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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근 Jul 19. 2024

지방대 교수의 하루(5)

금요일

금요일     


한 주의 마무리를 하는 금요일이다. 

아내를 ktx역에 태워다 주고 학교로 이동한다. 

금요일만큼은 마음이 여유로워 더 천천히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본다. 


정말이지 시대가 좋아져서 옛날엔 유학을 가야만 만날 수 있었던 석학들의 메시지를 방안에 앉아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어가 부족하면 자동생성 자막을 통해서 볼 수도 있고 돌려서 볼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찾아보면 해당 유튜브 주소 안에 들어있는 자막을 한 번에 자동으로 뽑아주는 프로그램도 나와 있다. 자막을 통해서 먼저 내용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 내용을 더 잘 알 수 있다. 


내가 배운 적 없는 공학 관련된 수업도 석학의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이제 공부 못하는 것은 오롯이 내 탓이 된다. 하물며 남의 전공 뿐 아니라 내 전공에서도 세계적 석학의 말과 글을 들을 수 있으니 참 좋아진 세상이기도 하고, 경쟁이 더욱 거세진 시대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강의도 몇 개 듣고, 게임 방송도 몇 개 보다 보면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오늘은 동료 교수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요즘은 대학에서 교수법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이 다룬다. 옛날에는 교수님이 불친절하게 가르치는 것이 멋이었고, 이렇게 가르쳐야 학생들이 스스로 궁부하는 법을 배운다고 했었다는데 시대가 참 많이 달라졌다. 나도 대학 학부 2학년 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7차 교육과정을 이수한 우리 학번은 수학 시간에 미적분을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통계 교과목에는 당연히 미적분이 등장했고 우리는 배운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노교수님은 대뜸 화를 내시며      


“내가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돼? 대학생쯤 됐으면 공부는 스스로 해!”     

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방학 때 스터디를 만들어 고등학교 과정에 있는 미적분을 공부하고, 부족하면 ebs를 보고 깜깜이 공부를 해가며 통계학 공부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에 그렇게 했다가는 에타(에브리타임이라는 대학생 커뮤니티)에 악플로 도배된다. 소문이라는 것이 점점 부풀려지기 마련이라 무서운 것인데, 실제로는 말 한마디 쏘아붙였을 뿐인데 나중에는 학생을 때렸다는 소문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니 무섭지 않겠나. 요즘 교수들은 서비스 마인드가 있어서 최대한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는 편이다. 서울의 학교들은 모르겠으나 지방에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그렇다. 


학교에서는 중간 강의평가를 한다. 보통 학기가 마치면 학생들이 학점을 보기 위해 교수들에 대한 강의평가를 하는데, 중간고사 전에 모니터링 차원에서 교원업적에는 반영되지 않는 중간 강의 평가를 한 번 더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들은 이 평가 내용을 바탕으로 수업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회의를 한다. 오늘 모임은 함께 식사를 하며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다.


시내에 있는 파스타 집에서 모여 앉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서로 속한 과는 다르지만, 학교에서 비슷한 업무를 많이 해서 친해진 사이들이다. 우리 학교에는 사범대가 없지만, 오늘 모인 교수님들은 모두 사범대 소속의 대학원을 나온 분들이다. 식사를 주문 하기에 앞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떤다. 오늘은 A교수님이 먼저 와 계신다. 교수님은 잘 지내셨냐는 안부 인사와 함께 타 학과들이 비협조적이라 힘들다는 말을 하신다.


박근혜 정권, 문재인 정권을 이어오며 대학 구조개혁 평가가 실시되었다. 대학 구조개혁 평가는 대학이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되었으며 교육부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못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여러 패널티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3년마다 변경되었는데 처음에는 교과 외 과정(비교과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이었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만 가지고 어떻게 좋은 학업적 성취를 보일 수 있냐는 것이다.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연계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학문과 실천이 동반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교수들은 ‘일단은 교과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키자.’고 이야기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다양한 평가를 거치며 점점 길들여져 갔다. 두 번째 평가에서는 대학의 교육과정을 걸고 넘어졌다. 대학의 교육과정이 너무 자기네들 마음대로 편성되었다는 것이다. 표준의 교육과정을 만들고 대학별로 그렇게 만든 이유를 설명하라는 내용이 평가에 포함되었다. 학과는 교육과정을 개편할 때 여러 위원회를 거쳐서 이유를 설명하고 교과목을 개폐강 한다. 하지만 그런 절차들을 더 세분화하고 지침을 따르라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었다.


