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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믜 Mar 27. 2017

감정의 깊은 곳에 질문을 던지다

스스로에게 5 Why 기법 사용하기


몇 년 전, 이상하게도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딱히 별 일이 없었음에도 밤까지 계속 불쾌했다. 대체 이 불쾌함은 어디서 온 걸까 싶어서 종이를 꺼내어 그날 일어난 좋지 않았던 일들을 모조리 적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기분이 나쁠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출근길에 지하철을 놓쳐서 다음 차를 기다렸던 것,’ ‘기다렸던 택배가 아직 오지 않은 것,’ ‘책을 읽으려고 들고 나왔는데 피곤해서 읽지 못한 것’ 등 정말 사소한 것들까지 모으니 7-8가지가 나왔다. 


다음으로 각 목록들을 하나씩 점검해나갔다. 

이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가? 그렇다면 얼마나 나쁜가?


‘지하철 놓친 거? 오늘만 그런 것도 아니고 결국 지각한 것도 아니고. 이게 그렇게 기분이 나쁜가?’ 

그렇게 하나씩 질문을 던지고, 아니면 지워나갔다. 조금씩이라도 앙금(?)이 있는 항목은 작은 불쾌감이 남아있다고 표시를 했다.


놀랍게도 가장 마지막에 남은 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지인이 요즘 잘 나간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 내가 이것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나쁘겠어. 뭐 좀 부럽긴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일인걸. 열심히 했나 보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록을 다시 점검하고 하면 할수록 그 항목은 가장 마지막에 남았고,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쪼잔했나? 나는 남이 잘되는 거에 배 아파하는 그런 사람이었던가?’ 


내가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그 소식을 다시 생각하면 기분이 나빴고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을 배 아파하고 있었다는 거, 그리고 나는 그 소식으로 기분이 종일 나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내 감정은 내가 생각한 만큼 이성적이지 못했고, 그걸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다음 나는 또 물었다.

왜 그게 기분이 나쁜가?

'그 사람은 얌체 같은데, 그런 사람이 잘 나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 '내가 그 사람보다 잘 나가지 못하는 게 한심해서' 등 몇 가지가 나왔다. 


그다음으로 각 항목마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얌체 같은 사람이 대신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서, 공정하지 못해서.'

'내가 한심한가? 흠.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그 사람과 나는 경우가 다르니까.'


결국 ‘나는 그 사람보다 못나지 않았고, 사람마다 운이 다르게 따를 수도 있으며, 그 사람이 평소 얌체 같지만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의 노력과 나의 자괴감을 인정해버리니 더 이상 불쾌할 것이 없었다. 더 이상 그 사람이 부럽지도 않았고 어느새 기분이 나아졌다. 지금 회상해보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나도 모르게 했던 ‘끊임없이 질문 던지기’가 나중에야 5 Why기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5 Why기법이란 5번 ‘왜’라고 묻는 행위를 통하여 표면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아닌 진정한 원인을 찾는 것. 문제 인식 및 해결을 위해 기업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 중 하나다.


이 기법의 가장 유명한 예시는 제퍼슨 기념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제퍼슨 기념관의 대리석의 부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제퍼슨 기념관장은 직원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Q1. 왜 대리석들이 빨리 부식될까?
A1. 대리석을 비눗물로 자주 씻기 때문에 부식이 발생한다.
Q2. 왜 비눗물로 자주 씻는가?
A2. 비둘기 배설물 때문에 비눗물로 자주 씻는다.
Q3. 왜 비둘기들이 많이 오는가?
A3. 비둘기의 먹이인 거미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Q4. 왜 거미들이 많이 오는가?
A4. 거미들의 먹이인 나방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Q5. 왜 나방은 몰려드는가?
A5. 황혼 무렵 점등되는 기념관 불빛이 원인이다.

제퍼슨 기념관장은 황혼 무렵 등을 일찍 켜서 주변의 나방이 몰려든 것이 제퍼슨 기념관 대리석 부식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기념관의 전등을 2시간 늦게 켜서 대리석 부식의 원인을 해결했다.


나도 재난대비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기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Red Cross, FEMA와 함께 했던 Disaster Preparedness를 주제로 한 Design-led Resiliency workshop의 framework
Q1. 왜 도시인들은 회복력이 부족한가?
A1. 회복에 필요한 정보의 접근이 쉽지 않아서  (-> 여기서 그치면 재난정보제공 플랫폼이나 인쇄물을 만든다)
Q2. 왜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하기 쉽지 않을까?
A2. 사람들 간에 연결이 부족해서 (-> 여기서 그치면 커뮤니티 빌딩에 힘쓴다)
Q3. 왜 사람들 간에 연결이 부족할까?
A3. 사람들 간에 공감이 부족해서
Q4. 왜 사람들 간에 공감이 부족할까?
A4. 서로 취약성을 드러내지 않아서
Q5. 왜 사람들은 취약성을 드러내지 않을까?
A5. 상처를 받거나 위험에 빠질까 봐.

Vulnerability가 회복력을 위한 키워드임을 발견하고, 뉴욕 사람들의 내면의 이야기를 인터뷰와 사진으로 드러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Humans of New York을 밑바탕으로 하여 워크숍을 디자인했고, 참가자들과 프로토타이핑까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에도 5 Why 기법을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복잡한 감정을 다루기 힘들 때. 기분이 나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외딴곳에 화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화풀이는 원인과 관련이 없는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원인이 내 안에 있었다면 남에게 화를 낼 필요도 없다.


이 연습을 하고 나서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내 경우처럼 이유가 너무 사소하거나 이성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못생겨서, 초라해서, 아니면 반대로 상대방이 부러워서, 너무 잘나서, 내가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이 기법은 일시적인 기분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입장을 확인하는데도 상당히 유용하다. 나는 사실 많은 사적인 경우에 이 기법을 사용했다. 결혼에 대한 생각, 회사에 대한 감정, 일을 찾을 때의 기준, 상대방을 대할 때 나의 태도 등 주관적 감정이 들어간 영역에서는 특히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내 의견을 압도하는 일이 많아 내 진짜 생각을 알 수 어렵기 때문이다

남들은 다 이렇게 한다던데, 사실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왜 그럴까? 무엇이 날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그 원인을 바꿀 수 있을까?


이렇게 발견한 내면의 생각은 어느 자리에서든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나의 신념이 된다. 그리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에는 웬만해서는 후회가 따르지 않는다.



요즘 멘토링 플랫폼을 통해 가끔 진로 고민상담을 하고 있는데, 직무에 대한 문의도 있지만 현재 상태가 답답해서 멘토를 찾는 분들도 있다. 대부분 '지금 이러저러한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답을 구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분들의 속내가 궁금해서 되묻는다. '왜 그 상황이 답답한가요? 스스로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자. 그리고 그렇게 나온 이유가 예상과 다르더라도, 인정해보자. '나'라는 사람이 ‘실제'로 가진 감정이니까.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평가를 내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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