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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Jan 15. 2022

나는 오늘도 지구 파괴자

적당히 불편하게 中 '내일도 실패하겠지만 - 김한솔이



나는 오늘도 지구 파괴자


    퇴근 후 시켜 먹는 배달 음식에는 신기하게도 돈 버는 맛이 난다. 열심히 일했으니 이 정도의 편리함은 누려도 돼!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고 일하는 날은 더더욱 넘치는 한 끼를 기대한다. 냉장고 냉기를 가득 품은 맥주 한잔까지 곁들이면 완벽한 하루의 마침표가 따로 없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고 피로의 갈증이 가실 쯤 식탁 위에는 스멀스멀 올라온 죄책감이 자리를 차지한다. 단 한 끼를 위해 배출되는 어마어마한 플라스틱과 비닐들, 일반쓰레기로 분류되는 음식 묻은 일회용 젓가락과 수저, 아무리 물로 깨끗이 씻어도 재활용 되지 않는 배달 용기들까지. 수고로움과 맞바꾼 쓰레기들이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도 또 지구를 파괴하셨네요.”

짧은 편리함 대신 버려지는 쓰레기를 인지하고부터 지구파괴자 꼬리표가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분리수거 열심히 하잖아’같은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분리 배출된 쓰레기의 60%가 재활용 선별과정에서 다시 버려진다고 한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고작 두 사람이 사는 단출한 우리 집만 해도 각종 택배 박스, 플라스틱 과일 박스, 배달 용기들, 비닐, 파손용 포장지 등으로 언제나 포화상태다. 줄이고 줄여도 잠깐만 방심하면 이 정도니. 아무래도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유해한 존재가 맞는 것 같다. 이토록 절망적인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은 특정 이슈나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었다. 긴 시간동안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미노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회피하던 깨달음을 마주한 날에는 무해하고 깨끗한 삶을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 삶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일평생을 지구파괴자로 살아온 내가 손바닥 뒤집듯 이상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몇 번의 쓰라린 실패와 죄책감을 반복하면서 내 선에서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실천 규칙을 세워봤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작은 신념들을 시작점에 세우기로 했다. 아주 소소해서 책으로 기록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내본다.

 

첫 번째 플라스틱 빨대 쓰지 않기. 일주일에 플라스틱 빨대를 최소 3개 사용한다고 계산하면 일 년 동안 우리는 평균 240개의 빨대를 소비한다. 반대로 말하면 1년 동안 240개의 빨대를 줄이는 셈이다. 열 명이 함께한다면 2,400개, 백 명이면 24,000개다. 고작 빨대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큰 숫자가 아닌가. 더운 날 빨대로 쭉 빨아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이 그리울 때면 속으로 외친다. 나는 지금 고작 한 개의 빨대가 아니라 240개의 빨대를 줄이고 있는 거야! 라고 말이다.   


두 번째 장바구니 사용하기. 비닐봉지가 땅 속에서 완전히 분해되는 시간은 최대 1000년이라고 한다. 사람 수명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남겨두는 게 아닐까. 비닐 사용을 단박에 끊어내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일상 속에 녹아든 비닐을 셀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로 대체할 수 있는 순간들은 분명 있다. 우리 부부의 에코백과 차 안에 장바구니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비닐보다 튼튼하고 더 많은 식재료를 채울 수 있으며 디자인과 효율성을 선호하는 나라답게 사용하지 않을 때는 착착 접어서 수납이 가능한 다양한 장바구니 세계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장바구니 속에 담긴 물건들이 모두 비닐 포장되어 있다는 점. 무분별한 비닐 사용량으로 유명한 태국에서도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비닐대신 바나나 잎으로 식재료 포장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분 좋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언젠가 나의 장바구니에도 비닐 없이 신선한 식재료만 가득 담기는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마지막 세 번째의 노력은 최소한의 소비다. 친환경 기업의 물건을 후원하거나 건강한 상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소비의 결과를 등과 어깨로 온전히 겪어내야 했던 배낭여행자 시절, 최소한의 소비를 지향하며 내 삶의 취향을 깊게 고민하며 2년간 살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부족함은 물건이 아니라 대게 마음에서 들통 났다.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배낭 속에 담고 싶은 물건인가? 내가 짊어진다면 견딜 수 있는 무게인가?’ 물건의 쓰임에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쓰임의 주체가 내가 되어야한다. 그 중심만 잘 잡는다면 최소한의 소비가 가능하다.


나만의 작은 신념들을 꾸준히 지켜가고 있지만, 여전히 배달 음식을 좋아하고 비닐 포장된 빵을 구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은 양일지라도 우리 집 쓰레기의 양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속도로는 절대 제로 웨이스트가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지구파괴자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김한솔이입니다.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환경 일러스트 에세이 『적당히 불편하게』 기획 및 작가로 참여해 누구나 쉽게 공존 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는 마음에 대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요. 무겁지 않게 시작의 마음을 전하는 『적당히 불편하게』 도서가 교보문고 환경 도서 추천 및 싱글즈 매거진 환경 에세이 추천, 카페 꼼마 1월달 큐레이션 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 비거니즘, 공존, 동물 보호, 환경보호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책의 일부를 브런치를 통해 공개하려고 합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적당히 불편하게』

김한솔이·히조·요니킴·고양이다방·고센·메르시온 지음

키효북스 출판사


지구의 시간이 조금은 느려질 수 있도록 당신의 일상을 #적당히불편하게 내어주세요.

우리에겐 일상을 지키며 실천할 수 있는 하루가 필요해!

SNS를 뜨겁게 달군 6명의 일러스트 작가들이 전하는 지구를 지키는 일상 속 작은 실천들!

편리함에 속아 가끔씩 실패해도 괜찮아, 내일 조금씩 바꿔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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