시 읽은 그 소설은 생생했다. 심지어 광주에서 참여한 "소년의 길" 투어에서 도슨트 분이 책의 구절을 읽어줄 때나 5.18 기념관에서 소설 관련 전시를 볼 때 그 이야기가 나를 찔렀고 근육통 같은 저릿한 몸의 통증을 느꼈다. 내가 5.18이라는 사회적 트라우마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 그렇다면 이건 잘한 일인가? 굳이?
얼마 전 참여한 불교 대학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내 경험을 묻는 질문에 나는 거기서 언급된 5.18, 이태원 참사, 세월호 등의 사건들을 알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들었지만, 그 사건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심리적 외상을 입힌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나는 현장에 있지 않았고, 뉴스도 열심히 챙겨 보지 않는 편이고, 공감능력도 부족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는 말을 부끄러운 듯이 했더랬다. 다른 한편으로는 트라우마가 좋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다면 모를까 굳이 나를 그 안으로 빠뜨릴 필요는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역사를 돌아보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여행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첫날, '소년의 길' 투어를 마친 뒤 찾은 전일빌딩 9층의 전시관 <19800518>에서 이 문장을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왜 이 아픔을 감내해야 했는지, 왜 이곳까지 와야 했는지를 조금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직접 겪었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광주의 사람들. 그리고 서울의 봄을 꿈꾸던 민주화 운동가들. 쿠데타로 얼룩진 독재의 시대를, 꿋꿋이 살아낸 수많은 이들. 그들이 남긴 기록과 그 기록 속에서 삶의 방향을 정한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번 12.3 계엄사태와 같은 위기에서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고 나는 그들 덕분에, 안전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 씨실과 날실이 꿰어지자 메세지가 명확해졌다. 1980년 5월, 스러졌던 한 소년이, 정말로 그 먼 시간의 강을 건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광주를 몰랐다. 여전히 잘 모른다. 내가 모르는 게 광주 뿐이겠냐마는 사실상 한국인으로서도 광주에 대해 아는 척할만한 게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광주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양심으로 희생을 불사하던 사람들의 도시, 대한국민이 감사해야 할 사랑의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5월의 끝자락에 방문한 광주 무등산에서는 인문축제가 진행 중이었고, 5.18 민주광장 곳곳에서는 버스킹이, 아시아문화문화전당 하늘마당에서는 늦은 밤까지 청춘들의 피크닉이 이어졌다. 아픈 역사의 땅 위에 선 문화는, 밟힐수록 뿌리가 깊어지는 들풀처럼 더 강하고 활기차게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드시 잘 살아내겠다는 의지처럼! 나는 이 짧은 여정으로 광주를 내 마음에 걸어 두었다. 감사와 애정으로 이 도시를 마음에 품기로 했다.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 한강 작가의 글 중
1. "소년의 길 투어" 전일빌딩 245 > 상무관 > 옛 전남도청 > 5.18 민주광장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옛적십자병원 >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 전일빌딩과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은 별도로 시간을 들여 관람할 것을 추천해요.
2. 무등산 증심사 템플스테이 좋아 보였어요. 가는 길에 작은 미술관들이 많이 있어요. 의재미술관에서 여유롭게 전시 구경하고 차 한잔 하면 좋아요!
3. 날이 좋다면, 아시아문화전당 하늘마당에서 피크닉 추천해요!
4. 아시아문화전당 안 상설 전시와 도서관에서는 높은 퀄리티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볼거리를 접할 수 있어요.
5. 양림문화역사마을 걸어서 구경하기 좋아요. 갤러리, 카페 많아요. 이이남 갤러리 카페 추천합니다. 광주 도시 곳곳 이이남 씨의 작품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