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1년 캠퍼스 투어
덕 투어(Duck Tour) 시간은 5시로 예약을 해놨다. 지금은 3시. 30분 전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 시간에 맞추어 가려면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초행길은 항상 어디서 헤맬지 모른다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되도록이면 시간을 충분히 잡고 움직여야 한다. 지금 있는 하바드 스퀘어에서 덕 투어가 시작되는 보스턴 시내 프루덴셜 빌딩까지는 사실 2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프루덴셜센터가 어디 있는지는 지도에서만 위치를 가늠할 뿐이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보스턴 시내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대로 내렸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프루덴셜센터는 고급 쇼핑센터. 각종 유명 브랜드의 상점들이 있고 푸드코트도 있다. 상점들도 구경하고, 푸드코트에 잠시 들러 나중에 투어 다녀온 다음에 저녁으로 먹을 만한 것이 있나 봐 두기도 했다. 덕 투어 시작 시간이 다 됐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빌딩 입구에 덕 투어 출발지점이라는 팻말도 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이러다 늦는 건 아닐까? 최소한 덕 투어 할 운송수단은 빌딩 안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밖으로 나가보자. 밖에 나가니 옆쪽으로 난 길 건너에 덕 투어 배들이 보인다. 아 저기구나. 얼른 건너 가보니 타고 갈 덕 차량이 세 대정도 길가에 주차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 서있다. 얼른 예약한 종이를 꺼내고, 줄 서고 그렇게 겨우 덕에 올랐다. 하마터면 일찍 와서도 못 탈 뻔했다.
잠시 후 여자 선장이 덕에 올라타더니 자신의 소개를 잠시 하고 나서 출발! 손님들은 꽉꽉~ 오리 흉내를 낸다. 우리가 탄 덕은 일단 보스턴 시내를 돌면서 선장이 각 건물에 대해 설명해준다. 선장은 때로는 뒤로 돌아보면서 설명하기도 하고, 앞의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기도 하고, 비가 쏟아지니 비닐로 된 투명한 천막을 내리기도 하고, 그치니 다시 올리기도 하고, 정신없다. 게다가 보스턴 시내의 평일 오후 5시 30분쯤의 교통은 장난이 아니다. 저러다 사고 나는 건 아닐까. 오랫동안 저렇게 해왔으니 괜찮겠지. 그 와중에도 선장은 자기는 저기 보이는 교회가 제일 마음에 들고, 자기 남자 친구는 어떻고... 잘도 떠들어 댄다.
그러더니 손님들에게 자기소개까지 한 마디씩 하란다. 어디서 왔다고 한 마디씩. 들어보니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한 배에 모였다. 캘리포니아, 그리스, 뉴욕, 언 듯 생각나는 것이 그 정도인데, 유럽 쪽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보스턴에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하와이에서 왔다고 하니 하와이 같은 천국에서 보스턴에 올 필요가 있느냐고 선장이 한마디. 하지만 우리는 하와이에 살기 때문에 이런 도시로 휴가를 온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환경과 다른 곳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 같다. 복잡한 도시에 사는 사람은 한적한 자연을 꿈꾸고, 비교적 자연과 가깝게 사는 사람들은 대도시에 살고 싶어 한다.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내 경우를 봐도 100% 는 아니지만 80%는 그렇다. 서울에서 30년간 생활하며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그렇게 살면서 한 번 여행으로 와 본 하와이의 자연이 너무 좋아서 꿈꾸다 결국 하와이에 와서 살게 됐다. 아직도 하와이가 좋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다시 대도시에서 몇 년간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물론 평생을 대도시에서 살고 싶지는 않지만 2~3년 정도는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하와이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다른 장소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위치, 환경, 외모, 학벌, 가족, 친구, 재주 등 모든 것을 꿈꾸기도 한다. 우리는 왜 가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발이 머물러 있는 곳을 견디지 못하는 걸까.
보스턴 덕 투어 코스는 육상 코스와 수상 코스로 나뉘어 있다. 육상 코스는 오늘처럼 비가 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수상 코스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우리가 탄 덕 차량은 이제 막 육상 코스를 마치고 찰스 강으로 향하는데, 덕 투어 본부에서 선장 한테 연락 오기를 현재 찰스강에 있는 모든 덕은 육상으로 올라가라고. 번개가 치니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 덕의 선장은 강을 앞에 두고 고민한다. 하늘은 개어가고, 번개는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러면서도 승객에게는 만약 수상투어가 중단되면 반액 정도는 환불이 될 거라고 한다. 반액 환불을 받느니 수상투어를 하는 게 낫다.
선장은 여러 차례 본부와 연락을 주고받더니 찰스강으로 들어가겠노라고 연락을 취하고 물로 첨벙 들어간다. 우리 뒤에 서있던 덕들도 우리를 따라 첨벙. 하늘은 점점 개어갔다. 시원한 바람이 찰스강을 스친다. 그렇게 수상 투어를 마치고, 육상의 몇 군데를 더 돌아 덕은 출발지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프루덴셜센터에 다시 돌아와 계획했던 대로 푸드코트에서 클램 차우더와 중국음식 등 몇 가지를 시켜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인근에 구경할 만한 곳이 있나 여행책자를 보기도 하고, 셀폰으로 검색하기도 하다가 푸르덴셜센터 스카이워크를 구경하기로 했다.
나에게 방랑 기질이 있는 걸까?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 같은 생각일까? 한 군데 오래 사는 것보다 다른 곳을 항상 꿈꾸며 산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긴 하지만 짧은 여행만으로는 충족되기는 어렵다. 지상낙원이라 일컬어지는 하와이에 살면서도 마음 한 편은 항상 다른 곳에 대한 관심으로 두근거린다. 하와이에 사는 장점은 깨끗한 공기, 언제든 볼 수 있는 나무와 꽃, 탁 트인 바다, 여유로운 삶의 속도 등이다. 막상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다른 대도시로 떠나라고 등 떠밀면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이만한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뉴욕은 어떨까, 보스턴은 어떨까, LA는, 시애틀은, 포틀랜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가능하면 한 군데서 1~2년씩 살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아이가 다 컸으니 아이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도시를 한 두 해씩 다니면서 살려면 어디서든 옮겨 다니면서도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거나, 아예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한 경제적 자유가 있어야 한다. 결국 그 둘 다 갖추지 못한다면 은퇴 이후에나 생각해볼 만한 꿈이 된다. 그런데 만약 65세에 은퇴한다면 과연 그때도 지금처럼 세계를 떠돌며 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사람이 크게 변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그때도 여전히 지금과 같은 생각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럴 만큼 건강은 허락할까. 이런 생각을 하자니 발목 잡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래도 스페인, 이태리,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이런 나라들의 자연환경을 마음껏 누리며, 매일매일 신기해하고, 낯설어하며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