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정체

예, 글 씁니다.

by 수필버거

낯선 모임에 가는 일이 가끔 있다. 지난봄에 참석한 모임은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이 반반 정도였다. 화가인 지인이 웃으며 나를 글 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자리에 앉으려 엉거주춤 다리를 굽히다가 화들짝 몸을 펴며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강하게 부정하며 누구도 관심 없을 변명을 늘어놨다. 작가는 무슨요, 취미로 씁니다, 정도면 됐을 말이 호들갑이 된 건 당황의 정도를 나타낸 거였다. 글이든 그림이든 창작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화가의 호의 어린 농에 너무 격한 반응을 보인 것 같아 미안했다. 여전히 작가란 호칭은 부담스러웠다.

‘브런치 작가’ 타이틀은 마케팅이라니까요.


지인은 왜 작가라고 소개했을까. 사업하는 사람이라고 했어도 됐을 텐데. ‘직관'이 떠올랐다. 사업가와 작가란 단어는 직관적인 풍미가 다르.

사업은 분야가 무수하다. 사업하는 사람 하면 욕망이 동력인 자본주의가 연상된다.

사업하는 분이에요, 무슨... 사업…? 글쎄요, 뭐 이런 거 만드시는… 아…네…. 말은 길어지는데 이해는 겉도는 어정쩡한 상태. 그녀는 내 소개를 임팩트 있게 하고 싶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작가란 단어는 심플하나 묵직하다. 글을 쓴다고 하면 무슨 책을 냈냐고 질문하는 듯한 눈빛을 마주하는 게 좀 곤란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작가란 말에는 연관 이미지가 여럿이다. 내향성, 지적(知的) 이미지, 사유, 표현력, 독특한 관점 같은 것들. 작가란 소개는 꽤 좋은 향을 풍긴다. 단, 사기 치다 들킨 것처럼 부끄럽지만 않다면 말이다.




갓난아기들은 누워서 툭하면 울어재낀다.구가 충족되면 내내 잠만 잔다. 첫 애가 아기일 때는 내가 아빠라는 자각이 없었다. 믿을 수는 있지만 믿음직하진 않은 도우미 정도로 자가 규정했다. 밤낮이 바뀌어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아내가 안쓰러워 그저 뭐라도 거들려 애를 썼지만, 초보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목욕물 받으라면 받고, 수건 가져오라면 가져가고, 분유를 타라면 탔다. 집에 있으면 설거지를 했고 조용조용 청소를 했다. 아기 기분 좋을 때 잠깐 안아보고, 으애앵 울면 깜짝 놀라 얼른 아내품에 넘겼다. 아기는 말을 못 하니 아빠라고 부를 리 없고, 불리지 않는 아빠란 단어는 단지 초상(肖像) 일뿐이었다.


세 살 터울의 둘째가 태어나고 큰 애가 걷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두 번째 힘겨운 갓난쟁이 육아를 시작한 아내를 잠시나마 대신하는 것은 이제 아빠, 아빠 부르며 아장아장 다가와 품에 안기는 큰 애와 놀아주는 일이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 하나에, 두 팔로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의 반응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년 후 셋째가 엄마 품을 독차지하면서는 둘째까지 내 몫이 됐고, 아이들과 노는 건 예상보다 훨씬 재밌었다. 내 작은 몸짓과 몇 마디 단어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 인양 반응해주는 꼬맹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제야 나는 아빠란 자의식이 생겼다. 아이들이 나를 아빠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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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독서모임 단톡방에 캡처 한 장을 올렸다. 쓴 글 중, 이번 달 책 하얼빈(김훈 저)에서 인용한 문장이 있는 부분. 방송 기자 친구가 같은 문장에 밑줄을 쳤다며 반색했고 내 글이 "브런치에 올릴만한 문체"라고 덧붙였다. 기뻤다. 평에 신중한 이십 년 글쟁이의 칭찬(?)은 합격 인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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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콩 나듯 칭찬 댓글이 내 글에 달리면, 지하로만 떠돌던 자신감이 새싹처럼 볼록 솟았다. 발행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릴까 말까 했던 고민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좀 전까지 삭제를 고민했던 글에서 미세한 장점까지 찾아내는 간사한 마음에 놀란다.


