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라오스에 가서 살게 될지도 몰라

by namtip


"좋아"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나는 '예스'를 했다. 라오스로 가겠다고.


10년 전. 막 결혼식을 올린 우리 부부는 같이 저녁 먹는 걸 위안으로 삼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병원 레지던트를 끝내고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라디오 방송작가였던 나는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밤사이 일어난 뉴스를 확인하고 원고를 수정했다. 그리고 방송국으로 새벽 6시까지 출근.


그날도 피곤하다는 말로 시작된 어느 날 저녁이었다. 우물우물 밥을 먹으며 남편이 조심스럽게 군대 얘기를 시작했다. 한국 국제 협력단인 코이카(KOICA)를 통해 해외로 군대를 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군생활을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외국으로 군대를 간다고?


자세히 들어보니 해외파견을 신청해서 면접을 보고 발령을 받으면 현지 병원에서 군의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도 함께 갈 수 있으니 지원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것. 우리는 밥을 먹다가 코이카 홈페이지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후보지는 네팔과 라오스 두 곳이었다.



당시 나는 음악프로그램의 작가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오랫동안 새벽 시사프로를 했던 터라 변화가 필요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라디오 작가라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조건. 오전 시간대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진행자와 피디가 세팅되고 첫 미팅까지 끝낸 상황에서 갑자기 해외로 간다는 건 분명 내 커리어에도 큰 타격이었다.


만약 내가 싫다고 하면 남편은 절대로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 남들처럼 남편은 한국에서 군생활을 하고 나는 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 어쩌면 가장 편한 선택 앞에서 나는 왜 그토록 고민했던 걸까?


그때 나는 이미 지쳐있었고, 어쩌면 계속 지쳐가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생방송 원고를 쓰고 매일 다른 출연자를 섭외해야만 하는 긴장된 삶의 연속. 데드라인은 있지만 진정한 마감은 없는 생활이었기에 못 씻고 못 먹는 날이 더 많았다.


노트북을 껴안고 잠이 깬 어느 날 새벽. 같이 원고를 써준다고 소파에서 잠든 남편을 보며 이제는 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떠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후련했다.




우리의 지원 1순위는 네팔. 네팔로 가기 위해 한국어는 물론 영어로도 인터뷰를 하는 꽤 까다로운 심사가 끝났고, 남편은 합격이 되었다. 그런데 네팔 여행책도 사고 음식도 검색하는 등 소소한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코이카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라오스 어린이 병원에서 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발령 지역이 바뀌어도 괜찮은지 충분히 고민 후 연락을 달라는 것이다.


라오스. 라오스보다는 조금 더 지내기 수월할 것 같아 선택한 네팔이었다. 라오스는 세계 48개 빈국 중 하나가 아닌가? 과연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떠나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한 번 해보자. 고심 끝에 나는 오케이를 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 이제 우리가 한국을 떠나서 살아갈 곳. 한국-라오스 어린이 병원이 있는 곳.




최종 발령을 받은 날 나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라오스에 가서 살게 될지도 몰라. 아니 그럴 것 같아."

유엔이 지정한 빈국. 그러나 행복 지수는 대한민국보다 높은 나라 '라오스'.

우리 부부의 제2의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