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신화학자 조셉 캠벨을 소환한다. 세상 모든 이야기(스토리)의 원형과 같은 신화를 평생 연구한 사람이던 그는 '인생은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 인생을 이분법으로 단순히 나누면 사업 실패 전과 후로 가를 수 있다.
전은 목표 지향의 삶, 후는 경험 지향의 삶. 캠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관점이 바뀐 것이다.
아프리카 여행 중 킬리만자로 산에 올랐던 일이 떠오릅니다. 산에 오르는 일주일 간 많은 것을 배웠지요. 산등성이 너머 정상에 시선을 두면 그 엄청난 높이에 자꾸 용기가 사라진다는 것. 먼 전망을 갖되, 가까운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 흙을 밟고 움직이는 발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
<불가능한 대화들 : 젊은 작가 12인과 문학을 논하다> (오늘의 문예비평 지음)
마흔 전에는 킬리만자로 정상만 바라보는 삶,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기꺼이 감내해야 할 대가로 생각하는 삶을 살았었다. 몰락 후 나를 대면하는 시기에 만난 캠벨의 말은 많은 것을 바꿨다. 흙을 밟는 발을 지긋이 바라보며 느낌을 음미하는 삶,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을 마음 가득히 담는 삶이 옳아 보였다. 위 인용문은 정상을 밟기 위한 용기를 유지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거지만, 나는 내 방식으로 해석했다.
신발의 감촉, 흙의 푹신함, 시선이 닿는 가까운 산을 경험하는 것이 인생이란 말에 수긍했다.
단지 글이 쓰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간간히 출간 작가, 공모전 당선 같은 단어가 주는 달콤함을 맛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냥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가끔 누가 글 잘 쓴다는 칭찬이라도 해주면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고 작가, 저자가 되는 느낌이 궁금해졌다. 경험해 보자고 마음먹은 봄부터 오늘까지 원고지 603매(이 글 포함)를 썼다. 여섯 달이 걸렸다.
그 경험을 요약하면 두 문장이다.
‘힘든 것 이상으로 뿌듯함이 크다.’
‘쓰길 잘했다.’
600매 쓰는 데 두 달에서 세 달이면 충분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애초 계획했던 기간은 두 배로 늘어났지만, 이른 봄에 시작했기에 마감날까지 계획을 수정하고 쓸 시간이 있었다. 시간에 쫓겼으면 포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쓰겠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가 내 답이다.
인간은 신의 은유라고 했다. 그런 맥락이라면 인간의 은유는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 특히 소설이 그렇다.
글을 쓰며 특정한 시기의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썼다. 맨날 망한 얘기. 민망하다. 그러면서 느꼈다. 내 이야기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쓰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글에는 재미, 감동, 교훈 중 하나는 들어 있어야 하는데 내 망한 얘기만 주야장천 쓰는 건 마치 ‘라테는 말이야’처럼 공감과 교훈을 억지춘향으로 강요하는 기분이다. 쓰다 보면 또 나오겠지만, 대폭 줄일 생각이다.
글감이 되지 못하는 내용은 잘난 척이 될 만한 것들, 과시하는 내용들이다. 자기 경험이나 고백에서 얻어낼 지혜와 공감의 지점이 없는 글은 지면 낭비가 될 수 있으므로 굳이 글로 남기지 않는다.
- < 출판하는 마음, 은유 지음 > 중에서
이제 무엇을 쓰고 싶냐고 묻는 다면?
돈을 내고 읽어도 아깝지 않은 글, 읽고 나서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거기에 사색을 하게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덧붙인다.
나는 글과 책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모호한 자의식은 제쳐두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독자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글의 총합이 책이 아니라는 것. 좋은 글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한 권의 책은 유기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와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일을 과단성 있게 솜씨 좋게 해내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것. 저자는 외부자의 시선을 갖기 어렵기에 편집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좋은 출판사보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 < 출판하는 마음, 은유 지음 > 중에서
살면서 배운 것, 깨우친 것들을 은유로 녹여 넣은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러자면 소설이 적합하겠다.
장편은 아직 무리고, 단편 몇 개를 써 볼 생각이다. 마감은 창의력의 원천이니까, 내년 10월의 공모전을 데드라인으로 삼을 작정이다.
11월에 시작한다.
소설을 쓰는 경험을 할 생각에 벌써 들뜬다. 물론 곧 후회를 하거나 골머리를 싸매겠지만.
책씻이 하는 단계에서 또 결심을 하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