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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금요일 Feb 15. 2019

제주에서, 사소한 삶 -3

개와 사람의 시간1 - 구름이의 가출



서울에 있는 나의 친구들이 가장 놀라는 건, 내가 개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거다.


나는 워낙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아무리 작고 예쁜 강아지라고 해도 그랬다. 근처에만 있어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쪼르르 흐르고 온몸이 바짝 굳는다. 언젠가 아주 무더운 여름날, 여름 감기로 으슬으슬 떨고 있는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탔더랬다. 1호선의 여름은 조금 더 힘겨운 편인데, 탑승하고 두어 정거장을 더 가니 자리가 생겼다. 나는 그 자리에 앉고서도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했다. 그런데 10분 후에 하차하고 말았다. 내가 앉자마자 옆자리에 젊은 남자가 팔뚝만한 하얀 강아지를 안고 탔는데, 그 강아지가 하필이면 나를 향하여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혀를 날름날름, 코를 킁킁킁 그러는 거였다. 아, 현기증이 일었다. 팔뚝만한 강아지는 내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나, 나는 내 옆에 앉은 강아지라는 낯선 존재가 두려웠다. 이런 나의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강아지가 제 발로 내릴 수 없으니 내가 내리는 수밖에.


후, 다음에 도착한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모르는 여자들과 모르는 남자들 틈바구니에 끼어 나는 시체 같은 표정으로 귀가하였다.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사나웁다. 도시의 밤, 타인들은 그 정도의 존재감으로 지하철을 버티고 서 있다. 나의 표정 역시 그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애정을 갈구하는 아련한 눈빛의 개보다는 모르는 남자와 여자를 견디는 쪽이 훨씬 수월했다. 수년 전부터는 워낙 애견의 시대가 된 지라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났는데, 어쩐 일인지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게 된 거다. 마을 산책이나 할까 싶어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던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작은 개 한 마리가 오솔길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사물인 척 하려고 말이다. 아마도 숨도 참았던 것 같아. 내가 하얗게 질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길을 막아선 개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열심히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이었다.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한 시간이라도 이렇게 서 있을 수도 있다. 저 개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겠다고 약속만 해준다면 말이다. 그러나 개의 인내심은 길어봐야 2~3분이 고작일 텐데, 나는 그 2~3분 후에 벌어질 일이 아찔했고, 끔찍했다. 이번에도 식은땀이 주루룩. 하필이면 계절도 여름인 통에 아침부터 높게 떠오르는 해가 뜨거웠다. 아, 어떻게 해!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마침 오솔길 옆 능선을 따라 노부부가 풀을 메고 있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용기를 내 보았다.
“할머니, 할머니!”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가 목구멍을 빠져나왔다. 그 목소리가 노부부의 등허리에 매달린 채 반사되었다. 아, 제발! 주먹에 힘을 주어 조금 더 용기를 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제야 노부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저기, 저 좀 도와주세요.”
뜬금없는 표정들이었다. 그들 눈에 나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을 터다. 무엇을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 황당한 표정에 맞서 나의 사정을 말해야만 했다. 나의 위험을 고지시켜야만 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개를 무서워하거든요.”
나는 거의 울 지경이었다.
그제야 노부부는 고개를 조금 더 돌려 내 앞에 버티고 선 동네 강아지를 발견하였다. 할아버지가 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리 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말 그 개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쭐래쭐래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진즉에 나에게서 등을 돌려 하던 일을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개의 방향을 확인하더니 한 마디를 하고 다시 등을 굽혔다.
“갔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뛰었다. 숙소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방금 전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여전히 심장이 벌렁벌렁 했고, 한편으로 부끄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심했고, 그리고 끝내는 개라는 위험한 존재로부터 안전해진 것 같아서 안심했다.
이후에도 나는 이 일화를 여러 차례 지인들에게 말해주었고, 개를 무서워하는 이들로부터 제법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딱 한 번 이런 대답을 되돌려 받았다.
“그런데 산길에서는 이른 새벽에 사람을 만나는 게 더 무서울 수도 있어.”


머리가 멍 했다. 나의 공포는 무엇을 향한 것일까. 정말 개로 대표되는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한 공포일까. 그의 말대로 사람은? 사람에게라면 그런 텔레파시는 통하나? 통하면 통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내 앞에서 사라져주나? 그렇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나는 그저 그 정도로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인 거다!


