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끼니
_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치과를 다녀오는 점심 무렵 엄마가 우리 형제에게 "뭐가 먹고 싶니?"라고 물었다. 형의 대답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대답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파트 상가 3층 경양식집, 이름도 근사한 '카펜터'. 나는 그곳을 원했다. 거기에는 '정식'이라는 메뉴가 있었다. '정'과 '식', 이 두 글자가 당시 내게는 그렇게 설레는 말로 들렸다.
보통 내가 알던 메뉴는 '돈가스' '라면' '된장찌개'처럼 음식 이름 자체가 메뉴가 되는 게 규칙인데 '정식'이라니. 당시에는 그게 참 얼마나 멋지고 고급스럽게 생각됐는지 모른다. 게다가 카펜터의 정식은 좀 더 특별했다. 육향 가득 부드럽게 씹히는 함박스테이크부터 대합이 들어가 해산물의 감칠맛과 치즈가 조화를 이룬 그라탱에 타르타르소스로 뒤덮인 생선가스까지. 제법 훌륭한 요리들이 넓은 접시 위에 펼쳐진다. 너무나 호사스러운 한 끼. 9살 어린 아이가 여길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_하지만 결과는 2대 1이었다. 엄마는 카펜터보다 형이 말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메뉴가 좋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한 어리고 연약한 작은 소년(이라고 쓰고 사실 나)을 외면했다. 내 작은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 다수결은 간단하고 냉정했다. 두 사람의 희망에 나는 원할 리 없는 걸음을 옮겨야 했다. 만약 엄마와 1대 1이었다면 졸랐겠지만 형까지 엄마 쪽에 있으니 막내가 별 수 있나.
_그때 엄마가 문득 말했다. 그것도 너무나 다정한 목소리로.
"내일이면 영준이 생일이네?"
'맞아, 내 생일이잖아 이 멍청아!’ 나는 바보처럼 잊고 있었다. 오늘은 8월 3일. 내일은 8월 4일! 바로 내 생일이라는 걸. 엄마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저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만 울음이 터졌다.
'내일이 내 생일이니까 오늘은 내가 고르면 안 돼?'라고 말했더라면 우리는 카펜터로 갔을 텐데!
그럼 나는 접시 위로 얇게 핀 밥과 버터향이 진동하는 따끈한 모닝빵 중 하나를 고르는 왕이 될 수 있었는데! 접시 위 축제 같은 경양식집 '정식'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_너무나 바보 같은 나라서 서러웠다. 걸음을 멈춰서 정말 펑펑 울었다. 두 사람은 우는 나를 보고 놀라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고작 그거 때문에 우는 내가 창피했고 너무나 바보라서 최고의 승부수를 쓰지도 못한, 아니 생각조차도 떠올리지 못한 내가 머저리 같았다. 게다가 저 말을 꺼내 동정표를 얻어 카펜터에 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제때 꺼내지 못한 한마디. 자신의 생일도 기억 못한 내 패착이었다.
_시간이 흘러 우리 집은 요식업을 시작했고 여의도에서 점심에 경양식, 그것도 돈가스를 팔게 됐다. 아이러니했다. 한때 그토록 가고 싶었던 그 가게에서 팔던 음식을 이제는 직접 만들어 파는 일이 되었으니까(비록 ‘정식’은 아니었지만).
대학생이던 나는 종종 가게에 나가 도왔다. 어릴 때 내가 놓쳤던 그 순간들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게 됐다. 점심시간이면 으레 몰려오는 직장인들. ‘돈가스 하나요.’ 그 주문을 받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카펜터에 가고 싶어 했던 그 마음. 이제 나는 그때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 줄 접시를 채우는 자리에 있었다.
처음엔 완벽한 한 끼를 주려고 부단히도 애썼다. 돈가스의 자리나 마카로니의 위치, 콘샐러드가 놓여질 이상적인 균형까지. 접시 위에 얹어지는 모든 음식이 어울릴 자리와 요리 타이밍을 맞추려 하고 모든 음식이 똑같은 온도로 나가길 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건 조금 식고 어떤 건 너무 뜨겁고 어떤 건 소스가 흘러넘쳐 옆에 닿기 십상이었다. 접시 안은 내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_그런 내 모습이 영 마뜩잖았다. 정말 최선의 한 접시를 주고 싶은 마음이 마음으로 그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런데 손님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아마도 모든 접시를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조금 식은 돈가스도 너무 뜨거운 스프도 옆자리를 살짝 침범한 샐러드 소스도 그냥 맛있게 먹었다.
그때 내가 너무 유난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크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나이가 들수록 삶도 경양식집에서 파는 여러 음식의 접시. 그 플레이팅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접시에는 공부할 때, 사랑할 때, 일할 때, 쉴 때. 각각 나름의 타이밍이 있다.
_완벽하게 맞추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어긋나는 순간들이 생긴다. 취업은 늦어질 수 있고 사랑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계획했던 것보다 일찍 지쳐버리거나 준비가 덜 된 채로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내가 계획했던 시간이 늘어져 다른 시작을 밀어내도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것 또한 새롭게 달라진 내 인생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한데 모인 경양식 접시 속 음식처럼 말이다. 세상 사는 건 그렇게 딱딱 떨어지지 않는 게 보통이다. 식어도 좋고 조금은 타도 괜찮다.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니까. 그저 곁에 있으면 좋다. 조금 식은 튀김은 뜨거운 밥에 먹으면 되고 조금 탄 부분은 그 위로 소스를 흠뻑 부으면 누구도 모른다. 부족함이 있어도 여전히 한 접시의 구성원이다. 함께 있어라.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노력하느라 애쓰는 것들이다.
_카펜터에 가지 못했던 그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한마디를 놓친다. 여전히 틀리고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도 누군가의 옆에 있는 나를 조금은 봐줬으면 좋겠다. 경양식 접시 위에 올려진 그것들처럼.
_사람들은 종종 ‘때가 되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때는 완벽하게 오지 않는다. 경양식집 접시처럼 늘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중요한 건 모자람이 있다고 접시를 모두 치우지 않고 포기 없이 새로 완성할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있다. 경계해야 할 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태도다.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늦고 서툴고 준비가 부족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서투르더라도 노력하는 편이 낫다.
_어릴 적 그 울음 이후로 나는 내 순간들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말하고 싶을 때 용기를 내어 말하려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늦더라도 시작하려 노력했다. 물론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다. 놓치는 순간들이 있고 늦어서 아쉬웠던 선택들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보다는 나아졌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만 하지는 않게 되었다.
_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을 수는 없지만 각자 나름대로 노력하면 결국 결과를 납득하게 된다. 항상 내게 좋은 결과만 있을 리는 없다.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니까. 조금 바라던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은 여유를 찾는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늦더라도 때로는 서투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_오늘도 경양식집 주방이 분주히 돌아간다. 완벽하지 않은 타이밍들이 모여 하나의 접시를 만들어낸다. 조금 식은 것도 너무 뜨거운 것도 함께 어우러져. 접시를 받아든 누군가는 어떤 메뉴부터 어디서부터 먹을지 잠시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선물이다. 한 접시 안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순서를 정할 수 있는 즐거움. 인생도 그런 거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을 못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자책할 거 없다. 살면서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고 우리가 살아갈 하루는 꽤나 자주 돌아오니까. 그때 또 시작하면 될 일이다.
_나는 이제 안다. 그날 카펜터에 가지 못한 것이 실패가 아니었다는 것을. 놓친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시간에 다른 사람을 통해 돌아온다. 경양식 접시처럼 완벽하지 않은 채로. 하지만 그래서 더욱 따뜻하게. 기억에 남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