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의 힘 (2)

by 수필버거

발달심리학에서는 유아기와 아동기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s)라고 부른다. 사람의 심리적 특성이나 행동이 획득되고 고착되는 시기라고 설명한다.

어린아이는 진흙에 비할 수 있다. 부모는 사랑이란 물을 쏟아부어 흙을 반죽으로 만들고, 말과 태도로 아이와 교감하며 기본적인 모양을 빚는다.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조응하며 고유의 성격을 발견하고 남과 구분되는 특질을 가진 사람으로 자란다.



생각이 많던 아이는, 스스로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성인이 되었다.

타인은 거울이다. 크면서 교류하던 사람들에게 비친 내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은 사람 같았다. 서른에 시작한 사업은 업계 어른들의 도움으로 성장의 궤도에 올랐다. 스스로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전환되었다.

나는 당당한 사람이었고 깨발랄한 인생을 살았다.

어느 시기까지는.



몰락은 일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당사자는 안다.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는 것을. 몰락이 일순간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건,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사건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도 끝은 있다. 폭풍이 종결되진 않지만, 잠잠해지는 시기가 온다. 몰락의 후과가 쓰나미처럼 덮쳤다가 빠져나가는 시간이 지나면 폐허가 남는다.

황폐 속에 계속 주저앉아 울던, 재기를 위해 발버둥을 치던, 바뀐 환경 속에서 한참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 고난의 시기엔 누구나 철저히 혼자가 된다.



몇 년을 차디 찬 바닥에서 살았다. 가난은 소금으로 만든 거친 칼 같았다. 그 칼이 이미 나있던 상처에 스치기라도 하면 쓰라렸고, 찔리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아프지 않기 위해 접촉을 차단했다. 최소한의 말만 하고 살았다. 가족과도 생존에 필요한 단어만 주고받았다. 회사에선 하루 종일 혼자 지냈다. 요즘 가끔 동안이란 말을 들으면 실없이 웃게 된다. 표정 없이 오래 살아서 그래요, 대꾸를 하는데, 이는 사실이다. 얼굴 근육 쓸 일이 없던 세월이 몇 년인데, 깊은 주름이 질 리가 있나.



성공을 좇던 나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어느 지점까지의 성공, 끊임없이 나를 찾는 사람들. 내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 빈 통장, 쌓이는 고지서, 빈 쌀독 같은 건 이리저리 돌려 막으며 견딜 수 있었다. 억지로 일감을 따고, 네댓 명이 하던 일을 혼자 쳐내는 동안은 무념무상 상태라 오히려 시간이 잘 갔다.

밤이 문제였고 일 사이의 자투리 시간과 운전하는 시간처럼 생각에 빠지는 순간들이 문제였다. 툭하면 후회가 몰려왔고 자학 같은 자책으로 끝이 났다. 특히 잠자리에 누우면 상념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아침까지 쭉 이어지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나의 모든 장점이 실은 몰락을 자초하고 가속했던 단점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내가 믿었던 나라는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일과 다름 아니었다. 손발이 노는 시간은 나를 부정하는 시간이었다. 굶는 것보다 힘들었다.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 투성이 인간이 된 나는 앞으로 무엇에 의지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감은 자기를 믿는 마음이다. 나는 믿을 구석이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 계속 그렇게 밑바닥을 전전하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긴 시간 동안 나만 보고, 나만 해석하며 살았다. 인간이 어디까지 하찮아질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염치를 내팽개 치는지를 뼈아프게 관찰했다. 인생의 공백기.

겨우 작은 성공이나마 손에 쥘 꿈을 꾸는데 덜컥 코로나가 왔다. 단점 투성이 인간이 겨우겨우 일어나 걷고, 겨우겨우 뛸 준비를 하다가.




작년 이맘때였다. 가을의 끝 무렵. 코로나 탓만 하고 있기엔 사업 환경이 너무 안 좋아지고 있었다. 벼랑 끝에 선 기분. 우울이 수시로 덮쳤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뜻대로 바뀌지 않는다면 차라리 업을 접을 각오를 했다.

