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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백수 Aug 19. 2020

집 사서 부자되는 사회를 살아가며

<경북매일> 연재,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강백수

: 2008년 계간 <시와 세계>로 등단한 시인이자 2010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시집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등 다수의 책을 냈고, 두 장의 정규앨범을 내며 활발히 창작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내겐 가장 큰 낙이었다. 신해철 노래처럼 ‘고흐의 불꽃같은 삶’이나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에 대해 이야기 한 건 아니지만 설익은 머리로 쥐어짜낸 개똥철학을 나누는 게 좋았다. 아니면 재밌게 본 영화 얘기, 재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 이야기, 야구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냥 영양가 없는 우스갯소리들. 그렇게 다채롭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좋아 그렇게 술을 마셔대곤 했다. 그런데 서른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술자리의 재미가 뚝 떨어져버렸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밤새워 침 튀어가며 떠들던 이야기들이 머물던 곳에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량주니 잡주니 하는 주식 이야기, 누구랑 누구의 팔자를 고치게 해 주었다는 가상 화폐 이야기, 그리고 요즘은 뭐니뭐니해도 부동산 이야기. 어제 만난 친구들도, 그 전에 만난 친구들도 한참을 부동산에 대해서 떠들었다.

 친구 A가 무리한 은행 대출로 집을 사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를 말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더 큰 집이 필요해질 텐데,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서울 집값이 설마 더 오르겠냐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비웃듯 집값은 폭등했고, 친구는 그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A 본인에게는 성공신화일지 모르겠으나 자리에 있던 나머지들에게 그 이야기는 다소 허탈했다. 늘 그랬다. 가상화폐 투자로 누가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어디 어디 주식을 사서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나는 무언가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투자가 성공신화로 다가올 때, 대부분에게는 그때 빚을 내어서라도 했어야 하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해 원통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

 한창 잘 나가던 30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

 아버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차라리 잠실 쪽에 아파트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


 강백수, 「타임머신」 중


 사회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대개는 비약적인 경제적 성취를 사회적 성공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노동이나 자영업, 소규모 사업 같은 행위를 통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는 어떤 때는 주식이었고, 어떤 때는 가상화폐였으며, 언제나 부동산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작은 ‘사업만 너무 열심히’하다가 ‘6년후에 우리나라 망’하며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우리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도 글 쓰고 노래를 지어 부르는 노동을 통해 언젠가는 대단한 부는 아니더라도 가족들 번듯하게 건사할 수 있을만큼의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 나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현재를 버텨나갈 수 있는 동력과 미래에는 현재보다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일이 아버지에게는 작게나마 사업이었고, 내게도 어설프게나마 대중예술이다.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한 동력으로서도 위태롭기만 한 직업인데, 지금보다 미래에 상황이 비약적으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언제나 희박하기만 했다. 그나마 ‘좋은 직업’이라 여겨지는 안정적인 직업들을 가진 친구들 역시 현재를 살아나가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까마득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노동으로 인삶이 나아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방법은 오로지 투자, 부동산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8월 4일,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이 대책이 정말 새로운 대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포털사이트에 ‘부동산 대책’이라고 검색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8.4 부동산 대책만 있는 게 아니라 7.10부동산 대책이 있었고, 6.17 부동산 대책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까지 현 정부는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을 내어놓았다는 것. 현 정부만 그랬을까, 여태까지 어떤 정부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막아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친구들은 누구도 이번 대책이 부동산 폭등 현상과 투기를 훌륭하게 막아낼 거라고,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될거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현실화 할 거라고, 20년 넘게 이루지못한 숙원을 정부가 이루어낼 거라고 믿지 않는다. 

 나라의 똑똑한 분들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나라고,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동풍에 나부껴 눕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떼기 같은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 와중에 헌법에 적혀있는 것처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라도 정보랍시고 주고 받아야 하고, 집 잘 사서 부자된 친구들을 칭송하며 그들로부터 뭐라도 비결이 있을까 기웃거려야 하고,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빚을 져서라도 내 인생을 역전시킬 집 한 칸을 살 궁리를 해야 하고, 그 조차도 어렵고 어두운 나 같은 애들은 멍한 얼굴로 그렇게 재미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술자리에서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나 하며 지루함을 견딜 수밖에.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


 여러 정부를 거치며 많은 분들이 개선을 위한 노력이야 해 오셨겠지만, 나는 진실로 이러한 현실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발빠르게 집을 얻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은 사회 구조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동산을 비롯한 투자정보가 풍요롭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이들이 제 자리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하는 것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풍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겁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누군가가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하며 ‘불안한 맘’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모두가 투자, 혹은 투기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 모든 일들은 과연 가능할까.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겠지. 나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부동산과 주식과 가상화폐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인 이들이 꼭 그렇게 해 주리라 한 번 더 믿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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