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의 효용 (1)

명함 대신 카탈로그

by 수필버거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3년 전에는, 나도 출간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남들 뛰니까 얼결에 따라 뛰는 것 같은 생각이었다. 글을 쓰기로 했으면 출간이 목표여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간절하지는 않았다. '출간 작가'는 검색창에 글쓰기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따라 나오는 연관 검색어 기능 같은 심리 기제였던 것 같다. 쓰기로 작정했으니 내 마음 어딘가에는 출간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뿌리 깊은 이유가 당연히 있을 거라 믿었고, 몇 가지를 찾아서 글로 쓰기도 했다. 일부는 진짜였고 나머지는 클리세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렇다.


목적의식 없는 글쓰기는 그래서 간헐적이었을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 작년까지의 글쓰기는 술을 마시거나 드라이브를 떠나는 것 같은 잠시의 즐거움을 위한 충동에 가까운 행위였다.

매일은 아니라도 자주 글을 쓰겠다는 지난 연말의 결심도 해가 바뀔 무렵에 하는 습관적 다짐의 범주 안에 있지 않았나 싶다. 글은 재미를 위해 쓸 수 있지만, 출간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헤어질 결심'인 이유에 대해선 "사랑하는데 결심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헤어질 때는 결심이 필요하다. 항상 성공하리라는 법도 없고 과연 될까? 영화 보기 전에 걱정부터 하게 되는 제목이라 마음에 들었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 인터뷰 기사> 중에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는데도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그냥 쓰면 되는 거였다. 좋아서 하는 일을 시작하는데 결심 따위는 필요치 않다. 사랑까지는 모르겠으나 좋아하니까 쓰고 싶은 거겠지. 글쓰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도, 돈이 되지도 않는데도, 기꺼이 애를 쓰고 싶은 것이 증거다. 그러나 출간은 동인(動因)과 목적이 뚜렷해야 하지 않을까. 박 감독의 말처럼 출판과 판매에 성공하리라는 법도 없고,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도 없다. 최소한, 필요는 찾아야 한다. 출간에는 '결심'이 필수로 보인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김키미 저 / 웨일 북)’는 잊고 있던 출간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키미 작가는 젊은 '여자'다. 모두가 입을 모아 외쳐도 사회의 변화는 늘 더디다. 김 작가는 아직도 여자로 사는 것 자체가 이미 불리(不利)인 세상에서 학력, 경력 같은 두세 겹의 핸디캡을 온몸으로 뚫으며 커리어를 쌓고 또 나아가고 있다.

그녀에게 이 책의 출간은 또 하나의 강력한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김 작가의 앞날을 어렴풋이 그려보았다. 먼저 강연 요청이 떠올랐다. 실제로 클래스 101을 준비한다는 그녀의 글을 봤다. 브런치였는지는 모르겠다. 책이 화제가 되고서 김 작가의 인터뷰가 꽤 여러 매체에 실렸다. 그리고 글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고, 다음 책을 내자는 출판사도 나타날 것이다. 그녀에게 출간은 세상에 자신만의 무대를 만드는 일로서의 의미가 크다 하겠다.


이런 사례는 물론 많다. 첫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고, 그리고 또 책을 내고, 어느새 전문가 대접을 받는 선순환의 고리. 커리어 빌딩의 중요한 경로 중 하나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는 나와의 연관성이 클 때이기 십상이다. 새롭지 않은 일을 새롭게 보게 한 키미 작가의 책이 그랬다. 내가 브런치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그냥 관객의 입장에서 또 한 명의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지켜보는 흔한 순간일 뿐이었을 게다. 그러나 나도 글을 쓰기 시작한 상태에서 '오나브'를 읽는 건 결이 다른 일이었다.


책을 내고 싶은 충동이 구체적으로 일었다. 그녀의 책이 힉스 입자처럼 내 욕망에 질량을 부여했지만 충동이 오래가진 않았다. 내 현실을 생각했다. 내 삶에는 발췌하고 포장해서 대중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는 자각. 내가 잘 아는 분야는 트렌디하지도, 흥미롭지도 않다는 생각.