그런데 어쨌든 그런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주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개를 키우고 있고, 이제는 저만치에서 밥도 주고 물도 주고 그런다. 놀아주기도 한다! 개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말에는 아마 죽을 때까지 동의를 못할 테지만, 개가 사람의 친구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의 인성에 무관하게 개를 좋아하는 것일 뿐이며, 세상에는 애는 참 괜찮지만 도통 친하게 지내지지는 않는 그런 친구도 있는 법이니까.


사실 개를 무서워하는 것은 나의 노모도 마찬가지다. 날마다 개밥을 꼬박꼬박 챙기는 이는 노모인데, 멀찌감치 떨어져 구박도 살뜰하게 하신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집 구름이는 꼭 노모의 방 창가에다가 똥을 싼다.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을 타고 그 냄새가 솔솔 들어온다며 날마다 구름이를 호되게 꾸짖는다. 노모의 역정은 그거다.
“맨날 밥 챙겨주다 보니까 은혜를 똥으로 갚아!”
“내일도 그렇게 창문 앞에 똥 싸면 밥 안준다!”
그래도 구름이는 매일같이 노모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자기가 똥을 싸던 자리에서 똥을 싼다.


그러던 구름이가 지난 여름 어느 날에 집을 나갔다. 아침나절에 남편이 청소를 하느라 문을 열어두었는데, 아마 그때 나간 모양이다. 누구보다 애정이 깊었던 남편은 원래도 시커먼 얼굴인 사람이 까만 흙빛이 되어 동네를 몇 바퀴고 돌았다.

구름이도 내 남편을 제 남편으로 여기고 살아왔는데, 남편은 어쩌고 구름이는 또 어쩌나 싶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어쩌나.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 부근에서 목줄을 하지 않은 개 한 마리를 보았다는 놀이터 꼬마들의 증언에 기대어 무작정 그쪽으로 뛰었는데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나도 이제 어쩌나, 나도 이제 어쩌나, 중얼중얼했다. 구름이가 없는 오늘밤을 생각해 보았다. 잘 수 있을까. 구름이가 없는 내일을 생각해 보았다.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 구름이가 없는 마당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구름이가 없는 마당을 지나오겠네. 하루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겠네. 하, 이걸 정말 어쩌나. 노모의 심장도 내려앉았다. 아침에 밥 먹고 나가서 지금까지 굶었을 텐데, 구름이 배고파서 어쩌느냐며 사색이 된 노모다.

그러니 이제 우리 가족 모두 어쩌나 싶었다.

나는 아무런 소득이 없이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었던 여름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지평선 저 멀리로 사라지고 있었는데, 저 먼 곳에서 구름이가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그리고 무기력하게 바랄 뿐이었다. 이내 어둠이 내렸다. 이대로 구름이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구나, 싶어 현기증이 나는데 그때 딱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네 공원에서 녀석을 만났단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녀석을 발견했고, 맞은편에서 남편을 발견한 녀석도 좋아 날뛰더란다. 나는 목줄을 하나 찾아들고 얼른 공원을 향해 뛰었고, 노모는 녀석의 밥그릇에 사료부터 한 가득 들이 부었다.
“아이고 밥부터 멕여야 돼! 빨리 데려 와. 얼마나 배가 고플 거야, 그래.”
하, 나와 노모는 개를 무서워하는데, 우리 집 구름이는 사랑하고 있었던가 보다.


집으로 돌아와 노모가 받아둔 물을 정신없이 먹고, 가득 채워 놓은 밥도 순식간에 해치운 구름이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고 나니 모든 풍경이 제자리를 찾았다.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 있었으므로, 우리는 어제처럼 밥을 먹었고, 어제처럼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노모의 역정 난 목소리가 마당으로 울려 퍼졌다.
“저누무 자슥이 또 똥을 창문가에 한 바가지를 쌌네. 은혜를 똥으로 갚아?!”
집으로 돌아온 구름이가 기분 좋게 똥을 싸놓은 마당에 새가 날아들었고, 진돗개의 본성을 발휘해 그걸 잡으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구름이 뒤로 노모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은 채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제처럼 아무 일이 없게 된 여름 어느 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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