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색깔을 찾는다는 것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웠다. 그리고 신호등은 빨간 불, 노란 불, 초록 불로 되어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흑백논리니 빛의 삼원색이니 하며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색을 분류하고 규정지어 왔다.
과연 우리는 왜 그러는걸까.
빛의 스펙트럼은 연속적이고 아무리 똑같이 보여도 그 많은 색들은 모두 다른 색을 띄고 있는 것, 고유의 색 그 자체일텐데.
그래서 곰곰히, 사실 방금 든 생각이지만, 생각해 본 결과, 사람은 '정해지지 않은 것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애매하게 물들어있는 색을 그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단 "그래. 저건 붉은색이네" 라고 결정짓는 것이 내 스스로가 그것을 볼 때 정의내리기 더 편하고 인지하기에 수월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하게 된 것은, 사람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인데,
다소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사람 또한 개개인마다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그 색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그마만큼의 다양함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비슷한듯 보여도 다른 색을 나타내는 것처럼, 사람 개개인도 서로가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그 고유한 색을 그들의 고유한 방법으로 표현해나간다는 것. 그것이 사람대사람으로서의 관계이고 서로를 인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고차원적인 욕구 중 하나인 자아실현을 위해선 우선적으로 나의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은 수천년 전 소크라테스도 고민했고 사람의 인생 전반에 걸친 숙명일 것이다. 어찌보면 죽을 때 "아 내가 그래도 약간 파란계통의 색이었던 사람이었겠군." 이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소크라테스보다 위대한 존재라 불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어떤 색깔의 사람인지 아직은 전혀 모르겠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데? 라고 자만했던 나의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확실히 자아성찰의 길은 멀고도 험한 듯 싶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오늘 친구와 통화하면서 내가 나의 색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조금 알게 된 것만 같다.(한 3년 뒤에 또 지금의 나를 비판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색을 붓에 묻혀 상대에게 덧칠해주는 사람
인 것 같다.
나를 덧칠하면서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그에 맞게 나 또한 상대의 색을 입고 더 많은 색과 붓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색을 나타내고자 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아니면 혹시 모르지만 그게 내 고유의 색일 수도 있겠다. 하하하
하지만 나의 색깔을 자꾸만 남에게 덧칠해준다면 오히려 나의 색을 잃을 수도 있고, 어느샌가 정말 색을 공유하고 싶을 때 제대로 붓질조차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어느색을 선호하는지 그 우선순위를 판단하기 힘들어지게 되고 말이다.
요근래 부쩍 나를 잃어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색깔찾기에 자괴감을 가졌던게 오늘 친구와의 통화를 통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통해 조금 회복되는 기분이다.
저마다 자신의 색을 어떻게하면 시각적으로 더욱 잘 표현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세상 속에서, 나의 색깔을 알아가고 또 나만의 표현 방법을 계속 알맞은 방법으로 가꿔나가는 것이 참으로 의미있는거라고 느껴지는 하루의 끝이었다.
내일도 난 나의 색깔을 덧칠하기 위한 붓을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