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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민 Nov 19. 2021

러시아에서 엄마가 됐습니다_3

산모에게 가차없는 러시아

제왕절개 수술 후 6시간만에 소변줄을 빼고 걷기를 종용 당한 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한국의 일반적인 제왕절개 회복 과정을 들으면 실감할 수 있을 거다.


제왕절개 경험자인 친구말에 따르면,

일단 수술이 끝난 뒤, 24시간 동안은 모래주머니를 배에 올리고 옴짝달싹 못하고, 수술 다음 날 소변줄을 뺀다고 했다.

그때부터 살살 걷기 시작하는데, 페인부스터라는 진통제를 척추에 연결하고 아픔이 느껴질때마다 셀프 주유 하듯이 진통제를 넣는단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말을 빌려 '뒤질랜드'라고.



여기, 러시아.

수술 3시간 후,

"다리 움직여 보세요. 움직일 때까지 움직이세요."


비몽사몽하고 있는 나와 그 곁에서 제왕절개 수술 직관의 충격에 아직 휩싸여있는 남편에게 와서 난데없이 다리를 움직여보라고 할 때부터 '러시아 산부인과 놈들, 역시 만만치 않구만'이라고 생각했다.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 대충 버텨볼 생각이었으나, 산파가 집요하게 내 옆에서 내가 다리 운동을 하는지 안하는지 지켜봤다.  

어쩔  없이 발가락부터 꼼지락 해보기로 하는데, 마치 <킬빌>  장면 같았다. (우마 서먼이  속에 갇혀서 발가락을 움직이려 애쓰는 바로  장면!)


그리고 나는 해냈다. 우마 서먼처럼.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이제 좀 쉬어야지 했는데...


의사들이 회진을 돌며, 자궁초음파를 보더니 봉합이 너무 잘됐고, 수축도 잘 되고 있으니 이제 걸으란다.


수술 6시간 후.

산파가 소변줄을 냅다 빼고 생수병 10병을 갖다주더니, 물 많이 마시고 얼른 화장실 가서 소변을 보라고 했다.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나의 소변보기 전쟁이 시작됐다.

소변 보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물을 아무리 마셔도 화장실 신호는 오지 않았다.

산파가 많이 걸어야 방광 기능이 회복된다고 해서 10분에 한 번씩 일어나 병실 안을 걸었음에도 차도가 없었다.


저녁 7시 경.

걷기 시작한 게 5시 즈음이었으니 난 두 시간째 소변 보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사투를 벌이고 있던  나뿐만이 아니었다. 산파는 내가 소변을 보고 일반 병동으로 내려가야 퇴근을   있는데, 내가 화장실을 계속 가지 못해서 노심초사하는  보였다.


 후로  시간을  고군분투  뒤에야 소변 보기에 성공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문 밖에서 나를 지키고 서있는 산파에게

"야 가또바!!!"(나 끝냈어!) 환희에 차서 외쳤다.


산파가 환하게 웃으며 화장실 문을 열었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듯 빛의 속도로 나를 병실로 내려보냈다.


퇴근을 앞둔 산파의 뒷모습이 전에 없이 흥겨워 보였다.



밤 9시, 수술 11시간 후.

병실에 내려가서 저녁을 먹었다.

참고로, 한국에서 제왕절개 산모는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긴 어디? 강한 러시아.


다행히도 소문처럼 햄버거와 콜라를 주진 않았고, 러시아어로 "까샤"라고 하는 오트밀을 줬다.

오트밀과 지인에게서 공수한 미역국을 한 그릇 먹으니, 아기 젖 먹일 시간.

신생아실 간호사가 병실로 아기를 데려다 줬다.


러시아도 여느 서양권과 마찬가지로 모자 동실이 기본이고, 산모가 쉬고 싶어  때만 신생아실로 데리고 간다.


 아이라 열정과 의지로 가득  나도 처음엔 야심차게 24시간 아기와 함께 있다고 했지만, 두시간이   되는 아기의 배꼽시계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유 수유에 멘붕이 되어 결국 밤에는 아기를 신생아실로 보냈다.



잠깐 곁다리로 이야기하자면,

러시아 산부인과 병동에는 엄마를 케어하는 산파와 아기를 케어하는 신생아실 간호사가 한 팀이다.

매일 당번 팀이 교체되는데, 교체될때마다 산파와 간호사에게 현금을 좀 쥐어주면 서비스가 달라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말도 안되는, 오히려 욕을 먹을 행동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오가는 팁 속에 정성스런 서비스가 깃든다.

특히 병원, 교통경찰 등 팁을 절대 안 받을 것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낮은 임금 탓에 팁을 원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들에게는 주저말고 팁을 줘야한다.

러시아 생활 6개월만에 깨닫게 된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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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밝을 때는 아기를 먹이고, 그 다음엔 나도 러시아 산부인과의 슴슴한 음식들을 받아 먹고,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도 소변보기 다음으로 맞닥들이게 된 '대변보기' 과제를 수행하며

아기와 함께 먹고 싸고 자며 3박 4일 입원 기간이 지나갔다.


퇴원 일정이 다가올수록 두려웠다.


당연히 러시아에 산후조리원 따위는 없기 때문에,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침상에 매달린 동아줄(?) 같은 것을 잡고 일어나야 하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 바로 실전 육아에 투입돼야하기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소아과 의사가 회진을 도는데, 그때마다 메모장  페이지 가득 아기를 어떻게 먹여야하는지, 어떻게 재우고, 어떻게 씻겨야 하는지, 기본 중의 기본 질문을 적어 번역기를 돌려 묻고  물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긴장되는 마음에 퇴원 전날 밤에는 잠마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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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 오전 회진에서 아기 몸무게가 출생 당시 2.7kg에서 수분 등등 빠지며 2.6kg  됐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출산, 성의없는 막달 체력 관리, 주제도 모르고 자행한 무리한 운동...

다시 한 번 아이에게 미안해서 마음이 쓰렸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낳은 생명을  찌우는 .

중대하고 고귀한 미션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아기를 낳게 될줄은 꿈에도 모르고 단촐하게 입었던 내 옷가지와 달랑거리는 핸드백을 받아드니 더욱 더 아득해졌다.

가벼운 옷차림 만큼이나 아무런 준비도 안 돼있었던 내가 아기를 안고 집으로 가야 한다니.


복잡한 내 심경이야 어떻든 집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먹이고 기저기만 갈아주면 된다는 세상 심플한 신생아 육아에도 우왕좌왕,

아기의 똥기저귀를 보며 일희일비하는 나의 육아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우리 아기의 첫 신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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