친가 쪽으로 당뇨, 고혈압 같은 가족력이 있고 평균 수명도 짧다. 글이라도 열심히 써야 애들이 아빠를 추억할 거리를 남길 것 같은 절박감이 들었다. 빌딩을 남겨줄 확률은 매우 낮아 보였다. 그때 짠 새해 계획을 요약하면 일과 글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1년간 인생 구조조정을 해보자 쯤 되겠다.


준비과정인 셈 치고 모임도 해체했다. 자발적 고립의 그림을 그린 거였다. 계획대로 되리란 보장은 없지만 회사 재정비를 하려면 혼자 궁리하고 실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앞의 글에 쓴 대로 계획의 두 단계를 지난 열 달 동안 무사히 통과했다. 남은 한 고비만 잘 넘으면 아주 보람찬 일 년을 보낸 겨울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할인점 벤더업체 영업담당 이사를 상갓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데 내가 그 회사 부장에게 보낸 우리 회사의 신상품 샘플 사진을 봤다고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희한한 일이다. 십수 년을 알고 지냈지만 본인이 먼저 특정 상품에 관심을 표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주말에 자기 회사로 놀러 오란다. 그것도 샘플 챙겨서. 깜짝이야. 이 양반 왜 이러지. 아무튼 11월에 미팅을 하기로 했다. 감이 좋다. 경험상 이 사람이 이 정도 반응을 보이면 코드 딸 확률은 매우 높다. (마트 입점 확정 후 바코드 또는 QR 코드 등록하는 것을 ‘코드 딴다'라고 표현한다)


지난주에는 원청 업체 본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8월에 포장기 테스트를 했던 신상품 사진을 9월에 보냈었고, 샘플 생산하면 미팅 요청을 하겠다고 말해뒀었다. 먼저 말 꺼내놓고 왜 팔로우업(follow-up)이 없냐는 내용이었다. 저... 나도 바빴는데요... 성수기 진입이 목전이고, 내년 상품 포트폴리오도 짜야하는 시기니까 서둘러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건 또 뭔 일 이래. 이렇게 쉽게 문을 열어준다고?



책을 쓴다는 것을 거창하게 생각했었다. 글을 부지런히 쓰고, 모이면 잘 된 글을 추려서 출판사에 투고를 하거나 공모전을 통해 입봉을 하는 일로만 여겼다.

열심히 글 쓸 결심을 했을 때 읽다익다 책방의 랜선 글쓰기 모임을 알게 된 건 천우신조였다. 혼자의 결심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어려운 일이었을 게다.

지금도 장강명 작가가 고마운 건, 원고지 600매 쓰면 저자라는 명쾌한 주장을 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맞았다. 한 주제로 그만한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면 저자인 거였다. 자격증 허가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이미 브런치란 플랫폼에 어렵사리 발을 들인 상태였고, 브런치 북이라는 간단하고 아름다운 전자책 툴도 쓸 수 있다.

이 두 가지 우연이 나를 일 년간 꾸준히 (성실하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다. 예나 지금이나 같다. 똑같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성장이나 퇴보, 아무튼 뭐라도 조금은 변하는 게 인간이니까. 하지만 나란 사람의 근본은 같다.


단점, 장점은 점만 보고 내리는 순간의 판단이었다. 점, 선, 면의 은유처럼 그때 찍힌 점이 마이너스의 영역이면 단점이고, 반대면 장점으로 보일 뿐이다.

다시 혼자가 되었던 자발적 고립의 일 년간 생긴 관점의 변화다.


몰락은 아픈 일이다. 겪는 내내 슬펐다.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하지만 지우고 싶은 공백기란 생각, 그 생각을 지우기로 했다.

글을 쓰는 열 달 동안 생각했다. 사업의 부침은 아프지만 죽을죄는 아니란 생각. 어쩌면 과정이란 생각, 최소한 나란 사람에게 스토리는 남겨 준 사건, 무너지는 나를 관찰하며 인간을 탐구하게 만든 사건이란 생각을 했다.


사장으로선 큰 실책을 저지른 사람이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선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