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사유(思惟)다. 사유는 글쓰기의 시작이고 본질이며 종점이다. 나의 정의(definition)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나 싶어 쓰고도 움츠러드는 기분이지만, 다른 정의는 내게 흡족하지 않다. 글쓰기가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이 정의가 현재로선 내 마음에 가장 와닿는다. 너무 단호하게 느껴져서, 단어가 내가 기억하는 그 뜻이 맞는지 자신이 옅어졌다. 사전을 찾았다.
글을 쓸 때는 브라우저에 창 네 개를 띄운다. 글을 쓰는 구글 독스, 사전, 그리고 유튜브 뮤직과 포털이다. 앞의 세 가지는 글 쓸 때 필수품이고, 포털은 인용하는 책이나 영화, 작가 정보 같은 걸 찾는 용도다. 살면서 요즘만큼 사전을 자주 본 적이 없다. 자주 쓰는 단어도 맞춤법과 철자가 헷갈릴 때가 많다. 흔하게 쓰는 단어의 뜻도 확신이 없을 때가 있다. 오늘은 사전부터 뒤적이며 글을 시작한다.
사유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사유는 '생각'보다 포괄적인 뜻을 품은 단어로 보인다. 글은 어떤 것을 오래 생각하고 깊이 음미하여 쓰는 것이므로, 사유와 글쓰기는 동의어와 같다.
내친김에 ‘두루’도 찾았다. 두루는 ‘빠짐없이 골고루’란 뜻을 가진 부사다. 어떤 대상을 여러 관점에서 꼼꼼히 생각하는 일이 사유다. 엄마에 대해, 밥에 대해, 실패에 대해, 꿈에 대해, 나에 대해 빠짐없이 골고루, 그러니까 1, 2, 3인칭의 시점과 피아를 넘나드는 입장에서 넓고 깊게 그리고 오래 숙고하는 일이다.
질문이 차단된 기계적인 교육을 받았거나 모든 게 안전하고 편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경우, 창조력을 키우고 발휘해야 할 동기 부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된다.
생존에 영향을 미칠 만큼 최악의 상황이라면 곤란하겠지만, 인생이 어느 정도 고달플 때 비로소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인생일수록 창조적 인간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커진다.
- <창조력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가, 김대식> 중에서
삶이 고달플 때 창조적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힘든 상황을 벗어나려는 치열한 노력은 결국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다. 고달픔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온갖 궁리를 짜내야 한다. 같은 것도 달리 봐야 하고 손에 쥔 하찮은 도구도 무기로 바꿀 연구를 해야 한다.
생각이 사유가 되는 건 이런 시기이다. 이런 시기는 혼자 견뎌야 한다. 사람들은 큰 곤란에 처해있는 이들에겐 '힘내세요', '파이팅' 같은 말도 잘하지 못한다. 도울 방법이 별로 없어서. 설사 방법이 있다 해도 실천하기는 어려우니까.
앞글 어딘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당시엔 국민학교라고 불렸던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오후의 햇살이 떠오른다. 거의 항상 그렇다.
마루의 큰 창으로 비스듬히 들이치던 나른한 햇살, 그 빛 속에 점점이 떠다니는 먼지 알갱이,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햇살 속에 정물처럼 우두커니 마루 카펫 위에 앉아있는 내 모습. 어떨 땐 건조한 먼지 냄새와 카펫 냄새에 코가 마르는 것 같은 느낌도 따라온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물었다. 책은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너는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됐냐는 질문처럼 들렸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 치면 그게 언제부터라고 콕 집을 수는 있는가, 답을 망설이는데 오후, 햇살, 마루, 그림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수필버거 로고로 만들면 좋겠단 생각도 짧게 했다.
-어릴 때부터지 싶다. ---계기는? -아마도... 외로워서?
말하며 피식 웃었다.
마루엔 큰 책장이 있었다. 그 집은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라 가 볼 수가 없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어른이 돼서 다시 보면 기억보다 많이 작아서 놀란다던데, 마루의 책장도 어른의 높이에서 보면 그리 큰 책장이 아니었을 게다. 짙은 갈색 나무 문틀과 유리로 된 책장 여닫이 문 안에는 굵은 궁서체 한자로 커다랗게 ‘大望(대망)’이라고 쓰인 세로 쓰기 책 전질이 꽂혀 있었고, 백과사전이 있었고, 삼성당(기억이 맞다면) 어린이 도서 전집이 있었다. 삼국지, 수호지도 있었다. 아, 김찬삼 아저씨의 세계 일주 사진집도 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킬링 하기 위해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읽었다.
