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미진은 순대집에 갔다. 한평 남짓한 조그만 가게. 딱히 순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깨끗한 회사 앞 순대집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평범했던 어느 날 맛이나 볼까 해서 들렸던 그곳은 미진에겐 사색의 장소가 되었다. 그저 주인 할아버지가 오래된 칼을 갈고, 큰 솥단지 뚜껑을 열어 큰 김을 한번 내보내고, 미진의 앞에 선 사람이 주문한 순대를 쓱쓱 썰어냈다. 할아버지가 거침없이 손쉽게 순대를 내어주는 모습은 괜히 뿌듯했고, 미진의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해 줬다.
한 번은 정말 별일 없던 날이었는데 주문한 순대와 내장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미진은 찔끔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의 완벽한 순대 썰기를 보며 알고 보니 엉망이었던 자신의 하루가 떠올랐다. 주인 할아버지는 내장을 집어 썰면서 힐끗 미진을 바라보더니 "오늘 들어온 싱싱한 허파요." 하며 맛보기로 돼지 허파를 주었다. 그다음엔 "다른 가게에서는 주지도 않을 돼지 식도요." 하며 오득 오득 씹히는 돼지의 식도를 주었다. 허파를 씹어 넘기고 돼지의 식도를 이쑤시개로 받아둔 순간 할아버지는 "식도는 돼지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지." 했다.
돼지의 해명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식도를 먹을 때마다 꽥꽥하며 죽어가는 돼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미진은 돼지의 몸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을 받아먹어치우는 중이었고, 그 사실이 좋기도 하면서 끔찍했다. 하지만 그 고기 냄새 가득한 공간을 메우는 순대를 써는 규칙적인 도마 소리와 주문하는 소리. 그리고 들리지는 않지만 돼지가 마지막으로 죽어갔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묘한 즐거움을 자아냈다.
순대와 허파와 오소리감투와 간과 돼지 식도가 가득 담긴 스티로폼 접시가 검정 봉지 안에 착착 담기고 사람들의 뱃속은 뜨끈해져 이내 잠이 들것이다. 오늘밤엔 평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