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가 아니다.
자도를 아십니까?
여기서 자도란 자전거 도로의 준말이다. 나도 사실 몰랐는데, 러닝 커뮤니티 게시판에 가서 이 말을 알게 되었다. 보통 자전거 도로라 하면 동네 천변 산책로에 있는 그 자전거 도로를 말한다. 산책로 바닥 중간즈음에 선이 하나 그어져 있어 한쪽은, 보행로, 다른 한쪽은 자전거 도로 이런 식이다.
평상시에는 자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얼마 전 개천절에 러닝을 하러 동네 천변에 나갔는데 마라톤 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대회 진행 방향 반대 방향에서 뛰고 있었고, 처음에는 맞은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점점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거의 내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대회 참가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자, 상상을 해보자. 동네 천변의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의 폭은 보통 2-3m 내외일 것이며, 그중 절반인 1~1.5m 정도는 산책로, 나머지 반은 자전거 도로이다. 그런데 이 대회 참가자들이 산책로뿐만 아니라 자전거 도로까지 점령해서 우르르 단체로 뛰고 있다. 마치 625 때 인해전술로 중공군이 남하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물론 중간중간 안전 요원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자전거나 다른 산책, 러닝 하는 일반인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나도 반대방향에서 한쪽 끝으로 쭈구리처럼 계속 뛰었는데 나를 마주 보고 반대 방향에서 뛰어오는 대회 참가자들은 나를 보고 비켜갔지만, 바로 그 뒤에 따라오는 대회 참가자들은 나를 보지 못하고 그 비켜진 공간이 자기가 치고 나갈 공간이라 생각하고 옆으로 훅 치고 나왔다. 그래서 두세 번 대회 참가자들과 어깨를 스치듯 부딪혔으며, 급기야 마지막에 부딪힌 분은 그분 몸의 반, 나의 몸의 반이 정통으로 부딪쳐서 나는 결국 나의 그날 러닝을 그만두었다. 내가 반대방향에서 러닝을 하고 있었지만 나를 제지하는 진행요원은 전혀 없었으며, 그들이 나를 못 본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그들에게 그럴 권리도 없다.
내가 사실 좀 삐딱하고 똘기가 있는 사람이라, 서울시 다산콜센터 120으로 문자를 보냈다.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를 통제하지 않고 이렇게 대회를 하는 게 맞는 거냐, 통제되지 않은 자전거 도로에서 사람들이 뛰는 게 맞는 거냐, 너무 위험하다, 장소를 옮기든 도로를 통제하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문자를 보냈다. 물론 마지막에 내가 이런 말한다고 안 바뀔 건 알지만 그래도 보낸다라고 덧붙였다.
며칠 후 답변이 왔다. 역시나 예상 그대로의 답변이었다. 안전사고에 더욱 유의하고, 안전 요원을 더 배치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이다. 산책로를 폐쇄하고 대회를 치르거나, 장소를 옮길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 마라톤 대회도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그렇게 치러왔고, 대부분의 다른 중소규모의 마라톤 대회들도 비슷한 실정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통제가 되지 않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함께 있는 주로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2번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는 참가자의 입장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반대로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대회를 바라보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도로가 통제되지 않았으므로, 다른 라이더, 산책하는 사람, 러닝 하는 사람이 당연히 이용할 수 있는 것이고 마라톤 참가자를 배려할 수는 있지만, 그건 권리가 아니다.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대회 참가자의 문제가 아니라 주최 측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통제하는 메이저 대회들은 보통 참가비가 다른 중소대회들보다 조금 비싸다. 그 이유는 도로를 통제하는데 비용을 따로 각 지자체에 내기 때문이라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물론 팩트체크까지는 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천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폐쇄할 수 있는지 아닌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공간 특성상 폐쇄가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통제되지 않은 산책로뿐만 아니라 자전거도로까지 우르르 뛰는 게 맞는 건가 싶다. 여럿이서 같이 무단횡단한다고 무단횡단이 아닌 게 아닌 것처럼, 자전거도로는 사람이 가는 길이 애초에 아닌 것이다. 통제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해결 방법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자도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참가하는 분들은, 조심해서 뛰시기 바란다. 내 앞에 옆에 공간이 있다고 추월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그 앞에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