책을 읽다 물리면 강아지와 놀았다. 혼자 옥상에 오르기도 하고, 높지 않은 담벼락 위를 걷기도 했다.
4학년 때던가, 조르고 졸라서 자전거를 샀다. 그때부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 구경 다니는 일이 잦았다. 장미 만화방을 발견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봤을 텐데, 가까이서 만화방 내부를 들여다본 건 처음이었다. 신세계, 신대륙의 발견. 이강토, 독고 탁, 구영탄, 돌풍 7, 동짜몽(도라에몽)이 친구가 됐고 김성종의 제5열부터 차탈레 부인의 사랑, 북회귀선까지 빌려 읽었다. 만화방 주인은 돈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제목은 대여 치부책 기록용이었을 뿐.
쓰고 보니 독서광의 탄생기 같지만, 어른의 가이드 없이 혼자 흥미와 재미를 쫓은 책 읽기는 깊이를 갖추지 못했다. 채소는 먹지 않고 분홍 소시지만 먹는 것 같은 편식. 잡지로, 소설로, 만화로, 역사책으로 빠져들었으나 청소년 필독서 100 선류의 책은 많이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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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친구 엄마들과 달리 내 어머니는 왜 저렇게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주 무기력하게 누워있는지, 내 아버지는 왜 가끔 오는 사람인지, 이 집에서 내 자리는 어딘지 같은 불안 섞인 걱정들. 질문은 많았으나 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잡지, 만화, 소설에는 그 답이 있었을까.
사유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랜덤 하게 닥치는 인생의 사건(event)들, 풀리지 않는 의문 또는 막연한 질문이 그 대상이다. 생각만으론 쉽게 풀리지 않는 것들.
그리고 재료가 있어야 한다. 사유의 재료는 독서와 경험이다. 많이 읽으면 어깨너머로라도 여러 시각, 관점, 이론을 습득하게 된다. 내 입장만 고집하는 것은 사유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경험은 다양한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는 일이다. 놀라고 감탄하고 화를 내는 나를 관찰하다 보면, 남을 이해하는 힘이 생긴다. 사람 거기서 거기니까. 불가해 한 대상은 다양한 경험이 통역과 번역을 돕는다.
재료 없는 사유는 다람쥐 쳇바퀴 돌기다.
남은 하나는 혼자 있는 시간, 빠짐없이 두루두루 생각할 충분한 시간 확보가 필수 조건이다.
놀아도 사람의 몸은 자라지만, 인간의 성장은 혼자 있는 시간에만 가능하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마루의 아이는 점차 어른스럽다는 소릴 듣는 일이 많아졌다. 철이 일찍 든 소년.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 같은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점차 어머니의 상실감이 보였고 아버지의 난처함을 알았다.
고학년에 올라가며 사람의 태도와 말은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차츰 깨달았다.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들의 행동과 말이 유치하고 보잘것없어도 실망만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조금은 알겠으니 미워하는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혼자 있던 어린 나의 사유는 둘러싼 외부를 이해하는 데 쓰였다.
친구가 되자고 다가오는 사람은 있었지만, 가렸다. 교우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당시 의문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들었으나, 어린 내게 해결 방안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불안과 걱정을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버거웠다. 해소할 방법이 필요했다. 대안이라도 좋았다.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말로는 유니버스, 세계관 같은 것이었으려나. 이걸 창조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6학년 무렵. 만화를 그렸다. 번데기 탐정이 제목이었다.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친구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캐릭터였다. 그림체는 신문수 화백의 명랑 만화를 따랐다. 손바닥 만한 종이에 칸을 그려 컷을 채우고 호치키스로 찍어서 제본도 했다. 그리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 정복 이야기였는데, 정복의 과정이 아니라 정복 후 동업자들의 반목과 분열을 썼다. 한 일 년 그러고 살았다. 딴엔 집중을 했었는데, 만화도 소설도 한계에 부딪혔고 흐지부지 됐다.
어린 사유는 작은 창작으로 이어졌다고 말하면 억지일까.
글쓰기는 사유라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 글에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