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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단계: 태도 챙기기_들을 준비 되셨나요?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by 이승화

소 귀에 경 읽기, 우이독경이란 말이 있어요. 아~무리 좋은 뜻이 담긴 말을 해도, 알아 듣지 못하거나 효과가 없을 때 쓰는 말입니다. 소 귀에 불경을 읽어주든, 성경을 읽어주든 소에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행동의 변화나 반응이 나타나지도 않죠. 소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런 현상은 자주 볼 수 있어요.


소 귀에 경 읽기.jpg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ogoodgod&logNo=221955798660



아이가 무언가 잘못한 상황입니다. 엄마가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 그걸 앞에서 듣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어둡습니다. 뾰로통하게 입술이 나온 것이 심술 나 보입니다. 무언가 억울하고 못마땅한가 봐요. 그럼 엄마는 말해요. "듣기 싫어!????" 당연히 듣기 좋진 않겠죠! 듣기 싫은 잔소리는 아이의 귀에 들어가기도 전에 튕겨 나갑니다.


순한 친구는 그래도 싫은 티 내지 않고 묵묵히 듣고는 있어요. 하지만 반대쪽 귀로 곧바로 나가기 때문에 잔소리에 큰 효과는 없습니다. 어떠한 행동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듣기 싫으니까요. 이처럼 아무리 듣기 능력이 뛰어나도, 듣기 싫으면 능력 발휘도 못하고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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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태도에서 심리적인 부분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첫째, 긴장감이나 두려움을 관리해야 해요. 머리가 하얘진다고 표현하는 상황이 있어요. 과하게 긴장한 상태에서는 소리 자체가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의미 이해도 당연히 안 되죠. 그래서 긴장감이나 두려움을 없애고 듣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자주 혼나거나, 상사한테 자주 지적 받은 상태에서는 이미 감정적으로 위축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듣기가 힘듭니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환경 및 관계를 조성해야 해요.


일상 생활 잘하다가 특정 대상, 특정 장소에서만 듣기에 고충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어요.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서 감각도 마비되고, 전략적인 판단을 할 의지도 잃게 되는 상황이 많아요. 그런 분들은 반복되는 패턴, 상황에 대한 점검을 꼭 해주어야 합니다. 문제를 피하기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야 효율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어요.


최근에 육아 예능에서 학교라는 공간만 가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가 나왔어요. 나름의 처방으로는 꾸준한 시뮬레이션으로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집 안에서도 학교와 같은 환경을 만들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도 해보고요. 친구들 없는 빈 교실에 미리 가서 조금씩 적응해 보는 훈련이었어요. 불편한 요소에서 배제할 수 있는 것은 배제하고, 안 되는 것은 서서히 적응하도록 해 봅시다!




둘째, 집중을 안 하면 듣다가 길을 잃어요. 듣다가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흐름을 놓치기도 하고요.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 눈이 풀리거나,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졸고 있거나 할 때 "집중해!"라고 소리 치기도 합니다. "정신차려!"의 의미인데,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집중력입니다. 스스로 주의를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아요. 숏폼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은 더욱 정신줄 잡기 힘들죠.


결국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엄청 졸리다가도, "이 부분에 시험에 나온다!"라고 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경우가 있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조금 피곤하더라도 꾹 참게 돼요. 허벅지를 찌르며 강의를 듣는다거나, 서서 듣는 다거나, 세수를 하고 온다거나 하는 노력이 다 이런 맥락이에요. 중요하니까!


방학 특강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는데, 앞에서 계속 졸던 중학생이 있었어요. 그러다 '마블'의 미디어 전략을 이야기하는데,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듣다가 리액션까지 하더라고요. 어떤 영화는 잘 만들었고, 어떤 영화는 아쉽고... 신나서 쉬는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관심 있는 것들도 귀를 쫑긋하게 합니다.


이 두 상황을 더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의미 있다고, 관심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지금은 재미 없고 따분해 보이지만, 나중에 중요할거야! 어떤 순간에 써먹기 좋을거야! 진로라는 큰 그림에 도움될거야! 스스로 듣는 내용에 의미 부여를 하면 조금 더 집중이 잘 될 수 있어요.




