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와 대화 중에 최근에 쓴 내 글을 읽지 않았다면 알지 못할 말이 나왔다. 요즘은 내 브런치를 안 읽는 줄 알았는데 계속 읽었나 보다. 자기 취향 아닐 것 같은 내 글을 계속 보고 있다는 데 놀랐고, 글 잘 쓰는 사람이 관찰하고 있구나 싶어 긴장했다. 후배는 비슷한 내용이 여러 글에 반복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은 나도 그런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귀찮아서 확인은 미뤘었다. 부끄러웠다. 내 한계겠지, 한 주제를 다양한 내용으로 채우는 게 진짜 어렵네. 얼버무렸다.
고른다고 골라도 막상 읽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 있다. 나는 주로 어떤 책에 실망을 했던가를 생각했다. 실망 포인트가 해당 작가만의 문제일 때도 있고, 책을 쓰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문제일 때도 있었다. 난생처음 한 주제로 긴 글을 쓰면서 느낀 곤란이 있다. 타인의 집을 창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들어가서 살아보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었다. 내가 체감한 바를 보태 쓴다.
상고하저
첫 문장, 첫 단락, 첫 장은 좋은데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책이 더러 있다. 지구력의 문제로 봤지만, 내가 직접 써보니 쓸 거리의 고갈에 무게가 실린다. 내 딴에는 숙고한 목차를 만들고 시작했지만, 소제목은 달라도 쓰다 보면 같은 내용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두 꼭지가 한 꼭지로, 세 꼭지가 한 꼭지로 줄어들었다. 당연히 책 전체의 발란스와 볼륨이 달라지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해당 챕터에 글 한두 개를 만들어 넣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고심하며 쓰느라 속도는 뚝 떨어지고 어설픈 내용을 쥐어짜면서 글은 헐거워졌다. 원고지 400매 경계에서 때때로 느꼈고 500매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심해졌다. 사전 준비와 목차 설계에 시간을 더 배분했어야 한다고 자책했다.
중복과 반복
사람마다 즐겨 쓰는 단어와 표현이 있다. 첫 출간을 한 작가의 책에서 주로 보게 되는데, 특정 단어와 문장 형태가 반복되는 경우다. 언어 습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나도 내 글을 다시 읽으면 비슷한 문장 형태의 반복을 보지만 고칠 수단이 마땅치 않아 손놓는 일이 많았다. 단어는 사전을 통해 유의어를 찾기도 하는데, 이 또한 평소에 저장해뒀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컸다. 김영하 작가는 취미가 단어 수집이라고 하지 않은가. 단어든 문장이든, 내 안에 쟁여놓은 재료가 부족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김금희 작가의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문학동네)’의 부록에는 사용 단어 빈도를 정리해놨다. 좋은 시도다. 나도 한번 따라 해 볼까, 생각만 한다. 자동으로 확인하는 기능을 찾아내면 모를까, 안 할 확률이 90%다. 나는 나를 안다.
부록
사랑 밖의 모든 색인
편집자 주
이 색인은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속 단어들을 고르고 빈도수를 헤아려 가장 적게 쓰인 단어를 먹 100%, 가장 많이 쓰인 단어를 먹 1%의 계조로 표현한 것이다.
- <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중에서
내용의 중복
어제 후배가 짚은 부분은 ‘글을 쓰는 이유가 자주 나온다'였다. 아마 이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나는 왜 쓰나, 왜 쓰고 싶나'가 은연중에 배어 나오는 모양이다. 몇 개의 글에 비슷비슷한 내용이 나온다고 했다. 뜨끔했다. 나도 그럴 거란 의심은 하고 있었다. 확인하면 해당 글을 대폭 수정해야 할 것 같아 내심 두려웠다. 아니, 자신이 없다가 맞겠다. 분량을 다시 채워야 하는 것도 겁나고, 그걸 빼면 월 쓰나, 그걸 또 언제 쓰나, 긁어 부스럼 될까봐 무서웠다. 그래도 브런치 북 발행할 때는 전체적으로 살펴봐야겠지. 크게 손대지는 못하겠지만.
