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1년 캠퍼스 투어
하바드 학생의 안내로 투어를 하는 동안 세라는 메시지 주고받느라 바쁘다. 하바드에서 섬머스쿨을 다니고 있는 대만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세라가 LA 로욜라대학에서 있었던 CTY (Center for Talented Youth)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친구인데 Tiffany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이번 여름에는 마침 하바드대학에서 CTY 섬머스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캠퍼스 투어가 거의 끝나갈 즈음 세라는 자기가 대학 내 어디에 있다고 알려주고 그 친구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찾아왔다. 각각 대만과 하와이에 사는 고등학교 10학년 아이들이 중학교 때 LA 섬머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난 이후 아직까지도 만남이 지속되어 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보통은 한 번 만나고 헤어지면서 계속 연락할 듯하면서도 다시 연락하거나 만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사람들 간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세라와 티파니는 그 후 티파니가 하와이에 가족 여행 와서 한 차례 만난데 이어 이번에는 세라가 보스턴 여행하면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메시지 등으로 꾸준히 연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아직 아이들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 선후배 등과 거의 연락을 끊고 사는 셈이다. 그나마 연락이 되는 사람이 한 두 달에 한 번씩 이메일을 주고받는 직장 선배 두 분이 고작이다. 사는 게 바쁘기도 하지만,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지 오래되니 공통점이 자꾸만 줄어들고 점점 더 남이 되어간다. 소피는 세라가 티파니와 만나는 시간을 두 시간 주었다. 짧은 여행 일정이지만 두 시간 동안 점심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라고 그리한 모양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가족을 이끄는 대장은 난데, 세라에 관한 일은 주로 소피가 결정한다. 세라도 나보다는 소피에게 허락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아빠와 딸의 관계보다 우선하는 것인가. 셋이 물에 빠지면 세라는 분명히 아빠보다는 엄마를 먼저 구하려 할 것이다. 소피도 아마 세라를 먼저 건지려 할 것이다. 그럼 나는 어쩌지. 나는 누구를 먼저 건질까....
세라가 티파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소피와 나는 하바드 스퀘어를 구경했다. 먼저 하바드대학 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스퀘어를 천천히 걸으며 거리와 상점을 둘러봤다. 스타박스, 책방, 선물점, 기념품 가게가 많았다. 관광객이 많으니 하바드에 들렀다가 하바드 로고가 박힌 티셔츠나 머그 등 기념품을 많이 사는 것 같다. 나도 이곳에 와서 기념품 가게나 하면서 살까. 피곤해서 책방으로 들어갔다. 책방 안도 사람들로 붐볐다. 1층이 내려다 보이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쉬었다. 옆에 어떤 가족이 있었는데 들리는 말이 영어가 아니다. 콧소리가 많이 섞인 것으로 보아 프랑스어다.
두 시간이 거의 지나가는데 세라가 소피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오후 일정 모두 취소하고 친구와 같이 있으면 안 되냐고. 시간이 많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보스턴에 3박 4일밖에 머물지 못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그건 곤란하다. 게다가 오후에는 덕 투어를 예약해놓은 상태다. 1시간만 더 주기로 했다. 1시간 더 기다려야 하지만 한 시간쯤 기다리는 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기다리는 것에 선수가 됐다.
1시간 후 어디로 오라고 했는데 하필 그 시간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이런 소나기는 몇 분 후면 그치는데 세라는 그 시간에 오기로 했으니 그 소나기가 쏟아지건 말건 그 시간에 와야 하는 걸로 안다. 융통성이 없는 원리원칙대로 하려는 것. 완전 미국식 사고방식이다. 우산을 받쳐 든 세라와 티파니가 소나기를 뚫고 만나기로 한 책방 앞으로 걸어온다. 새로 산 신발 다 젖어 가면서...
내가 하와이에 온 건 97년 1월이다. 그때 유학 또는 이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유학이나 이민이라는 말뜻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미국에 건너와서 살게 된 사람들의 생활이 지금 오는 사람들의 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꼽는다면 인터넷의 발전에 따른 변화다.
내가 한국에서 하와이로 처음 왔을 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한국과의 단절감이다. 한국의 친구나 직장동료,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때 가장 많이 사용하던 통신수단이 국제전화인데 자주 전화하면 전화요금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면 용건만 짧게 말하고 끊었다. 그것도 대부분 가족에 전화할 경우였다. 친구나 동료에게는 전화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즈음 언제든지 카톡 문자나 보이스 톡, 화상 통화를 무료로 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됐다. 그래서 연락이 뚝 끊겼던 지인들이 다시 연결되기도 했다. 그렇게 연결된 지인들 가운데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가는 사람도 생겨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로의 연락처만 확인해두고 한 두 번 연락을 주고받다 뜸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과의 연락뿐이 아니라 문화적인 단절도 극복하게 됐다. 전에는 한국방송이라고는 하와이에서 하는 한국 TV 방송 하나밖에 없었다. 한글 신문도 하와이 현지에서 하는 신문 딱 두 개가 있었다. 한국의 뉴스도 며칠이 지나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한국 노래를 그리 즐겨 듣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그런 노래를 전혀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해졌다. 학창 시절 때 들었던 주옥같은 노래들이 마구 듣고 싶어 지기도 했다. 아마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Home sick 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지금은 한국 뉴스, 영화, 드라마, 노래... 언제든 보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이다. 인터넷,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이렇게 이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지금은 미국에 살아도 최소한 문화적으로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 수 있다. 스스로 어떤 환경을 만들어놓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요즘 내가 한국 소식을 접하는 것은 주로 유튜브를 통해서다. 방송국의 유튜브 뉴스를 보고 소식을 알고, 다큐멘터리나 토론 프로그램으로 이슈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넷플릭스에서는 주로 16부작으로 끝나는 한국의 드라마들을 접하게 된다. 넷플릭스의 한국 프로그램이 상당이 많아졌다. 이렇게 한국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게 되자 이제는 오히려 이렇게 인터넷으로 전해오는 한국문화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게 된다. 뉴스를 보다가도 내가 굳이 한국의 뉴스를 속속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특히 뉴스에 좋은 소식이 거의 없으니 더욱 그렇다.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시리즈도 볼 때는 빠져들지만 끝나고 나면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 방송에서도 시선을 끄는 제목으로 클릭하게 만들지만 차라리 안 보느니만 못한 영상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영상으로 구독자 수를 늘리고 수입을 창출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