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아이가 생기면 태명도 짓고 막달즈음에는 아이의 이름도 지으며 설레는 열 달을 보내게 된다.
우리도 다른 부부들처럼 국어사전을 뒤져가며 한글을 조합해 보고 한자 뜻도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예정일보다 아이가 빨리 나오는 바람에 아이 이름을 적어둔 수첩은 당연히 집에 두고 왔고, 아이의 심박수가 떨어져 예정에도 없던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던 터라 이름을 정하는 건 뒷일이었다.
어쨌거나 무사히 아이를 낳고 산모가 잘 걷게 된 후에 의사 선생님의 퇴원 허락이 떨어졌는데, 퇴원 전날 받은 서류가 문제였다.
짐을 정리하고 있는 우리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서류를 주시더니 아이 이름을 적으라고 하시는 거다. 아직 이름이 없다고 하니 그래도 이름이 있어야 국경을 통과하는데 무리가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국경을 통과할 수 없다니.
라오스에서 태국 국경을 넘어왔으니 다시 태국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어야 집으로 갈 수 있는 건데, 서류 통과가 안되면 당연히 우리는 태국에 체류해야 한다. 아이만 태국에 두고 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다 퇴근을 했고, 밤에는 태국말만 하는 직원들 뿐이었다.
남편과 친정엄마는 혹시 모르니 빨리 아이 이름을 짓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이 없다 하더라도 국경을 충분히 통과시켜 줄 거라 생각했을 테지만, 그때는 다들 덜컥 겁이 났었다.
아마 밤 11시쯤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가운데 두고 어른 셋이 갑자기 이름을 짓기 시작한 건. 열 달 동안 고심했던 이름들이 생각나지 않고 그나마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봐도 입에 착 붙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대'로 시작하는 이름은 싫다고 했었는지 나에게 물어봤다. '내가 그랬었나. 아니면 좋다고 했었나.'그런데 갑자기 친정엄마가 "대?" 하시더니 '대윤'은 어떠냐고 하셨다.
대윤. 어어? 좋은데? 아기얼굴을 보고 세 명이 "대윤아" 하고 불러보았다. 우리가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싱긋 웃었다거나 하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럼 내일 서류에 대윤이라고 쓰자. 하이파이브. 그때가 새벽 3시.
그렇게 우리의 첫째는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급조한 이름을 가지고 라오스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계속 불러봐도 어울려서 지금까지 대윤으로 부르고 있다.
신생아의 이름이 서류에 있어야 국경을 통과하는 건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새벽까지 고심했던 이름을 첫째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 다행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