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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May 03. 2020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길이 나를 안내한다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나의 꿈은 “외국인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것”이었다. 우연히 EBS “미리 가 본 대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 외국어대학교 한국어 교육학과”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본 것이 꿈의 시작이었다. 늘 영어라는 외국어를 배우는 입장이었고 그것에 목메면서 살아왔던 수험생으로서 모국어인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통쾌하고 짜릿했다.


당시 한국어 교육학과는 한국 외국어대학교에만 있었고 자연스럽게 서울 생활까지 꿈꾸게 되었다. TV로 한강과 그 주변에 즐비한 높은 건물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뛰었다.


아버지는 몇 년 째 편찮으셨고 감히 꿈이라는 것을 꿀 여건이 아니었던 나에게 공부할 이유가 생겼다. 중위권을 맴돌던 성적은 전교 상위권으로 뛰어올랐지만 원서를 쓰는 결정적인 순간에 어이없게도 그 꿈을 포기하고 고향에 있는 교육대학을 선택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 싼 등록금, 집에서 등하교 할 수 있는 여건에 꿈을 팔아넘겼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졌다. 몇년 뒤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팠고 결국 중증 뇌병변 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점점 더 내 꿈과는 먼 삶을 살게 되었다. 꿈을 접지 않고 가려던 대학교를 갔더라면 지금처럼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생계형 직장인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대신 원하는 멋진 삶을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원치 않는 길로 자꾸만 펼쳐지는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러던 중 혼자 등하교를 할 수 없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학교로 어쩔 수 없이 전근했다. 그 학교에는 다문화 학생이 많았는데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외국인 학생과 중도입국 학생들이 점점 늘어 그런 학생들을 위한 특별반인 한국어 학급이 생겼고 내가 그 반의 담임이 되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겠다는 꿈을 버린 지 25년 만에 꿈이 제 발로 나를 찾아왔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 있다. 한국어 학급을 맡은 첫 해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교장선생님에게도 전해졌는지 올해도 한국어 학급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힘들고 지쳐 더 이상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진해서 한국어 학급 컨설팅 및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요청했다. 평소 누구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싫어해서 혼자 끙끙대는 성격이지만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맡고 있는 한국어 학급을 내어 보이고 컨설팅을 받았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멘토 교사에게 한국어 학급 운영에 대한 조언 얻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으로 조직된 다문화 교육 교사연구회에 가입해도 되냐고 먼저 연락을 해서 연구회 회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은 학점 은행 제도를 활용해 한국어 교사 자격증 취득에 도전한 것이다. 한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20살 한국어교육학과 신입생이 된 것만 같아 감격스럽다.  25년 전 꿈을 포기하던 그 때, 사이버 강의를 들으면 한국어 교사가 될 수 있는 제도가 생길거라고, 초등학교 안에 한국어 학급이 생길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삶은 속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마치 살인 미제사건 용의자의 DNA를 지금은 검사할 기술이 없지만 미래엔 그런 기술 생겨 꼭 범인이 잡히길 기대하며 공소시효가 지난 살인 사건의 용의자 DNA를 30여년 보관한 경찰들처럼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은 원동력을 무엇이었을까?


불과 2-3년 전만해도 이 지리멸렬한 삶을 그만 두고싶었다.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로써의 삶이 무겁고 힘겨웠다. 삶은 해야만 하는 일로 둘러싸여있는 매정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버텼다. 버티고 또 버텼다. 해결책을 찾을 힘도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소금 친 미꾸라지처럼 바둥거리면서도 아둔하리만큼 꿋꿋이 참아냈다. 그래도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일말의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한 줌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마법처럼 꿈이 이루어졌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었을 뿐이다.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남은 교직 생활동안 한국어를 모르는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돌보며 지내고 싶다는 꿈 말이다.


다른 사람도 이런 짜릿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꿈과는 멀리 떨어진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고 때론 지리멸렬한 이 삶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절망스러울 때,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며 꿈을 고이 간직해 언젠가는 그 꿈이 선물처럼 이루어지는 마법과 맞닥뜨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진짜로 살아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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