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물류 기업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업(業)의 본질(本質)을 설파했다. 그는 삼성생명 신임 사장에게 보험업의 본질은 보험설계사라고 말했다 한다. 아마도 갓 부임한 사장은 회사를 완전히 새로 설계해야 했을 게다. 관점이 이렇게 무섭다. 이 관점을 차용하여 바라본 아마존은 물류 회사였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업의 본질이란 말은 핵심 역량과 등치(等値)다. 핵심 역량의 강화는 경쟁사의 진입 장벽 역할도 한다. 흔히 아마존을 물류도 잘하는 쇼핑몰이라고 생각하지만, 물건도 파는 물류업체가 더 본질에 가까운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압도적인 아마존의 물류 시스템을 경쟁사가 단숨에 따라잡기는 매우 어렵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UPS나 페덱스를 인수하면 모를까, 자기 자본으로 아마존과 겨룰만한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된다. 제프 베조스는 평소 “관점의 차이는 IQ 80점의 차이에 준한다”는 과학자 앨런 케이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이 회장의 말과 다르지 않다.
업의 본질을 파악하면 해야 할 일이 달라지고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맥도널드는 부동산업이다. 초기 맥도널드의 재무책임자 해리 소넨본(Harry Sonneborn)의 조언을 받고 레이 크룩이 깨달은 맥도널드 사업의 본질이다. 크룩은 더 이상 주방을 맴돌지 않는다. 부동산 회사와 접촉하고 은행을 찾아가 설득한다. 지금도 임대 수입은 맥도널드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때부터 맥도널드는 날개를 펴고 훨훨 난다. 업의 본질이란 관점으로 접근하면 '계획된 적자'란 사기틱한 용어조차 설득력을 획득한다.
내가 참고할 두 회사, 츠타야와 트레바리의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오래 생각했다. 시작하기 전에, 저지르기 전에 답을 얻어야 하는데 쉬이 찾기 어려웠다.
재기(再起)를 도모할 때, 경북대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돈이 무엇인가부터 팠었다. 벌고 싶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면 어찌 되는지 진하게 겪었으니까, 또 휘둘리게 될까 봐 겁이 나서.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여 대상을 재정의(再定義) 하는 습관은 실패의 쓰디 쓴맛을 본 후에 생겼다.
의심하고, 자문했다.
츠타야는 서점일까?
트레바리는 독서 모임일까?
츠타야 서점은 내 꿈의 발원지이자 최종 목적지라고 할 수 있다. 츠타야가 한국에까지 유명해진 건 다이칸야마점부터 일 것이다. 그전까지 츠타야의 모습은 이미 많은 매체에서 소개됐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만 길어지는 장황한 설명은 굳이 하지 않는다. 오늘날 츠타야 서점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롯폰기점을 필두로 다이칸야마 T 사이트부터 츠타야는 큰 변신을 하여 언론 매체와 유튜브에서 자주 본 익숙한 츠타야 서점의 모습을 갖춘다.
츠타야 서점에는 항상 스타벅스가 있다. 책과 커피. 1990년대부터 반스앤노블과 스타벅스의 조합으로 이미 익숙하다. 큰 차별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북 큐레이션? 상품을 팔기 위한 고육책 아닐까. 셰어 라운지? 스터디 카페랑 뭐가 다르지? 신간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허용하는 마케팅 기법? 훼손된 책은 반품하나? 뭘까, 뭘까, 뭐가 다를까, 본질은 뭘까.
소설가 장강명은 작심하고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 텅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만 본다고 소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는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드러누워 빈둥거리다가, 동네 산책을 하다가 떠오를 때가 더 많다고 했다. 나도 생각은 늘 물고 있지만 맨날 츠타야 관련 책만 읽고, 자료 검색만 하지는 않았다. 어느 밤, 아름답고 풍성한 문장의 김애란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논문 같은 딱딱한 글이 읽고 싶어 밀리의 서재에서 무인양품 분석 책을 열었다. 소파 등받이에 새우처럼 기대앉아 서문을 읽다가 스프링 튀듯 몸을 벌떡 세웠다.
