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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 Glove Aug 24. 2019

우선 살부터 빼고 오겠습니다

5. 장쯔이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자주 오지 않던 W호텔이지만, 젤 꼭대기 층의 코스요리는 친구들의 인스타에서 자주 보았다. 음식 값에 분위기 값이 포함되었다는 평이지만 이런 날에 음식 맛보다는 분위기가 더 중요하지.

선호가 로비 앞에서 발렛파킹에 맡긴 나의 하얀 아우디를 봤었어야 하는데.


"어 젬마. 여기야."

선호가 보인다. 컨퍼런스에서 바로 왔는지 검은 정장에 구두 차림이다. 설렌다.

"여기서 또 보니까 반갑네."


확실히 두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조금 더 편하게 말이 나왔다. 약간 타이트한 바지와 블라우스에 움직임에 몸은 불편하지만.

꼭대기 층의 레스토랑은 듣던대로 잘 꾸며져있어 화려했다.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스카이라인도 로맨틱한 분위기에 한 몫 했다.


"컨퍼런스는 어땠어?"

선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간만에 본인이 관심있어하는 분야에 대해 물어봐서 그런지 신나게 얘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호응해 주었다. 공대나와서 다행이다. 이런 말을 알아듣고 반응해 줄 수 있어서.

요리로 나온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며 근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구운 미니 당근을 잘라 입안에 넣으며 아무렇지않은 척 물었다.

"에이미랑은 잘돼가?"

선호의 표정이 미묘하다.

"그건 왜 물어? 뭐 들은거 있어?"

"아니 그냥~지난번에 봤더니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서."

긴장된다. 뭐라도 있나 둘이?

"분위기 좋긴. 그냥 대학 친구니까 친하게 지내는 거지. 다들 그립잖아."

다행이다.

"그리고 나 요즘 썸타는 사람 있어."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선호는 쑥스러운 얼굴로 말을 잇는다.

"썸이라기 보다는...내가 좀 호감이 있는데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 내 딴에는 호감을 표시한다고 했는데, 그쪽 반응을 잘 이해못하겠어..."

 그 순간, 너는 그런 사람도 있으면서 왜 나랑 여기서 밥먹고있냐 라고 소리치며 숟가락을 던지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야 너 정도 되면, 그 사람도 당연히 좋다 하겠지. 사진있어? 사진 보여줘."

그래. 얼굴이나 보자.

선호가 폰을 뒤지더니 인스타그램을 열어 사진을 보여준다.

하얀 얼굴에 자줏빛 수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사진에서 은은하게 웃고있다. 장쯔이를 닮은 것 같은 동양 미인이다.팔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하이힐 같은 것 안신어도 늘씬하고 예쁜 여자.

"한국사람 이야?"

"아니 대만 사람. 예쁘지?"

"응. 예쁘네. 인기 많겠다."

한모금 삼킨 물이 모래로 변한듯 목 안이 까끌까끌해졌다. 심장이 콕콕 찔린 듯 아프다.

" 중국어나 좀 열심히 배워둘 걸 그랬어. 영어로만 대화하려고 하니까 좀 힘드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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