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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영란은행 스테이블코인 규제안 발표

통화 안정성과 금융 혁신의 균형을 찾는 실험

by 꽃돼지 후니

2025년 11월,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 규제안을 공식 발표하며 새로운 금융 실험의 문을 열었다.

이는 단순히 암호자산 시장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중앙은행이 디지털 통화 생태계 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역사적 전환점”이라 평가된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금융 규제의 모범국이자, 글로벌 통화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의 확산, 그리고 미국과 홍콩의 현물 ETF 승인 등으로 디지털 자산이 제도권과 현실 경제에 깊이 스며들고 있다.

영란은행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정적 혁신(stable innovation)’이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즉, 금융안정과 기술혁신을 동시에 달성하는 새로운 통화정책 실험을 본격화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 규제의 핵심

영란은행의 규제안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핵심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준비자산 구성

시스템적 중요도를 갖는 발행자는 준비자산의 최대 60%를 단기 영국 국채(UK gilts)로 운용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암호자산 시장이 취약했던 ‘신뢰 기반’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발행사의 자산 안정성을 국채라는 공공 자산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미다.


2. 은행 예치 의무

나머지 최소 40%는 영란은행의 계좌에 ‘이자 없는 형태’로 예치해야 한다. 이는 대규모 환매 요구나 금융시장 불안정 시에도 즉각적인 상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실상 ‘중앙은행 디지털 백스탑(Backstop)’이다.
암호화폐 업계가 겪었던 USDC의 일시적 페깅 해제 사태, SVB 파산 등과 같은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3. 신규 진입자 예외 규정

새로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는 한시적으로 95%까지 단기 국채 운용을 허용, 초기 진입장벽을 낮췄다. 영국 정부는 이를 통해 혁신기업들이 제도권 안에서 실험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 역할을 부여했다.


4. 보유 한도 설정

개인은 스테이블코인당 최대 2만 파운드, 기업은 1,000만 파운드까지 보유 가능하다. 이는 시장 급팽창 시의 투기 과열을 방지하고, 점진적으로 제도화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완충장치다.


5. 감독 구조의 이원화

재무부(HMT)가 시스템적 스테이블코인을 지정하고, 영란은행이 건전성 감독을, FCA가 소비자 보호와 일반 발행사 관리를 맡는다. 이로써 발행·유통·소비자 보호가 분리된 ‘3중 감독 체계’가 구축되었다.


영국 영란은행.png 영국 외 다른나라 스테이블코인 관련 비교
한국과 영국의 차이.png 영국 VS 한국 스테이블코인 비교

정책의 배경과 의도

이 조치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금융 인프라의 새로운 실험 모델이다. 영란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미래 결제 인프라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간 발행이 금융안정에 미칠 잠재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통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1. 정책적 균형의 시도
영국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 논의와 병행해,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경쟁적 보완재’로 바라보고 있다. 즉,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지 않더라도, 민간의 혁신을 규제 틀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을 실험 중이다.


2. 시장 신뢰 확보
기존의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UST, LUNA) 붕괴 이후, 시장 신뢰 회복이 최대 과제였다. 영란은행은 준비자산을 국채와 중앙은행 계좌에 분산 예치함으로써, 사실상 중앙은행의 신용을 민간 디지털 자산의 담보로 확장시켰다.


3. 글로벌 경쟁 전략
영국은 홍콩·싱가포르와 함께 ‘규제 친화적 금융허브’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특히 미국 SEC의 느린 대응과 대비되는 신속한 제도화는, 런던 금융시장을 디지털 자산 중심지로 재편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시사점 — ‘안정’을 중심에 둔 새로운 패러다임

이번 영란은행의 결정은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비트코인의 그림자가 아니다”라는 선언이다. 그동안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의 중간 매개로만 쓰였지만, 이제는 제도권 금융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실질적 결제·저축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시사점이 있다.


1. 중앙은행-민간의 협력모델
영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민간의 창의성과 중앙은행의 안정성이 결합될 때, 금융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 규제의 글로벌 표준화
FCA와 영란은행의 공동 감독 모델은 향후 EU, 한국, 일본 등에서도 벤치마킹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준비자산의 ‘국채 60%+중앙은행 예치 40%’ 모델은 금융 안정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이상적인 비율로 평가받는다.


3. CBDC와의 조화
장기적으로 영국은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 파운드(CBDC)를 병행 운영하며, 서로 다른 기능과 시장 역할을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민간 혁신 기반의 빠른 서비스, 다른 하나는 공공 신뢰 기반의 통화 기능이다.


금융혁신의 중심으로 돌아온 영국

영란은행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21세기형 통화정책의 리셋 버튼이다.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신뢰를 지키려는 전략적 결단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핵심 인프라다. 그리고 영국은 그 출발점에서 “혁신과 안정의 공존”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앞으로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실험적 자산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의 표준 결제수단으로 진화할 것이다. 이 변화의 선두에는 여전히 — 런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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