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렛이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싱글렛, 싱글렛.... 이름도 참 특이하다. 피글렛도 아니고 오믈렛도 아니고 싱글렛이다.
내가 싱글렛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마라톤 대회 참가 후 소매 없는 나시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나서다. 나도 대회 나갈 때 저런 옷을 입어야 하나 궁금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게 바로 싱글렛이라 불리는 옷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라톤 대회에서 선수들이 입는 소매 없는 그 나시가 <싱글렛>이다.
마라톤에, 러닝에 관심이 없을 때는 그냥 운동할 때 입는 나시 정도, 팔이 없는 옷 정도로 여겼었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면 마라톤 싱글렛은 보통 등이 꽤 많이 파져 있다. 그리고 대회에 나가보면 이상하게 형광녹색, 형광노랑, 형광주황 등 알록달록한 색상이 많이 보인다. 아, 저런 야시시한 옷을, 저런 색상의 옷을 어떻게 입고 뛰지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덧 나도 형광색 싱글렛을 입고 뛰고 있다.
올여름이 시작될 즈음에, 반팔을 입고 뛰는데 더워도 너무 더웠다. 뛰면서 팔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뛰니 그나마 조금은 더 시원한 느낌이었다. 팔에 바람이 닿는 느낌이 옷소매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천지차이랄까? 그런데 팔을 계속 앞뒤로 움직이니 걷어올린 옷소매는 버퍼링 없이 실시간으로 계속 다시 제자리로 내려왔다. 올리고, 올리고, 또 올리고.. 어디 한쪽뿐인가.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결국, 고민 끝에 나도 싱글렛을 샀다. 내가 몸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과연 등이 파여도 너무 파여 파이지 않은 남은 천 쪼가리 너비가 10cm 정도밖에 안 되는 싱글렛을 입어도 될까라는 고민을 좀 했지만, 결국 샀다. <Form follows fuction>이라고 했던가. 모든 디자인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마라톤 싱글렛이 유독 등이 많이 파인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달리기에 최적화된 디자인이라고나 할까? 결국, 등이 심하게 파인 싱글렛과 일반적인 농구복 스타일의 무난한 싱글렛이랑 2개를 샀고 지금도 번갈아서 입고 러닝을 하고 있다.
이게 처음에만 좀 어색하고 부끄럽지, 한 번 입으니까 계속 입게 된다. 비유를 하자면 스마트워치랑 비슷한 것 같다. 딱히 큰 기능도 없고, 없어도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지만, 한 번 워치를 차면, 없으면 불편하고 그런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싱글렛을 안 입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입어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더운데 내가 그동안 반팔 입고 어떻게 뛰었지?>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팔도 시원하고 등도 아주 시원하다. 등이 파여있어서, 등의 땀이 셔츠에 축축하게 젖지도 않아서 느낌도 더 상쾌하다. 처음 입을 때는 남들의 시선이 좀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뛰고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존잘, 존멋도 아니지 않은가.
싱글렛 얘기를 쓰다 보니, 얼마 전 장인장모님이 사다 주신 러닝 반바지가 생각난다. 여행 중에 사위 선물로 러닝 반바지를 사다 주셨는데, 5인치라는데 너무 짧은 거 아니냐며 와이프에게 카톡을 보내셨었다. 와이프가 내게 지금 입는 바지가 몇 인치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반바지가 바로 5인치다.
안 그래도 싱글렛도 입는 마당에, 나도 3인치 쇼츠에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다.
3인치 쇼츠를 입으면 지금보다 더 시원할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더우면 싱글렛 입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