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mtip Nov 13. 2024

귀여움의 쓸모 두 번째 이야기

인형예찬

동생이 '코지부'라고 부르며 언제 어디든, 심지어 마흔을 앞둔 지금도 가지고 있는, 인형평생 끼고 사는 동안 나는 인형을 직접 사거나 인형으로 인해 뭔가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인형은 어디에 쓰는 것일지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다. 남들이 인형을 안고 잔다기에 한번(?) 흉내 내보기는 했으나 글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로봇장난감을 좋아했다. 조립로봇은 이리저리 여러 모양으로 바뀌기도 하고 조립하면서 느끼는 희열도 있었다. 차라리 잠이 오길 기다리며 로봇을 변신시키면 졸음이 왔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두 명 모두 인형을 끔찍이도 좋아한다. 인형을 안고 자기도 하고 마트에서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 두 아이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로서 정말 힘들지만 아이기도 하고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가끔 사줄 때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형에서 그 어떤 감정의 추출물도 뽑아내지 못한 인간이 바로 나라는 소리다. 하지만 살다 보면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지난주였나. 간호팀에서 주사를 맞는 환자들을 위해 인형을 좀 갖다 놓으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선생님 한분이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인형을 잡고 있었는데 꽤(?)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인형을 놔야 한다는 명분이 분명해졌다. 주사를 맞을 인형을 안는다?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나는 그저 다른 분들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막내 간호선생님이 다람쥐를 닮은 인형을 가져오셨는데 어 이것 봐라? 주사실에 가져다 놓으니 뭔가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인형을 안고 주사베드에 누워보았는데 이럴 수가. 마음이 포근해지면서 눈을 감고 주사를 맞을 있겠다는 좁쌀만 한 용기가 생긱는게 아닌가?  


그리하여 마흔을 넘겨 나는 인형을 안으며 처음으로 '아이 좋아'라는 감정을 느껴버렸다. 그리고 다람쥐 인형을 안고 있다가 문득 아이들 몰래 버리려고 했던( 왜냐면 집에 인형이 정말 많으니까 ) 조그마한 오리 인형이 가방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리인형을 꺼내 다른 주사실에도 소심하게 놓아보았는데 노란색 오리인형이 앉아있으니 주사실에 훈훈한 분위기가 돌았다.


곱게 앉아있는 다람쥐와 오리를 보며 나는 절대 이럴 리 없다는 그런 호언장담은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렇게 내가 인형예찬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마라샹궈 0단계 체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