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의 효용 (2)

아버지. 아빠.

by 수필버거

큰 아들이 졸업 전 취업을 했다. 학교에서 좀 더 준비하고 졸업장 쥐고 취업하면 좋겠다는 나와 아내의 의견에 아이는 여기서는 이렇게, 그다음은 저기로, 최종은 저~어~기로 가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주에 함께 수원으로 올라가서 전세방 계약을 했고 연휴 마지막 날 아이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기차를 탔다.



대청소를 하고 트럭을 불러 잡동사니를 한가득 실어내고나니 공장 뒷마당이 꽤 넓어졌다. 휑한 모양이 이등변 삼각형 같네, 라는 하릴없는 생각을 하며 믹스 커피를 마시는데 큰 애 전화가 왔다. 어제 점심 무렵이다.

용돈 쫌 어쩌고 하더니 회사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업무가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고, 이직률이 높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졸업까지 취업 준비를 더 해보지 했던 아빠 말 들을걸 그랬다는 말을 숨 가쁘게 했다.

-엉? 니, 출근 이틀째 아이가?

-----네, 맞아요.

-뭐든 니가 결정하면 존중하겠다만, 첫 월급이라도 받지 그라노.

-----어제, 오늘, 생각 많이 했어요.

-안 그랬겠나, 퇴각할 때 처리해야 할 것들은 고민해봤나?

-----어떤 거요?

-방 빼는 문제부터, 이것저것….

-----아… 아니요… 아직….

-내 의견은… 일단, 첫 달은 채우고 나서 일하고 월급 받는 경험도 한번 해보는 게 좋겠다.

-----네, 알겠어요, 또 전화드릴게요.

-알았다…



전화를 끊고 담배를 물었다. 삼각형 뒷마당 끝 모서리를 보다가 눈을 들어 구름 듬성한 맑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열네 살 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내게 남은 아버지의 이미지는 전설 속 위인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잠깐 얼굴을 마주칠 수 있었던 나이 많은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고 많이 바빴다. 적수공권 자수성가의 표본 같은 사람. 당신의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고, 말은 흐릿하다. 대화를 하기엔 내가 어렸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버티다가 황망히 세상을 떴다. 어머니가, 숙부가, 사촌 형이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서 해석한 내 아버지의 삶을 간간이 들려줬다. 당신의 인생은 신화나 위인전의 느낌으로 내게 남았다. 나는 내 아버지를 잘 알지 못한다.




어젯밤엔 장례식장에 있었다. 상갓집 표준 음식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큰 애 톡이 왔다. 수습기간 3개월은 채워 보겠다고 했다. 출근 이틀 만에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엄마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그게 뭐 부끄러운 일이냐고, 새로운 환경에 낯설고 겁이난 네 무의식이 '이 회사 싫어'의 얼굴로 나타난 것 같다고, 며칠 지나고 긴장 풀릴 때 천천히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는 답 톡을 보냈다. 엄마도 이해한다는 말도 보탰다.




문과 이과를 선택할 때, 대학 진학을 할 때, 취직을 할 때, 유학을 결심할 때, 사업을 시작할 때. 망했을 때, 아버지의 부재를 느꼈다.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거냐고. 내 결정에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고. 늘 혼자 결정했고, 길을 놓치고 우회했고, 자주 후회했다. 내 아버지의 생각과 관점, 결정의 방식, 행동의 기준,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추측할 근거도 없었다. 당신의 모습과 전설 같은 에피소드 몇 개만 내게 남아있다.




손현 작가의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를 읽는 내내 부러웠다. 오토바이 검색을 했고 나도 한 번이란 마음에 먼 계획을 짰다. 그리고 든 생각은 손 작가의 아이에게 이 책만 한 선물이 또 있을까였다. 삶을 대하는 태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방식,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어울리는 모습과 대화의 내용으로 추측할 수 있는 아빠란 사람의 됨됨이. 그의 아이(들)는 그의 책을, 글을 깨치고 읽을 것이고, 자라면서 읽겠고, 늙어가며 또 읽을 게다. 인생의 고비마다 교과서로, 참고서로 보고 또 볼 것이다. 유라시아 횡단보다 그게 더 부러웠다. 읽은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부러운 마음은 자꾸 커지고 있다.



아이들의 전화와 톡을 받을 내가 세상에 없을 때 세 아이들이 아빠의 의견을 찾아낼 수 있도록, 책이 쓰고 싶어졌다.

이 책은 원고지 600매에 도전하는 어느 글쓰기 초보 아저씨의 브이 로그 같은 것이지만, 이 속엔 지난 일 년간의 ‘나의 지금’들이 녹아있다. 일을 대하는, 하루를 살아내는 ‘내’가 글 곳곳에 스며있다.


쑥스러운 모습으로 내 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상상을 한다.

내가 사라진 후, 늙어가는 내 아이들이 내 책을 읽으며 길을 묻는 모습을 상상한다.

출간을 하고자 하는 이유이며 필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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