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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금요일 Feb 11. 2019

제주에서, 사소한 삶 - 1

날씨, 쓰다.


그해, 내도록 몸살을 앓았다. 병증의 원인은 너무나 낮게 가라앉은 하늘이었다. 구름이 짙었고, 짙고 무거운 구름들은 빠르게 머리 위로 흘러 지나갔고, 해가 없었다. 그래서 내내 우울하였다. 마당에는 바람이 많았다. 켜켜이 쌓인 바람들이 한 순간에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치며 들고 일이나 휘휘 나뭇잎을 흔들어댔다. 오후 내내 나뭇잎들이 바람과 벌이는 전쟁의 광포한 소리들을 들었다. 그런 날들이 며칠씩 이어졌다.


나의 안부를 묻는 이들은 이곳의 날씨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천상의 섬에서 나는 날마다 창백해졌다. 해는 가끔씩만 빛났다. 옷깃을 아무리 여며도 모든 체세포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 숨이 다시 바람이 되어 나에게로 몰아쳤다. 추웠다. 봄이었다. 봄의 한가운데를 시리게 지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온몸의 근육이 자근자근 아파왔다. 어느 밤에는 옆에서 자고 있던 그를 깨웠다. 너무 추워. 열이 펄펄 끓고 있는데, 추웠다.


표피는 뜨겁고, 피하는 차가운, 그 온도차를 고스란히 겪어내야 하는 것이 바로 몸살이다. 그 차이를 앓느라 모든 근육이 무력하게 스러져서는 패잔병처럼 통증만 매달고 있었다.


한밤에 응급실을 찾아 택시를 잡아타려는데, 그대로 부서져 어둠속으로 흩어져버리고만 싶었다. 나는 이유 없이 아팠다. 아니다. 나는 하늘 때문에 아팠고, 나는 바람 때문에 아팠고, 나는 구름 때문에 아팠다. 모든 것이 원인이 되어 나는 아팠다.


여기, 이곳은, 나의 고향이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게 많지 않으나, 내가 이곳에서 나고 열두 해를 살았다는 나의 역사성은 이곳을 고향이라고 호명해도 좋을, 차고 넘치는 명분이었다. 하필이면 나는,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떠났던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흐릿한 기억들, 퇴색된 추억들, 그런 것들이 돌부리에 채이듯 불쑥불쑥 나타났다.


그땐 어린 내가 있었고, 그땐 저렇게 삐죽 솟아오른 것들이 없었지. 내가 여기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던 것 같아. 왜냐하면 엄청난 비탈이었거든. 그런데 이런 건 비탈이라고 부를 수가 없겠구나. 이토록 완만한 경사라니. 고작 이 정도의 경사에서도 속도 조절에 서툴 만큼 내가 어렸구나. 저기 저 놀이터는 없었는데. 여기 이 모퉁이 집은, 그래, 그때도 있었어.


그렇지만 없는 것들이 비할 수 없이 많았다. 가령, 나의 친구들. 그들은 여기에 없다. 엄마의 먼 혈족들. 그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이곳에서 나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함께했던 나의 외할머니. 그녀는 나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던 해에 아예 하늘에까지 닿아버렸다. 이곳에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있지만, 그들 외에도 더 있었으면 좋았을 무엇들이, 몽땅 없었다. 열두 해를 이곳에서 살다가 이십 오년을 떠나 있었더니, 그렇게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나를 이제는 육지 것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나를 제주 토박이라고 했다. 전자는 토박이들의 말이었고, 후자는 이주민들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이런 거다.
너는 우리가 아니야.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나를 아낌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양다리를 걸친 바람둥이 같았다. 괜찮았다. 나는 그걸 핑계 삼아 이방인의 트렌치코트를 걸쳐 입고 목덜미까지 깃을 바짝 세웠다. 그래도 제주의 바람을 막을 수 없어, 나는 아팠다.



나는 어쨌든 제주에서 살아야 한다. 나는 여행 같은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삶은 언제나 삶일 뿐이다. 살기로 작정한 이곳에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든가, 이곳을 나의 방향으로 조금 더 당겨오든가 해야 한다.


과연 날씨 때문에 이토록 아플 수가 있는가. 그것은 편두통이 되어 나의 오른쪽 뇌를 짓눌렀다. 이곳으로 다시 회귀하기 전까지 내게 날씨는 그저 날씨였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고, 해가 뜨는 날은 해가 뜨는 날이었다. 우산을 준비하거나 모자를 챙기거나 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다가 비가 왔고, 해가 나는가 싶더니 다시 바람이 부는 그런 모든 일이 깨어 있는 시간에 일어났고, 나는 매번 그 종잡을 수 없는 바람에 휘청거렸고 아무때나 내리는 비와 함께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므로 멀쩡하지 못했다.


그런 시간들을 견디는 와중에 꽃이 피고, 하늘이 맑고, 바다가 투명하게 푸르른 날들도 있었다. 이것이 천상의 아름다움인지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아무튼 이곳은 아름다울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아름다웠다. 하지만 계절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잠깐 아름다웠던 그것은 빚쟁이의 얼굴로 문밖에 서 있었다. 길지 않은 황홀에 취한 대가로 엄청난 습도와 열기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느라 다시 아팠다. 나는 영 이곳의 것이 되지 못할 모양이었다.


