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welcome)일까, 환영(ghost)일까?
‘비혼 뒤 맑음’이라는 제목으로 학내 교지 기사를 쓰며 비혼주의자를 인터뷰하러 다니던 내가, 당장 다음 주에 웨딩드레스를 맞추러 간다.
여느 때처럼 해가 드는 오후께 집에서 밥을 해 먹고 나는 수업 준비를, 짝꿍은 나무로 무언가를 만들던 날이었을 것이다. 근처에 아담한 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들렀다가 그 터가 쏙 마음에 들어 버렸다. 우리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 오래된 집을, 오래도록 고쳐 살며 지내보기로 했다.
그런데 둘이 같이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한국의 여느 부모님들 세계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거라는 말은 결혼과 ‘결혼’한 낱말이었다. 10년만 젊었어도 나는 엄마 아빠에게 머리에 든 온갖 사상들(근대 국가의 허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온갖 제도 등)을 폭탄처럼 펑-펑- 터뜨렸을 것이다. 마치 독립투사처럼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는 심정으로, “결혼은 안 해!”라며 문을 쾅 닫고 나왔겠지.
그런데 내 이빨이 헐거워져 버린 걸까? (아니 벌써?)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하게?”라는 무심한 엄마의 말에 “음, 내년 봄에나 해야 하지 않을까? 따뜻해야 하지~”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 순간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처럼, 여러 번 반복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내게 가장 어려운 숙제다. 그 숙제 뭉치는 내가 만든 세계로 날아와 퍽- 퍽- 떨어졌다.(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끙끙대며 치워보고 태워보고 밟아보았지만 말끔히 없앨 수는 없었다. 하다하다 지쳐 나는 작은 방을 만들어 들어갔다. 숙제는 저 바깥에 두고 푸욱 쉬고 놀고 일했다. 그러나 숙제는 숙제다. 못 본 척해도 해결해야하는 것이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굴어도 아무 일이 없어지진 않는다.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는 나와 볼까? 더 넓은 세계가 저 바깥에 있는데...
나에게만 주어진 숙제를 풀어보고 싶어졌다. 그 때, 잠자고 있던 용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웅크린 몸을 꿈틀대며 깨어났다.(너는 또 언제부터 거기 있었니?) 용기를 데리고 나는 그토록 거부하던 한국 사회의 결혼 제도, 의례, 자본, 행사라는 터널을 지나가보기로 했다. 어제의 환영(ghost)을 오늘의 환영(welcome)으로 바꾸려면 마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말자고 마음을 바꿔봤다. 지팡이는 유연하게 휘둘러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