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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Dec 28. 2023

고요함의 기준

어릴 적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대관령에 간 적이 있다.  아빠가 바퀴를 점검하려고 시동을 끄고 다 같이 밖으로 나왔는데,  높은 산중에 우리 가족뿐이어서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릴 만큼 적막했었다. 그때 고요함의 기준이 정해진 걸까. 아무튼 그날 이후로 완전히 적막하고 잠잠한 상태를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한 살씩 먹어가면서 좋은 건 조금씩 둔감해진다는 거다.


한때는 1층에서 쌀알이 몇 알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2층에서 알아차린 적도 있다는 믿지 못할 일도 있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거슬리면 결국 앉아있지 못하고 가방을 주섬주섬 정리해서 다시 일어난 적도 있다.


이렇게 쓰고 나니 프로 예민러 같겠지만 유독 소리에만 더 그렇다. 먹는 거, 입는 건 무난한 편인 것 같은데 도대체 내 영아기와 유년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갑자기 부모님께 따지는 건 아니고.


어쨌든 내가 원하는 고요함의 정도가 남과 다르다는 건 결혼해서 알게 됐는데 왜냐면 남편은 이 부분에서 전혀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기 전에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 시곗바늘 소리가 없어야 한다. 냉장고야 음식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여름엔 더우니까 에어컨,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도 봐줘야 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땐 좀 다른데, 한여름이라도 에어컨과 선풍기까지 끄고 나면 드디어 내가 원하는 상태가 된다.  


이쯤 되면 예술가라도 해야 나의 민감함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술은커녕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있으니 할 말은 없다. 이렇게 태어나서 어쩌라고 배 째면서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가 싶다. 훌륭한 인심 덕에 공존하며 잘 살아온 게 그저 축복인 것을.


점점 더 너그러워지는 내가 좋다. 몸무게까지 넉넉해지는 건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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