셋째, 자아가 너무 강해서 듣기를 방해하는 경우도 많아요. 앞에서 관심사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관심 있는 것 외에는 다 대충 듣습니다. 대화의 중심이 '나'이기 때문에,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호기심도 없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심하면 상대방의 말을 끊고, 주제를 바꾸기도 해요. 내가 중심이 아닌 것을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나아가서 듣기보다 말하기가 앞서는 분들도 많이 있죠. 이 모든 것이 자아 과잉이 불러 온 불통입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라도 입창의 차이가 생길 수 있어요. 그 입장의 차이에서 유난히 꽉 막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성인분들 대상으로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합니다. 기존의 신념이 너무 강해서 새로운 정보 자극을 수용하지 못하는 거예요. '고집이 쎄다!'라고 쉽게 말하는데, 듣기 태도에 반영되곤 합니다. 내가 A라고 믿는 것, 나름의 정답이 있는데 누가 A는 틀렸고, B가 맞다고 한다면? B라는 정보를 배제해 버립니다. 그냥 못 들은 것처럼 되는 거죠. 아니면 B라고 했지만 사실은 A라고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기존에 가지고 있던 A라는 믿음에는 흠집도 나지 않는 거죠. 이러한 선택적 수용을 조심해야 합니다. 듣기, 읽기, 전면에 문제가 되고 있어요.


인지 부조화 이론이란 것이 있어요.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 경험, 신념이 새롭게 수용되는 정보와 지식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는 것이에요. 이러한 비일관성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이 불일치를 제거하려고 해요.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새롭게 수용되는 정보와 지식을 제거하는 겁니다. 그럼 편하게 살던 대로 살면 되니까요. 이렇게 편향된 사고가 생성되고 강화됩니다. 현명한 방법은 이 혼란함 속에서 조화로운 지식을 구성하는 거예요. 이런 유연한 태도가 우리의 귀를 밝게 만듭니다. 그래서 항상 질문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는 유연한 태도로 듣고 있는가?




넷째,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 상대방과의 관계가 영향을 많이 미쳐요.


청자가 '내가 화자를 잘 알고 있다'는 마음으로 들었을 때 자동적으로 해석이 끼어들게 돼요. 이 해석이 어느 방향일지는 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든 해석이 영향을 미치긴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메신져와 메시지를 분리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정확하게 듣기 위해서죠.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게요.


상대방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오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상대방과의 관계, 화자를 무시하는 감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의 말이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우리의 귀는 굳게 닫히죠. 그래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귀도 열린다고 말하기도 해요.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마음의 문을 여는 겁니다. 회사에서도 내가 무시하는 상사, 밉상인 사람의 이야기는 귀에 잘 안 들어오고 머리에도 안 남아요.




(오전 회의실 집합)

*A: 다음 주에, 회사에서 제일 큰 행사가 코엑스에서 열립니다. OO월 OO일에 열리는 이 행사는 ~

*B: (쓸데없이 자꾸 부르고 그래... 자기 일이나 잘하지... 이번에도 마이너스더구만...) 에휴 ~


(오후 업무)

*C: B님, 다음 주 행사 어떻게 준비할까요?

*B: 어?? 다음 주?? 행사 언제지??

*C: 오전 회의 때, 안건 나왔잖아요 ~

*B: 아 그랬나...

*C: (뭐여... 귀가 먹었나...) 확인 부탁드려요 ~




우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존중하면서 들으면 더 집중하게 되고, 의미도 잘 이해가 됩니다. 서로서로 기분도 좋아지고요. 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가 말하는 내용도 존중 받지 못할 확률이 커요. 그러면 그대로 청자에게 그대로 와닿지 못합니다. 한 쪽으로 흘려 듣는 다거나, 튕겨 내는 것이에요. 기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니 금방금방 까먹습니다. 심하면 발언권 자체를 빼앗아버려요. 일방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독단적인 대화가 진행됩니다.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으니 들을 일도 없게 됩니다. 그럼 결국 나의 손해입니다. 주기만 하고 받지는 않는 꼴이니까요.


반대로 상대방에 대한 과잉 신뢰가 듣기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들은 내용에 살을 붙여 과잉 해석을 한다거나, 좋은 쪽으로 곡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고!' 등등의 반응을 보입니다. 정확한 듣기라고는 할 수 없죠. 또 그대로 듣다 보면, 내용이 이상하다거나 구조가 논리적이지 않다거나 깨닫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화자에 대한 믿음이 과한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리가 된다거나 맹신하며 추종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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