무인양품은 사실 일본 문화가 낳은 독특한 콘셉트다. 즉 ‘무인양품’은 브랜드라기보다 하나의 개념(槪念)에 가깝다. 브랜드명과 회사명에는 대개 창업자의 이름이나 사업 내용, 지명, 상징적인 상품명 등이 붙기 마련이지만 무인양품의 경우에는 콘셉트가 그대로 브랜드명이 되었다. 이 ‘무인양품(無印良品 : 상표 없는 좋은 품질의 상품이라는 뜻)’이라는 콘셉트는 상품 개발 등 모든 사업 활동의 원칙이 되고 있다.
- <무인양품, 보이지 않는 마케팅>, 마스다 아키코 / 노경아 -
개념. 컨셉.
빨래 후 속옷, 겉옷, 수건을 따로따로 개켜 옷장에 차곡차곡 채워 넣듯 혼란하던 머릿속이 반듯반듯 정리가 됐다.
츠타야는 서점 컨셉의 편집샵이다. 머릿속으로 츠타야 서점에서 책을 싹 들어내봤다. 잡화점이다. 백화점도 아닌 잡화점. 그릇도 팔고, 만년필도 팔고, 여행 티켓도 팔고, 요리 교실도 열고, 냉장고도 판다. 책이 매개여서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고급스럽고 지적인 분위기로. 그리고 책을 인테리어 소품의 관점으로 본다면 고객이 읽다 던지고 가도 된다. 벽지 갈듯, 소파 교체하듯, 악성 의류 재고 정리하듯 조금 비싼 비용으로 회계처리 하면 된다.
무인양품도 잡화 브랜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란 카피로 유명한 무지의 디자인은 일본 젠(선禪 / zen) 문화란 해석도 있고 극도의 미니멀리즘이란 평도 있지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일본 문화의 절제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잡화 브랜드이다. 츠타야는 그윽하고 지적이며 고즈넉한 서점 이미지의 옷을 입은 잡화점이라고 생각한다. 느닷없는 후타고타마가와의 츠타야 가전을 떠올려 보면 이 해석이 더 힘을 받는다.
속이 다 후련했다. 일본이란 백그라운드가 빠지고 심심한 디자인만 따라한 무지(MUJI)의 아류들이 왜 그렇게 헤맸는지 이해가 됐고, 편집샵이란 관점은 뺀 채 장서와 인테리어만 베낀 츠타야병 브랜드들이 왜 고전을 면치 못하는지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무지도 책을 판다. 무지북스. 고급 인테리어, 고급스러운 고객 유인책이다.
그러면, 트레바리는 독서 커뮤니티일까?
츠타야에 비하면 비교적 일찍 분석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트레바리의 컨셉은 보급형 '워런 버핏과의 점심'이다. 셀럽, 유명인, 화제의 인물과의 교유(交遊).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인맥 장사, 휴먼 네트워킹 사업.
'트레바리 아니면 어디서 이 분들을 만나요?'
트레바리의 홍보 카피다.
책, 즉 독서의 자리에 골프, 등산, 파티를 대입해 보자. 뭔가 이상하다. 자칫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심지어 지탄까지 받을지도 모른다.
"나, 그 사람 알아, "
"그 사람 내 친구의 친구야."
"그이가 내 사돈의 팔촌이잖아."
트레바리는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츠타야도, 트레바리도 책 고유의 이미지를 잘 활용한 브랜드임에는 틀림없다.
길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무인양품 책 서문에 이런 말도 나온다.
혁신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들의 ‘새로운 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경제학자인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가 주창한 혁신의 신결합(뉴 콤비네이션) 개념과도 유사하다.
- <무인양품, 보이지 않는 마케팅>, 마스다 아키코 / 노경아 -
자, 이 재료들로 나는 무엇이 만들고 싶은가,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조금, 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