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의 오디오북 이야기
음성 콘텐츠는 장시간의 스크린 노출에 따른 '시각 피로도(Visual Fatigue)'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지식문화 콘텐츠로서 오디오북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오디오북 시장은 2020년 32억 6,000만 달러(약 3조 8,500억 원)에서 2027년에는 149억 9,000만 달러(약 17조 7,000억 원) 규모로 연평균 24.4%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도 많은 투자를 유치하며 사업자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총 460억 원을 투자받은 윌라(welaaa)는 철저히 고품질의 완독형 오디오북 콘텐츠를 차별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20개의 녹음실과 2개의 강의실을 갖춘 자체 스튜디오를 통해 전문 성우가 녹음하고 다양한 BGM을 삽입하며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 밀리의 서재는 풍부한 콘텐츠 기반의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지니뮤직이 464억 원을 투자해 밀리의 서재 지분 38.6%를 인수하면서 더욱 대규모의 구독자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3,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1조 5,000억 원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리디북스는 전자책 중심으로 편리한 UI를 제공하고 있지만 오디오북은 TTS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타사대비 콘텐츠 수량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글로벌 오디오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인 스웨덴의 스토리텔(Storytel)은 독점 콘텐츠를 강화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난 11월 30일에 해리포터 시리즈의 한국어판 오디오북을 국내 최초로 출시했으며, 2022년 5월까지 비밀의 방, 아즈카반의 죄수, 불의 잔, 불사조 기사단, 혼혈 왕자, 죽음의 성물 등 해리포터 전 시리즈를 매달 한 편씩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오디오북 사업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앞세우며 특색 있는 행보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출판 시장에서 전자책이 안착하기까지는 꽤 오래시간이 소요되었다. 출판사가 고민했던 이유는 과연 전자책이 보완재로써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그 외에도 비즈니스 모델, 판매 가격, 정산 방법, 서비스 채널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논의와 조율을 거치면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킴으로써 전자책이 종이책의 독서 문화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의 오디오북 시장은 초창기의 전자책 시장 형성 과정과 매우 흡사한 전철을 밟고 있다. 하지만 전자책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디오북의 진행 속도는 훨씬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오디오북 시장을 더욱 가속화시키기 위해서는 오디오북 콘텐츠 이용 디바이스가 보편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이용이 가능하다. 외부에서 이동할 경우에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헤드셋이나 무선이어폰 형태가 좋다. 하지만 외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고막이 아닌 뼈와 피부의 진동을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형태의 골절도 헤드셋(Bone Conduction Headset) 이용이 좀 더 효과적이다. 반면 사적인 공간에서는 고막의 부담을 줄이고 정확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스피커 형태가 적절하다. 대표적인 디바이스가 AI스피커인데, 현재 국내 AI스피커 가입자 수가 1,6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편리하게 음성으로 검색하고 재생까지의 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면서 듣기 편리하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이 확산되고 있어 오디오북 이용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디바이스들이 대중화 될수록 콘텐츠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디오북 이용도 늘어날 것이다.
오디오북은 대부분은 단권으로 구매 하거나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이용할 수 있으며 별도의 전용 앱을 통해 청취가 가능하다. 오디오북은 음성 콘텐츠이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UI가 간결하고 제공되는 기능도 매우 간단하다. 배속을 선택하거나, 앞뒤로 10~15초씩 이동시키거나, 취침 예약이 가능한 정도이다. 간혹 원하는 구간에 책갈피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기능이 간소한 이유는 내레이터가 읽어주는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반면 오디오북은 많은 단점도 가지고 있다. 텍스트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앞뒤의 내용을 미리 볼 수가 없다. 즉 오디오북의 특성 상 집중에서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잘못 듣거나 놓친 내용들에 대해서는 다시 듣기가 쉽지 않다. 결국 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자투리 시간에 간접적으로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래 독자를 확보하는데 훌륭한 역할을 한다.
현재의 오디오북은 듣는 측면에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는 기능적 측면이 많이 강화되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오디오북의 단점들을 극복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다양한 내레이터 버전을 제공한 뒤 자신에 맞는 목소리를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욱 집중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는 간단한 음성 명령으로 현재 듣고 있는 위치가 포함된 문단이나 단락에 메모를 하거나, 밑줄을 긋거나, 텍스트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음악 스트리밍 기업인 스포티파이(Spotify)가 지난 2019년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배포하는 도구를 만드는 앵커(Anchor)와 인기 팟캐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스튜디오 김렛 미디어(Gimlet Media)를 인수하며 오디오 제공자로 시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2021년 11월에는 글로벌 오디오북 업체인 파인드어웨이(Findaway)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꾸준하게 오디오 콘텐츠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오디오북과 음악을 함께 묶어 오디오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지난 9월 지니뮤직에 인수된 밀리의서재는 음성콘텐츠 중심의 구독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향후 KT 그룹사들과 연계를 통해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미디어 가치 사슬(value chain)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윌라 역시 지난 1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플로(FLO)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함으로써 플로에서도 윌라 오디오북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오디오 플랫폼으로 시장을 확장시키고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면서 외연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개인화와 참여 기반의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의 참여는 매우 적극적이며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서 충성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오디오북 서비스에서도 밀리의서재가 지난 1월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를 오픈하며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미리 만들어진 오디오북 중 저작권이 해결된 도서에 대해서 사용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읽고 편집한 파일을 올릴 수 있는데 해당 파일을 다른 사람이 3분 이상 재생할 때마다 100원씩 수익이 발행되고 5만 원 이상 누적되면 현금으로도 받을 수 있다. 서비스 런칭 후 4개월 만에 사용자가 만든 오디오북이 500권을 돌파했다. 단순히 오디오북을 듣는 데에서 나아가 재미와 경제적 수입까지도 제공하며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 환경이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책과 연결되기 시작하자 출판사들은 종이책과 함께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콘텐츠를 동시에 제공하며 디지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오디오북은 사람의 목소리로 읽어주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독서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오디오북이 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 품질 좋은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많이 확보하고 다양한 확장 전략들을 기반으로 오디오북이 출판 시장의 황금알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