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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tip Nov 21. 2024

계단을 오른다

백핸드를 칠 때마다 하체가 불안정하다. 하체운동이 더 필요한 것 같아 계단을 오른다. 퇴근 후에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 날씨가 추워졌기도 했고 산책만으로는 하체가 단련되긴 어렵다. 그래서 겨울마다 했던 계단 오르기가 제격이다.


우리 아파트는 49층인데 너무 빨리 오르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다 오르는 건 결국 시간문제다. 그런데 계단 오르기의 가장 큰 단점이라 하면 지루하다는 것이다. 그 지루함을 이기느냐 마느냐가 그날의 층수를 결정한다. 어제는 35층, 그제는 20층, 오늘은 30층. 아니다, 그제가 40층이었나? 속으로 노래도 불러보고 친구랑 전화도 하고, 숫자도 세어보고, 유튜브로 영어문장 듣기도 한다.


내가 운동을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한다. 손발이 모두 활발하게 움직일 것. 그래서 나는 테니스와 수영을 즐긴다. 최근에 자이로토닉이라는 운동에 매력을 느낀 것도 팔다리가 계속해서 춤추듯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신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정지동작이 많은 운동은 내게 운동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버티는 동작이 많을수록 훈련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계단 오르기는 어디에 속할까. 팔다리 모두 열심히 움직이지만 이상하게 재미도 없고 재미가 없다 보니 당연히 즐기기 어렵다. 그러니깐 훈련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걷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등산도 아닌 이건 정말 말 그대로 계단을 오르는 거다. 너무너무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뭘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계단 오르기는 케이크로 결말이 날 예정이다.


며칠 직장 동료가 좋아하는 케이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화이트 초콜릿이 위에 얇게 뿌려진 파리바게트 케이크이었는데 갑자기 계단을 오르다가 케이크가 생각이 났다. 생각해 보니 어릴 때 먹어보고는 먹어 본 지 15년 이상이 지났다는 깨달았다. 어떤 맛이었더라? 맛있었다는 기억은 나는데 당체 어떤 맛이었는지 떠오르질 않았다.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꿈에 그 화이트 초콜릿 케이크가 여러 개 등장해서 내 앞에서 휙휙 지나갔다. 너무 먹음직스럽게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지 모두들 상상한 그대로다. 다음날 나는 점심시간에 나가 파리바게트에 들러 케이크를 사서 직원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그러니까 테니스를 치기 위해 하체를 훈련하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케이크가 먹고 싶어 져서 결국 사 먹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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