출간 충동은 슬그머니 사그라들고 글쓰기는 다시 느슨해졌다.




‘오나브'에는 글을 쓴 김키미만큼 흥미로운 손현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공계 전공자에 직장도 그 계통인 사람이 느닷없이 '브랜드 B(비 미디어 컴파니)'로 이직을 해서 글로 밥을 버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고 했다. 종사하는 업계가 달라서 현재 이력서로는 어필이 힘들다는 걸 본인도 알았고 우회로를 개척했다고 한다. 자신의 스토리, 지인과 친구들에게 부탁한 본인에 관한 인터뷰를 잡지로 엮어 ‘매거진 손현’을 만들어 제출했단다. 심지어 ‘매거진 손현’은 매거진 B와 같은 판형, 동일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걸 혼자 해내다니. 전직에 성공하고 매거진 B와 JOBS의 에디터로 활동했다.


손현은 <에디터의 글쓰기>를 통해 매거진 <손현>을 만들면서 시도한 다섯 가지 자기 탐색법을 소개했다.
첫째, 직접 쓴 글이나 사진, 진행했던 프로젝트 등 나를 잘 드러내는 작업을 모아서 정리해 본다.
둘째, 스스로 기획해 자문자답하는 셀프 인터뷰를 진행해 본다.
셋째, 타인에게 내 인터뷰를 요청해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든다.
넷째, 주변 사람들에게서 나에 대한 피드백을 수집해 내 이미지를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
다섯째, 살아온 과정을 특정 주제에 맞춰 시간순으로 정리해 봄으로써 인생 전반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해 본다.

- <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김키미 지음 > 중에서


스물아홉 살이 되던 2012년, 나는 매거진 <B>로 이직하고자 '매거진 <손현>'을 만들면서 내면을 정성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략 3개월 동안 주말마다 이 작업에 집중했는데, 그때 시도한 방법은 다섯 가지다. (중략)

‘이렇게까지 꼭 해야 되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탄탄히 다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한 번쯤 만들어보기를 권한다. 스스로의 가능성과 한계, 현 상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된다.

- < 글쓰기의 쓸모, 손현 지음 > 중에서



한때 호기심 천국이 별명이었던 나, 그러나 요즘은 잠잠했던 나의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검색으로 '글쓰기의 쓸모(손현 저 / 북스톤)’를 찾아 읽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면서도 뻔한 작법서는 아닌 책. 에세이와 작법서 사이 어디쯤 자리한 그의 글은 따뜻하고 선했고, 행동은 용감했다. 위의 두 책은 본 브런치 북 글에 몇 번 인용했다.


다시 출간을 생각했다. 이번엔 목표로 삼아도 될까 했지만, 충동은 또 오래가지 못했다.

왜 자꾸 불씨가 사그라들까.

김키미와 손현에게 출간은 커리어 확장과 경로 수정의 좋은 예로 값져 보인다. 독자에게 지식과 영감을 준다는 의미도 크다.

명함에 적힌 이름과 회사명, 직함으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평범한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늘 소수다. 그들의 책은 그럴 때 세상에 내미는 카탈로그 같다.


내가 책을 낸다고 인생이 바뀔까? 바꾸고 싶기는 한가?

작게는 그렇고, 크게는 아니다. 본업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사람 정도는 좋다. 이 정도 크기의 동기를 연료 삼아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출간의 필요는 여전히 크지 않았다.




책을 쓰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실행으로 바꾼 계기는 장강명 작가의 책 '책 한 권 써 봅시다'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앞글에 밝힌 바 있다. 원고지 600매를 쓰는 저자가 돼보라는 장 작가의 제안으로 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출간'에 제대로 마음이 끌린 건 손현 작가의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를 읽고서였다. 단숨에 발견한 필요성은 아니다. 책의 여운을 음미하며 한 가지 생각이 가슴에 뿌리를 내렸다.

손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든 생각을 곱씹으며 출간의 필요를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고 이 책을 쓰면서 굳고 있다.


글이 길어졌다.

내가 발견한 출간의 필요가 무엇인지는 다음 글에 이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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