헌데,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는 모든 감각이 봉인해제 되어 속수무책으로 이곳의 날씨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여태 그래 본 적이 없다. 나는 줄곧 폐쇄적인 사람이었다. 나의 취향과 나의 글과 나의 친구들과 나의 가족들은 모두 나의 시야 안에 존재했고, 고개를 들어 더 넓은 곳을 보려는 노력을 애써 하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껴안고 살아도 충분하였다. 그것의 폭은 넓지 않았고, 비좁았다. 가파른 골짜기 같았다. 그 좁은 것들 안에서도 아름다움과 슬픔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렇게 좁았던 나의 모든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이곳 날씨로 인해 미세한 감각부터 강제로 열어젖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어쩌면 폭력이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이곳에 맞섰다. 이곳에서 부는 바람에 나의 의식과 나의 정서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나는 말뚝처럼 서 있겠다. 그것이 이곳에서 벌이는 나의 싸움이다. 그런 다짐 따위를 하느라 열이 오르고 아팠다.


미열을 다 떨쳐내지 못한 어느 아침이었다. 어떤 아침이었는가 하면, 이번에는 이방인의 코트가 아니라 이방인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의 작은 방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그런 아침이었다. 창밖으로 새들의 울음소리가 진동을 했다. 새들의 부리가 나의 창에 부딪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울음이었다. 사실 울음이었는지 웃음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는 것 같기도 했으나 웃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저 새들은 나와 무관하게 울고 있었다. 나를 환영하지도 않았고 나를 애도하지도 않았다. 사람의 것과는 발성부터 달랐고, 다른 세계의 톤을 살고 있는 그것들이 나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이방인의 이불을 걷어내려 애쓰는 함성이었다. 어쩔 도리 없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고, 창을 열었을 때는 계절이 열리는 소리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다음날은 해가 드는 마당 어귀에 앉아 있었다. 담벼락 바깥으로 사람들의 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타인들의 이야기였는데, 그게 뭔지 궁금하여 잠깐이나마 귀를 기울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담장 너머의 소리에 마음과 귀를 열었다. 이름 모를 풀꽃의 대궁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보였다. 그 바람의 끝에 특별히 화창할 것도 유난히 투명할 것도 없는 하늘과 구름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바다가 가깝지 않지만 바람결에서 나는 바다를 감지하려고 애써보았다. 이 바람은 바다를 지나지 않고, 파도를 거치지 않고 불어올 수는 없는 바람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한라산도, 오름도 보이지 않지만 그것들이 뿌리내린 대지 위에서 그것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언제까지나 아플 수는 없고 꾸역꾸역 생활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야 할 텐데, 그러기 전에 이렇게 무방비로 열려버린 감각의 구멍들부터 하나씩 들여다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비극은 과장하기 좋은 안식처다. 어쩌면 나는 경계인으로서의 비극을 과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자발적으로 함몰되어 패잔병이 되면 누구라도 원망하기 쉬울 테니까 말이다. 철철 피 흘리며 아파하는 패잔병에게 누구라도 패배의 원인을 묻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혹시라도 그런 장수가 있다면 그의 잔인함은 원망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나는 섬의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모두 내쳐진 사람처럼 두 겹의 고난을 살고 있다고 날마다 외웠다. 그러기로 작정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모두들 내게 제주의 바다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편지를 써달라고 했으나, 저 압도적인 것이 바리케이드가 되어 나를 가두고 있다고 쓸 수는 없었다. 모두들 내게서 바다 건너에 있는 섬의 낭만을 노래하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는 낭만에서만 살 수는 없다는 핑계로 뭍으로 떠날 꿈을 더 많이 꾸었다. 그래서 그들이 기대하는 낭만을 나의 것인 양 가장하여 무엇인가를 쓸 수 없었다.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나는 이곳의 삶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았던 사람마냥 멀찌감치 떨어져 옷깃을 여미고 언제든 뒤돌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뭍에 무엇인가를 아주 많이 흘려두고 온 사람마냥 말이다.


사실은 아무것도 두고 오지 않았다.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아직 다 풀지 못한 이삿짐 더미에서 마음을 꺼내놓는 일이었다. 나는 도시의 계절, 그러니까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어디쯤에 있는 그런 계절을 사랑하였는데, 마치 떠나간 애인을 그리워하느라 새로 시작해야 할 연애에 집중하지 못하는 미련퉁이의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새로운 연인에게 열어주어야 할 마음도 몸도 내내 아팠던 거다. 그를 사랑했던 기억을 안고도 새로운 이를 사랑할 수 있다. 순정은 그를 사랑했던 기억에 파묻히기만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여전히 제주의 바다에 대해서는 쓸 수가 없을 거다. 그것의 투명성, 그것의 푸르름, 그것의 광포함, 그것의 역동성 같은 것들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이들의 찬사로 남겨둘 작정이다. 대신에 나는 밤에 타는 버스 같은 것에 대해서 쓸 작정이다. 한밤에 시내에서 저기 멀리 송당까지 50분이 걸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저 어둠 속에서 내게로 닥쳐오는 불빛이 어떻게 명멸했는지 같은 것 말이다. 하루 세 번쯤 내리는 비에 대해서 써볼 작정이다. 화창한 날에 눈을 떴는데, 순식간에 비가 오고 그치기를 반복하여 끝내 마당에 널어둔 빨래를 속수무책으로 흠뻑 다 적시고 만 어떤 날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먹는 밥에 대해서도 써야지. 노동 없는 밥은 없으니까, 화사한 낭만 말고 뜨끈한 노동과 밥에 대해서 꼭 써야지. 먹고 사는 일의 커넥션은 내도록 우리의 어깨 위에 얹혀 있고, 생의 근육들은 그래서 매번 뻐근하니까, 그런 뻐근함을 써야지. 그리하여 결국에 내가 쓴 것들은 익숙한 애인의 손톱 밑에 자꾸만 돋아나는 거스름 같은 연애편지가 되겠지. 그러니까 나는 일기예보처럼 종종 맞고 종종 틀리는 그런 편지를 쓰게 되겠지. 나의 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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