A교수님은 이 학과별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센터를 맡아서 운영하고 계셨다. 학과의 교육과정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교수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논리적으로 말하고 글쓰는 것이 훈련된 사람들이고, 본인의 전공에 있어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 교육과정은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이렇게 고치라.’고 하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A교수님은 이런 어려운 업무를 하시며 여러 학과 교수님들을 찾아 뵙고 읍소하고 협조를 구하는 일을 하셨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나도 맞장구치며 학과 교수님들이 상대적으로 이런 평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보니 필요성에 대해서 잘 인식을 못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B교수님이 들어오셨다. 


B교수님은 내가 속한 대학의 학장님이시다. 세련미, 엘레강스함을 갖춘 분이랄까. 옷도 잘 입으시고 멋지게 꾸미신다. 교수님도 반갑게 인사하시며 잘 지냈느냐고 너무 오랜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학장으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셨다. 교무위원이기에 학교 전반의 내용을 가이드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총장님 예하 리더십의 방향과 교육부에서 나오는 지침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다. 진짜로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적절한가 고민하는 역할을 맡으신 것인데 옆에서 봐도 보통일이 아니다.


조금 늦게 C교수님이 도착하셨다. C교수님은 이 모임의 호스트셨다. 나와 임용 동기이시고, 연구실도 내 옆 방을 쓰시는 교수님이시다. 음식을 시키고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학생들에 대한 동향을 나누고 본인 강의에서 잘한 점과 고칠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 중간 강의평가 점수는 무려.. 모두 만점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한 번도 이런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뚝배기 류의 유머를 사용한 것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 모인 교수님들 중 내가 나이가 제일 어리므로 MZ어 강의를 해드렸다. 교수님들이 듣고 좋아했던 단어는 ‘담당 일진’이었다. ‘이건 배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에이 뭐 어때 다 어른들인데...’ 하며 넘어간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눈다. 요즘 교육계에선 어떤 트렌드가 있는지, 어떤 이론이 유행하는지, 어떤 교수님이 핫한지 이야기 나눈다. 나도 뭔가 한 마디 거들고 싶은데 내가 아는 이야기는 안 나온다. 조용히 듣고 나중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는 척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쓰는 논문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야기 나누고 남은 차를 마시고 헤어진다.


연구실에 돌아가서 느긋하게 책도 보고 신문도 본다. 사실 유튜브를 더 많이 본다. 요즘은 프로게이머들이 아프리카tv로 진출해서 시청자들의 돈으로 스폰서 게임을 하고 경기가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좋아하는 선수의 경기만 볼 수 있어서 재밌다. 보통 하루에 한 두판 정도가 올라오는데 보는 재미가 있다. 히히덕 거리며 연구실에서 혼자 놀다 보니 네시 반이다. 이제 집으로 간다. 


집에 가서 밀린 집안일을 한다. 분리수거를 하고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고 세탁을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아내를 태우러 역사에 간다. 아내를 만나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닭갈비다. 지중해 마을에서 닭갈비를 먹고 음료를 한 잔 마시고 잠시 쉰다. 저녁 여덟시 반이다. 오늘은 저녁 아홉시에 테니스 레슨이 있는 날이다. 아내는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못 가겠다며 누워서 핸드폰을 한다. 나는 누워서 핸드폰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테니스 칠 힘이 있는 것이라며 아내를 깨운다. 아내는 잠깐만 쉰다고 하며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잠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애쓴다. 결국 아내가 잠들었다. 나는 갖은 수를 써서 아내를 깨운다. 결국 화가 난 아내를 모시고 테니스를 치러 간다. 


오늘은 발리 수업이다. 벌써 발리 수업만 몇 번째인지 모르는데 아직도 어설프다. 제자리에 서서 칠 때는 스텝이 제대로 됐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그냥 달려나가며 치니 스텝이 안 된다. 엉망 진창이다. 공은 원하는 곳으로 안 나가고.. 그래도 코치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재밌게 배운다. 아내와 복식을 칠 수 있는 날이 있겠지 기대 해본다. 


레슨을 마치고 나오니 아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래도 운동 하니까 개운하다.”고 이야기한다. 테니스장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씩을 사들고 집으로 온다. 티비에서는 우리의 애청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가 나온다. 아내는 이장우 배우님의 팬이다. 저렇게 잘 먹는데, 잘생기기까지 했다니 너무 좋단다. 낄낄거리면서 티비를 보고 웹툰을 보고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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