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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버헨리 Sep 24. 2024

마라톤이 인생이었다

마치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 기분으로 몇 주를 보내고, 드디어 첫 풀코스 마라톤 대회를 무사히 마쳤다.


 <2024년 9월 22일 공주백제 마라톤 대회 풀코스 무사완주>


누구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선물 같은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사실, 대회 준비기간부터, 마라톤 대회 전날, 당일 아침 그리고 대회도중 경험했던 순간순간, 그리고 그 느낌들을 글로 쓰자면 책 한 권도 모자랄 것 같다. 그만큼 노력도 많이 했고,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라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는다.


그동안, 10km, 하프 마라톤 대회는 나가봤어도 풀코스 마라톤은 처음이라 그 긴장감은 정말 대단했다. 그전까지는 대회 거리만큼 여러 번 뛰고 나갔지만, 이번 풀코스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거리(연습 때 최장거리는 35km)를 뛴다는 것이 더욱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어쭙잖게 유튜브와 블로그를 찾아보며, 일주일 전부터 부산을 떨며 카보로딩이라는 것도 따라 해보고, 테이퍼링(대회 일주일 전 훈련량을 줄이는 것)도 해 보았다.


첫 풀코스 대회이기도 하고, 첫 지방 원정이기도 해서, 하루 전날 버스로 이동해서 숙소에서 자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풀코스 뛰고 다시 운전해서 서울로 올라올 자신도 없었고, 새벽같이 당일에 내려가서 제대로 뛸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간단히 몸을 풀고 특별한 이슈없이 무난하게 출발선에서 뛰기 시작했다. 첫 2.5km 구간즈음에 터널이 나왔는데, 여느 대회처럼 터널에서 <파이팅>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진짜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말이다. 처음 듣는 파이팅 소리도 아닌데, 그 파이팅 소리가 마치 달리기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나의 고단한 삶을 응원하는 파이팅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며 거리를 늘려가며 늦은 새벽까지 미친놈처럼 뛰었던 지난 시간들도 생각이 났고, 여전히 버티는 삶을 힘들게 살고 있는 내 인생도 문뜩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가, 정말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나의 인생을 응원하는 소리로 감정이 이입되어 정말 울컥했다. <그래, 나 잘 버티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첫 풀코스 대회에서 피니쉬라인에서 울컥한다던데, 나는 뛰기 시작하면서부터 울컥했고, 그 후 중간중간 파이팅 소리를 들을 때 몇 번 더 울컥했다.


10km, 하프 마라톤이 단편 영화라면, 42.195km는 마치 2시간짜리 장편 영화 같았다. 다들 3-4시간 뛰면 지겹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첫 대회라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경치를 즐길 여유는 없었지만, 함께 뛰는 러너들, 자원 봉사자분들은 똑똑히 보았고, 그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무사히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정말 함께라면 더 오래 뛸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동안 대회에서 5km, 10km를 유모차 끌면서 뛰는 러너들은 간혹 봤는데, 이번에는 하프 마라톤을 뛰는 러너를 봤다. 하프 코스면 분명 나보다 늦게 출발했을 텐데 내 옆을 지나간 것을 보면, 꽤 빠른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와 러너를 응원해 주었고, 그 러너분은 마치 조깅하듯 웃으면서 대회를 즐기고 계셨다.


그 외에도, 휠체어에 아들을 앉히고 뛰는 나이 지긋하신 아버지 러너분도 보았고,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계속 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중에는 고령으로 보이는 분들도 꽤 보였고 그들을 보면서 인생이 마라톤이 아니라 마라톤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저마다의 뛰는 이유나 사연이 있을 것이며, 힘든 상황에서도 도전하는 자세,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각자 마주치면 파이팅을 외쳐주고 다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 이게 인생이고 사람 사는 우리네 삶이 아니겠는가. 완주를 했는지, 아닌지, 기록이 어떤지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도전하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니까 말이다. 그냥 대회 때 달리는 순간순간, 같이 뛰던 사람들,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함께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와 같이 뛰는 모습일 뿐이지만, 그 이면에는 모두 나처럼 지난 몇 달 동안 오로지 이 대회를 위해 부단히 연습하고 땀 흘린 모습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또 한 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파이팅을 굳이 외치지 않아도 다른 러너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힘이 났고,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뛰고 있는데 20km 넘어서니 걷는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30km를 넘어가니 많은 분들이 걷다가 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도 걷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들었으나,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 이외에 다른 부상 이슈는 없었으므로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다만, 20km 이전에는 급수대에서 뛰면서 물을 마셨는데 20km 이후에는 매 급수대마다 걸으면서 물을 두세 잔씩 마셨다. 그렇게 급수대마다 걷고 있으니, 따로 또 걸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쉬지 않고 달려서, 42.195km를 큰 부상 없이  4시간 7분에 완주를 했다. 내 앞뒤로 다른 러너들이 없이 나 혼자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는데, 사회자분이 마이크로 내 이름을 불러 주었고, 나는 마지막에 <아악~> 괴성을 지르며 손을 번쩍 들고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일이 정말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깨달았다. 기록이나 완주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우리가 선수도 아니지 않은가? 좋아서 뛰고, 건강해지려고 뛰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빨리 뛴다고 더 행복하거나 더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조금 더 성취감은 느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냥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뛰어서 위로받고 응원하는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일이 대회 참가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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