작년까지 글을 발행하면 좋아요가 대부분 열 개 언저리였다. 넘더라도 열두세 개에 그쳤다. 그땐 늘 그랬기에 크게 신경 쓴다거나 위축되지는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적었던 건 맞다.

제법 꾸준히 글을 쓴 지 열 달 정도 됐고 20개 이상의 라이킷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브런치 라이킷은 공감, 응원이라고 인식한다. 누군가는 숙제하듯 눌렀겠지만 그래도 제목이라도 봤겠지 싶어 고맙다.

어느새 20개가 기준이 돼버린 것 같다. 안 주는 것보다 줬다 뺏는 게 더 서럽다고, 이제 20개에 못 미치면 다시 읽고 분석하기도 하고 통계를 뒤져 읽은 이와 누른 이의 비율을 계산해보기도 한다.

글과 책은 읽혀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읽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다.


브런치는 글쓰기 특화 플랫폼이다. 블로그와 뭐 다르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확연히 다르다고 인지한다. 깔끔한 디자인만 특별한 게 아니다. 블로그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쓰는 사람이 많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광고를 붙이는 매체의 성격을 그렇다는 뜻이다. 브런치에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이 다수라고 생각한다. 마케팅으로 시작했다지만, '작가 신청과 심사' 제도는 발행 글의 퀄리티를 어느 정도 보장한다. 물론 어디에나 있는 일정 비율의 부유물 같은 인간도 있긴 하지만.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 진심으로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들의 라이킷과 댓글은 이웃 블로그에 예의상 달아주는 하트와는 다르다고 믿는다.

쓰는 마음을 아는 사람들, 쓰기의 힘겨움을 느끼는 사람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롯이 글에 힘을 쏟는 사람들의 응원은 각별하다.





'제10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공지는 8월에 떴다. 마감이 10월 23일 자정이니 이제 열흘도 안 남았다. 앞글로 원고지 500매를 넘겼다. 뿌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499매와 500매는 9,900원과 만 원의 차이 같다. 목표인 원고지 600매까지는 100매 정도 남았다. 마감일까지 원고지 600매 쓰기는 일단락 짓는다.




뭐든 해봐야 알고, 맛봐야 안다. 제대로 알려면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 진리다.

장 강명 작가의 말이 맞았다. 원고지 600매 정도는 써봐야 작가라 불릴만하다는 그의 말은, 스스로 작가 정체성을 가져 보라는 말이었다. 8부 능선을 넘고서야 느낀다. 해내고 있다는, 이만큼 했다는 느낌은 달았다.


글쓰기는 홀로 방구석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글 쓰는 사람이라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건 혼자만의 결심으론 어렵다.


줄탁동시. 나는 되고자 하고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안에서 껍질을 부단히 쫀다.


온전히 믿으며 온몸으로 기대던 꼬맹이 삼 형제가 아빠라고 불러 나를 아빠로 만들었다.

글쟁이 친구는 츤데레 같은 칭찬 한 마디로 가슴을 내밀게 했다.

비슷한 고민과 지향을 공유하는 브런치 작가들이 쓴 한 줄 댓글로 밖에서 껍질을 쪼아 주었다.

사람 안에 있는 여러 역할의 정체성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모습을 드러냄을 새삼 알았다.


이제 누가 나를 글 쓰는 작가라고 소개해도 당황하지 않을 참이다.

600매를 채우고, 한 권의 전자책(브런치 북) 형태로 엮고, 응모 키를 누른 후에는 이렇게 답 하려 한다.


"예, 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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