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마라톤 대회 풀코스 2개를 신청한 사람이 바로 나다.
사실, 마라톤 풀코스는 나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전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나는 아직은 준비가 안되었고, 아직은 먼 그런 얘기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4월에 있었던 <여명808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풀코스 도전은 나에게 먼 하늘의 뜬구름 같은 존재에서, 손 닿으면 잡힐 것 같은 그런 거리에 있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명808 국제 마라톤 대회>는 5km, 10km, 하프 코스, 풀코스가 있었는데, 큰 규모의 대회가 아니라 도로를 통제하는 대회는 아니었다. 한강변의 산책로, 자전거길을 뛰는 대회였고 하프코스를 기준으로 5km, 10km는 좀 더 짧게, 풀코스는 하프코스를 2번 왕복하는 루트였다. 나는 이 대회에 처음으로 하프코스에 출전했고, 하프코스를 뛰면서 처음으로 42.195km를 뛰는 풀타임 코스 러너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다른 큰 대회는 보통 풀코스가 먼저 출발하고, 하프코스와 코스가 다른 경우가 많아 풀타임 러너들을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생전 처음으로 풀코스를 뛰고 있는 사람들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나도 같이 뛰면서 말이다.
반환점을 도는 전후부터 풀코스 러너들을 마주쳤는데, 역시 선두그룹은 신체의 아우라나 뛰는 자세등이 거의 선수급이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정말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뛰는 페이스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자세도 그렇게 전문가들처럼 느껴지지 않는 분들도 계셨다.
하프 마라톤 대회에 처음 출전했던 나는 전에 혼자 연습했던 기록보다 기록이 더 잘 나와서 PB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다행히 큰 부상도 없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하프코스도 부상 없이 좋은 기록으로 완주했고, 평범한 사람들도 풀코스를 뛰고 있는 것을 보니, 묘하게 나도 풀코스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에 와서 몇 날며칠을 풀코스 마라톤 대회 일정을 아이폰으로 검색을 했다. 그때가 벌써 4월 말이었으니, 웬만한 상반기 대회들은 이미 접수 마감이었고, 하반기 대회들은 아직 접수 중이거나 접수 시작 전이었다.
나의 훈련 준비기간과 대회 장소등을 고려해 본 결과 <춘천마라톤대회>와 <공주백제마라톤대회>가 나의 위시리스트에 올랐다. 공주백제마라톤 대회는 접수 중이었고, 춘천마라톤대회는 아직 접수 시작 전이었다. 가을의 전설이라 불리는 메이저 대회 춘천마라톤대회가 사실 좀 더 마음에 끌려서, 일단 춘천마라톤 대회 접수 시작하면,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2024년 6월 26일 두둥
춘천마라톤 대회 접수가 시작되었다. 요즘 러닝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우주까지 찌를 기세라, 금방 마감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나 10-20분 사이에 마감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인기여도, 10km가 더 수요가 많지, 풀코스 신청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접수 시작시간이 지나고 20분 정도 후에 사이트에 접속해서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사이트가 버벅거렸다. 사이트에 정보 입력하고 클릭할 때마다 로딩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신청을 완료했다. 참가비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카드사로부터 결제 완료 문자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컴퓨터 화면에 갑자기 <결제 실패>라고 팝업창이 뜨는 것 아닌가?
SNS를 들어가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엄청 많았는지 여기저기서 욕을 하고 난리가 났다. 메이저대회에서 결제완료 창이 떴는데 결제실패가 뜨는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말이다. 나도 급한 마음에 주최 측에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도 받지 않는다. 조심스레, 참가 신청 조회를 눌러봤는데 조회가 되질 않는다. 몇 분 후 춘천마라톤 인스타그램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풀코스 접수 마감>이라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아 완전 새됐네..
풀코스 마라톤 도전에 대한 의욕이 하늘을 찌르던 시점에, 생각지도 못한 마라톤 대회 접수 실패라니...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이러다가 나의 위시리스트 2번에 있는 <공주백제마라톤>도 마감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공주백제마라톤 신청을 완료했다. 춘천마라톤 대회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의 대회이다 보니, 접수 마감은 되지 않았고, 다행히 성공적으로 접수를 마쳤다.
그렇게 춘천마라톤 대회로 빡친 마음을 공주백제마라톤으로 위안 삼고, 며칠이 지났는데, 춘천마라톤대회 사이트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나처럼 결제 완료 문자를 받았으나, 결제취소가 된 사람들을 구제해 주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즉, 마라톤 참가를 받아주겠다는 소리였다. 이걸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난데없이 9월 말에 공주백제 마라톤 대회, 10월 말에 춘천마라톤대회 2개나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난생처음인 풀코스를 말이다.
공주백제 마라톤을 취소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보통 풀코스 마라톤 한 달 전쯤에 LSD 35km 정도는 뛰어준다던데, 모의고사 느낌으로 공주백제 마라톤 대회도 나가고, 춘천마라톤도 나가기로 결정했다. 2-3주도 아니고 한 달이면 충분히 풀코스 2번 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풀코스 완주할 수 있을까?
호기롭게 대회를 2개나 신청했고, 완주는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었는데 어느덧 풀코스 첫 도전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나는 풀코스 전에 꼭 해봐야 한다는 35km도 뛰지 못했고, 고작 30km를 한 번 뛰어봤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고, 그날 왼쪽 셋째 발가락 발톱 밑에 피멍도 들었다.
솔직히 말해, 러닝 하면서 스트레스를 이렇게 많이 받아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적당한 텐션과 스트레스는 동기부여도 되고, 도전의식도 고양시키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나는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내일이 마라톤 대회였으면 좋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얼른 뛰고 싶다. 풀.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