퇴고는 발행 때마다 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책 한 권 전체를 조망하는 퇴고를 또 해야 한다. 퇴고, 이거 정말 중요하다. 함 무보면, 알게 되는 것이 정말 많다.
글 형식의 반복
코미디 말고는 반복이 재밌는 경우가 잘 없다. 글 양식의 반복도 책을 지겹게 느끼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초보자인 나는 의식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글을 쓸 때가 많다. 사람의 생각도 저마다 고유의 패턴이 있다. 매 글의 시작과 마무리가 비슷한 건, 새로운 시도를 할 만큼의 역량이 부족하니까 늘 하던 대로 편한 방식으로 써서다. 많이 읽고 다양한 형식을 접해야 실력이 는다. 독서가 왕도다.
무거운 글, 심각한 글
어려운 지식 전달조차 템포가 느리거나 재미가 없으면 이목을 끌기 어려운 세태다. 내 글은 무겁고 건조하다고 진단한다. 무거운 글은 책도 무겁게 해서 들고 있기도 힘들다. 독자로선 그리 느끼면서, 정작 내가 쓰는 글은 무겁고 어두운 편이다. 욕심 때문이다. 잘 쓰고 싶은 욕심, 멋있게 보이고 싶은 욕심. 몸에 힘을 빼는 건 늘 미션 임파서블 같다. 금년의 내 처지가 무거워서 그렇다는 핑계도 대본다. 상황 탓이야 상황 탓.
요즘 번역가 권남희 작가의 에세이를 자주 읽는데, 그녀의 글은 고 최인호 작가가 '샘터'에 장기 연재했던 에세이 가족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하고, 시트콤 느낌이 들만큼 밝고 따스하다. 특히 권 작가의 딸 정하가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는 딸 없는 사람으로서 질투가 날만큼 부럽고 재밌다. 나도 경쾌하고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에세이는 가벼워도 좋구나 생각하며 읽는다. 마음 가벼운 날, 맑고 밝은 글을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성공 확률은 언더 30%쯤으로 예상한다. 역시 나는 나를 안다.
신간 서적의 띠지에 '9년 만의 신작', '10년 만의 귀환' 같은 카피를 자주 본다. 전업작가가 책을 이렇게나 드문드문 내도 밥벌이가 될까, 뭐한다고 본업을 이리 등한시할까, 따위를 생각 했었다. 그게 아니었다. 그런 속 모르는 생각을 한 나를 반성한다. 모든 책은 준비 기간이 길수록 좋아질 확률이 높다. 구상, 취재, 구성, 초고, 1고, 2고…, 퇴고에 또 퇴고까지 몇 년이 후딱 지나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 알겠다. 알겠다는 표현도 건방지지만. 브런치 북 한 권도 제대로 쓰려면 1년 정도는 공은 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내 기준이다. 한 달에 책 한 권 뚝딱 쓰는 작가도 많다. 존경합니다. (야코죽어서 존댓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후배의 지적을 들으며 에디터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편집자의 역할을 작게 봤었다. 애정과 지식으로 무장한 채 책 쓰기라는 긴 노정을 함께 뛰어주는 사람이 편집자다. 제삼자의 전지적 시점의 고언과 조언은 작가를 더 크게 성장하게 할 것이다. 좋은 편집자는 신과 동급으로 보인다.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깨우침이다.
이 글에 뭔가 새로운 게 있는지 정리를 해보자.
충분한 준비, 토고(토 나올 때까지 퇴고한다는 뜻, 김연수 작가의 표현이다), 힘 빼기, 컨디션 조절, 독서 플러스 전지적 시점의 독자.
글 잘 쓰는 비법은 이거다. 쌀로 밥 짓는 얘긴데?
그렇다. 이번 글은 뻔한 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